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민족 축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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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남동하
1996년 05월 171호
싱그러운 녹음이 꽃보다 예쁜 5월이다. 산천초목에 물오르는 소리며 생장의 박동소리가 쿵쿵광광 들려오는 듯 하고, 형형색색으로 모습을 완연하게 드러낸 자연의 아름다움에 흥겨운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때가 이즈음이 아닌가 한다. 경전에서 부처님의 탄생장면을 읽지 않더라도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좋은 때 그 몸을 나투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불자들에게 부처님 오신 날은 불교최대의 명절이기도하지만 계절만큼이나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최대의 명절인 만큼 다채로운 행사도 준비되고 전국의 사찰에서는 이 날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해진다. 그리고 이 때가되면 불교계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불자들의 목소리도 한결 높아진다.
\"아무리 행사를 훌륭하게 치른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넘어l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에 그친다면 이미 그 뜻을 잃은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세인의 가슴에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데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좀더 목소리가 큰사람은 이렇게도 말한다.
“부처님의 법은 학술 세미나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토론대회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국군의 날처럼 퍼레이드를 해서 국민 앞에 시위를 벌이는 날도 아니다. 좁은 거리에 교통을 마비시키면서까지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본디 뜻을 살려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지. 교도소 양로원과 요양시설 소년원과 보육원 그리고 군부대를 찾아 그 분들을 위로하는 날로 삼아야한다. 설령 직접 찾아가지 못하면 조그만 선물을 마련한다든지, 또는 불서를 선물로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또 어떤 분은 \"부처님 오신 날 이 날 무주고혼을 떠도는 영가들을 천도했으면 좋겠다. 가깝게는 6·25전란에 전사한 장병들을 위해 국립묘지를 비롯해 지방 격전지에서 천도를 올려 드리면 좋겠다.\"
그런가하면 부처님 오신 날 이 날이야말로 불자답게 조용히 마음을 닦자고 하는 이도 있다. 다 좋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불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부처님 오신 날이 불자들만이 아닌 민족적인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75년 부처님 오신 날이 국가 공휴일로 정해진 덕택에 이 날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과연 이 날이 추석이나 설날처럼 우리 국민 모두의 축제일이냐 할 때는 그렇지 못하다고들 말한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을 ‘연등축제로 부르고, 이 날을 대 시민축제의 날로 하여, 갖가지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봉축위원회에서 올해 처음으로 만든 공식 휘장과 캐릭터도 기존의 봉축 이미지를 일신한 단면이다. 참신한 가운데 현대
적 이미지를 살련 데다가 특히 캐릭터로 만든 아기 부처님은 신선함마저 주어 부처님 오신 날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
부처님 오신 날을 민족의 축제로 승화시키자는 이야기는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날이 민족의 축제일로 성숙되지는 못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왜 그랄까.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해결점은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다 알다시피 부처님 오신 날 상징적으로 행해지는 연등微燈 행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즐긴 민속명절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관청과 시장 일반 민가에까지 등불을 밝히던 것이 조선시대에는 시찰과 민가로 제한되어 오다가 일제 시대 때는 단절되었고, 해방 뒤 오늘날에는 일가일등 一家一燈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은 확산되지 못한 채 사찰에서만 연등 행사를 하고 있다. 봉축 행사 또한 불자들만의 축제로 머물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제는 정말 불교인만의 축제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대중의 구체적인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는 이 시대의 문화 형태로 부처님 오신 날이 기념되어야 할 것이다. 해방 이후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외래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심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화가 재생되어야 하는 이 때 인만큼 우리 문화의 주류를 형성해 온 불교문화와 불교민속에서부터 찾아야한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하였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 이후 궁중에서도 사월 초파일 연등이 행하여졌다고 전한다. 그리고 공민왕은 직접 초파일 연등회를 열었고, 이 때부터 초파일 연등은 일반 서민층에까지 널리 행해졌다. 부처님 오신 날은 \'욕불일 浴佛日’이라고 하여 불자들은 이 날 새 옷을 갈아 입고저 가까운 절에 등불을 밝혔으며, 저녁에는 등석燈夕이라 해서 집집마다 등을 켜서 밝게 했다. 초파일 며칠 전부터 등대(燈垈)올 세우고 등대 위쪽 끝에는 행의 꼬리를 묶고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비단으로 만든 기를 달았다. 그리고 집안의 가족 수만큼 등을 켜서 달고, 등대를 세우지 못할 때는 처마나 나뭇가지에 등을 달기도 했다.
등의 종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수박등, 거북등, 오리등, 배府)등, 북(鼓)등, 연꽃등, 학등, 잉어등. 항아리등, 궁(劃)등, 누각(樓開)등, 화분등, 가마등, 머루등, 병등, 방울등, 자리등, 수복(壽福)등, 태평등, 만세등, 남산등, 그림자등 등. 그러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등의 종류도 많다.
서울 시내 등파는 집에서는 이렇듯 천태만상의 기이한 등이 많아 어린 아이들이 사서 장난하며 놀기도 하였다.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하여 축제 분위기는 자연 많은 사림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 때 민속놀이로는 영등影燈놀이가 있었다. 수부{물장구)라고 해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 놀이를 했다. 그리고 사월 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날이 특별히 없던 때라 이 날은 어린이 날 구실도 톡톡히 했다. 초파일 절 앞에 성대하게 장이 열리고. 거기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용품이 가득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간 어린이는 오면서 진기한 장난감을 들고 돌아오는 즐거운 날이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것은 어린이들이 연등의 비용을 만들기 위해 한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서 대나무에 기를 만들어 달고 성을 다니면서 쌀과 배를 구하는 호기(乎基 )풍속이 있었다. 기록에 보면 공민왕 도 두 차례에 걸쳐 어린이들에게 쌀 등들 하사한 적이 있다고 전한다.
민속 행사는 이렇듯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고 있다는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연등 축제가 일반대중의 관심사와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계는 이러한 의미에서 아주 좋은 우리의 전통파 문화유산과 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가졌다고 자랑하기보다 커다란 책임으로 받아들일 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우리는 선우’에서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하여 하고 있는 \'자비의 등 달기 행사\'는 좋은 행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방 자치제도 실시된 만큼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은 각 지방마다 모임마다 다채로운 행사들이 끝임없이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각 가정에도 등이 걸리기를 기대하면서 이 날이 어린이들에게 더욱 신명난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축제는 역시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볼거리가 많아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이 날을 위한 특색 있는 먹거리를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