바랑 하나 메고 나선 만행길이었다. 길은 길에 연이어져 끝이 없고, 그 길을 걸음걸음 참회진언을 바치며 걸어나갔다.
아석소조제악엽 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 皆由無始貪眞癡
종신구의지소생 從身口홉之flf生
일체아금개참회 一切牙今皆懺每
제가 옛날부터 지어온 모든 악업은 끝없이 오랜 옛적부터 익혀온 탑. 진, 치 삼독으로부터 일어나는 것.
신. 구. 의 삼업으로 해서 생긴 모든 것들을 이제 진심
으로 참회합니다. \'옴살바못자모지사다야사바하\'.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몇 날 며칠을 걸었는지 모른다.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 달이 바뀌어 동짓달이 되었다. 한 때 무성하던 것들이 스러져 가는 들녘의 적막은 그대로 무진법문 이었다. 하루는 날이 저무는데 인가가 보이지 않는다. 산사람들을 위한 움막이라도 하나 있을 듯 하건만 도시 아무것도 만날 수가 없었다. 종일토록 흐린 하늘에서는 어스름과 함께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차츰 거칠어져 폭설로 변하였다. 미끄러지고 구르며 눈길을 헤쳐 나갔다. ‘인명人命이 재천在天인데 설마 죽기야 하랴... 이 자리에서 이대로 죽는다하여도 후회는 없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 일들. 지식을 먼저 보내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또 하나의 봉분을 쓸어안고 기진 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살아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인가의 불빛을 만난 것은 인경(二更)이 지나서였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그 뒤의 일은 모르겠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 광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오랍뜰을 내다보니 구기자와 산죽으로 울타리를 친 조촐한 산가는 온통 눈 속에 묻혀 있다. 동천冬天은 시리고 시리게 펼쳐지고 먼 데서 따악!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이는 청솔가지 소리만 적요를 깨고, 푸드득! 허리에 싸인 눈을 털고 일어서는 대나무 정지된 순간!
그 찰나 속에서 감지되어 오는 무엇이 있었다. 나를 내리 누르던 무명의 업장을 털고 푸르르 일어서는 새로운 분신을 본 것이다. 나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
잡곡 곁에 쌀 한줌을 더 얹은 듯 내 밥그릇만 흰밥이 담긴 아침상을 받으며 코끝이 찡하니 아파온다. 된장국에 무우청 김치의 소찬이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소녀딸과 둘러앉아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더 쉬었다가라고 만류하시는 두 분께 갈 길이 멀다고 인사를 드린 뒤 마루 끝에서 신발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누렁이가 물어갔는가 하시며 부엌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어이구 우리 달이! 착하기도 하지. 어여 갖다 드려라’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털신을 들고 나오는 얘기의 고사리 같은 두 손. \"나무 관세음보살\" 나도 모르게 합장을 했다. 다섯 살 쯤 되었을까. 아이의 무구한 눈빛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출렁인다. 우물가를 돌아 산모롱이 몇 개를 지날 때까지 온기가 남아 있던 그 신발을 신고 걸으며, \'중생을 위해 살리라. 중생을 위해 살리라.’ 얼마나 다짐하였는지 모른다. 세싱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일을 지나며 감사하지 않은 일이 있을까마는 이 우연하고 작은 기억은 내 마음을 기쁨과 자비로 가득차게 한다. 큰사랑과 큰마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발로인 작은 창같은 이 이야기를 깊이 감추어 두고 무척 아꼈었다. 거쳐야할 공부를 지나고 나면 그 이후의 삶은 소외된 이웃을 향하여 열어 놓고 중생과 더불어 아낌없이 주는 삶으로 마무리하고싶다.
“일체 유정 무정들이 적의에서 벗어나지이다. 모두들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여지이다. 우리의 이웃들이 진실하고 맑고 향기로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