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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축제, 함께하는 초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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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희균 1996년 05월 171호
그 동안 새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잎이 많이 돋지는 않아서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겨우내 지저귐을 멈추었던 새들은 용하게도 찾아와 지저귐을 시작한다. 어쩌면 나무들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기지개를 켜는 것은 아닌지.
오월의 기쁨은 단지 이렇게 봄이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생명들이 기쁨의 노래를 합창하며 오월의 하늘과 땅을 빛나게 장엄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은 그렇게 화려한 계절을 동반하고 있다. 어두운 마음을 정화해낼 재발심을 위하여, 변정각變正覺을 일으킬 초발심을 위하여.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지금 네 안에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보석이 있다. 그것을 환히 드러내 다시는 어둠에 갖히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너 자신은 물론 네 주변의 모든 사람까지도 저마다의 보석을 꺼내 놓으라고 일라 주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남의 보석을 넘보지 말고 자신의 보석을 드러내 놓을 때 더 이상 탐내고 어리석을 필요 없이 온전한 부자가 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잠겨 있는 불성이 빛을 발하고 싶어 순간순간 몸부림을 한다고 생각하면 진청 간담이 서늘하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죄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저 심연 깊숙이 잠겨 있는 보석(주인공 또는 불성)은 한시도 얼굴 찡그리는 법이 없는데 껍데기인 자신은 잠시도 평상심이 아니다. 어둡고 침침한 층층을 걷어내지 못하고 그 속에 잠겨 있는 보석에 햇빛을 차단하고 있다니. 보석의 입장에서 보면 어둠 속에 자기를 가두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고 원망스럽겠는가.
부처님 오신 날은 그 마음속의 어둠을 걷어내라는 준엄한 경고일 터이다. 저마다 지니고 있는 보석을 환한 바깥세상으로 드러내 다시는 어둠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엄중한 사자후일 터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단지 불교인만의 축제일 수 없고, 특정 인물들의 독점일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럼에도 교계는 부처님 오신 날을 너무 안일하게 맞이하는 듯하다. 기존에 이루어지던 초파일 법요식에서 저녁 연등 행사로 이어지는 것 외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물론 불우이웃돕기 등 대사회적인 행사는 예전에 견주어 많이 늘어난 편이지만, 정작불자들과 가족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행사는 여전히 개발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종단차원에서 볼 때 거의 전무하다. 단위 사찰로 보아도 한두 군데를 빼고는 마찬가지이다. 지금 부처님 오선 날에 불교학생회가 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단조롭고 건조해 미안할 지경이다. 부처님오신날은 어른, 어린이, 청소년모두의 축제여야 할 터인데,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불성을 발견하고 부처님과 나의 불성을 찬탄해야 할 순간들인데, 청소년을 위한 법석과 그들을 위한 놀이판은 어디서도 벌어지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해
제등행렬을 빼고는 청소년들의 참여 공간이 아무것도 없다. 부처님 오신 날, 가는 절마다 불교학생회는 불교 용품전을 펴고 보시함을 들고 서있거나, 신도님들 뒤치다꺼리 심부름을 도맡고 그 결산으로 뒤에 짜장면 한 그릇에 위안을 삼는다. 그 천진 부처들이 왜 초파일만 되면 보시함을 들고 서있어야 하는가. 더러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학생회 기금 마련을 위한 방편이 대부분이다. 불교학생회는 왜 그렇게 늘 궁색한가 학생회가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네들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무엇이 있는데 아무 곳에서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말로만 내일을 젊어질 불자인
것이다.
나는 불교학생회 학생들처럼 착한 청소년은 없다고 본다. 그들은 절대로 문제의 청소년이 될 수 없고 탈선을 하지 않는다. 또는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불교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탓이지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불성이 이미 그들을 부처님 도량으로 인도했고, 누구보다도 빨리 깨어나고 싶다는 강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적부터 부처님을 가까이 해야 할 까닭이, 이 땅 모든 사람이 부처님 도량에 들기를 발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정녕 부처님 오신 날 부모가 자녀들의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부모님은 법문도 듣고 등도 켜면서 의미를 부여하지만, 어린 자녀들은 그 하루종일이 지루하고 재미없다. 예전 고려시대에는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띄우고 물징구를 치는 놀이도 있었고, 콩을 볶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인연을 맺는 일도 있었다. 또 저녁에 탑돌이를 할 때는 노인들이나 부녀자보다 청춘 남녀가 더 많이 나와 탑을 돌면서 좋은 배필 만나기를 발원하기도 했다. 모든 이들의 축제요 명절이었던 것이다.
그때 같지는 않더라도 이 시대에 걸 맞는 문화를 찾아보자. 청소년들의 재능을 살려 주고 그들의 특기를 펼칠 수 있는 행사로는 장학금을 건 백일장. 사생대회 등도 좋겠다. 백일장은 지금 대한불교청년회가 해마다 실시하고 있으니 여기에 종책적으로 여력을 보태 주고 규모를 확대하는 것도 좋고, 각 사찰 별로 해당 불교학생회와 가까운 곳에 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행사를 할 수도 있다. 청소년을 위한 불교도서 전시회, 그들의 손으로 만들어 출품하는 엽서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사회를 함께 인식하는 풍자극도 좋고, 전통을 되살리는 놀이 개발이라면 더욱 좋겠다.
청소년의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프로그램도 반드시 필요하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전용극장은 어렵다 하더라도 그네들과 어른들이 함께 어울려 볼 수 있는 불교 영화나 비디오를 선택해 그 날 일정한 장소에서 방영하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출연하는 연극을 꾸며보면 어떨까. 투자와 기획에 과감성이 따라야 할 일이지만 요즘 청소년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불러다 점잖 빼는 공연이 아니라 그들의 홍을 한껏 돋구워 보는 공연도해 볼 만하다. 청소년 코미디 경연대회는 어떨까. 불교방송이나 불교 텔레비전 같은 데서는 청소년들이 나와 신세대들의 불교관을 비롯해 그들만의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토크쇼 같은 기획도 꾸며보는 것도 좋겠다.
좀더 시야를 넓힌다면 불교의 기본이념을 살리고 지구촌 한가족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인식 아래 식량부족과 전쟁으로 기아를 겪는 아프리카 지역과 보스니아 등지에. 동족인 북한 청소년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부처님 오신날 때시지 보내기 둥도 시도해 볼 만하다. 물론 이러한 계획들은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계획을 세워 추진한다면 훌륭한 범청소년의 축제가 이 오월에, 부처님 오신 날에 치루어지지 않겠는가.
어린이 법회는 부족한 대로 마음 쓰는 곳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교계의 투자는 정말 인색하다. 각 사찰도 그렇고 종단도 그래왔다. 지금까지 워낙 방치해 두었던 분야여서 짧은 시간 안에 좋아지기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겠지만 포교원 같은 데서 종책 차원의 \'청소년 기획단\' 과 같은 부서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각 단위 사찰에 순수한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인 지도 역량을 펼 수 있어야 한다. 과감히 투자하여 듬직한 바탕을 이루었을 때 이 나라의 청소년 불자도 오월의 나무들처럼 쑥쑥 자랄 것이다. 그것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