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칠 년 동안 한 곳에서 표구점을 하는 주인이 있다. 주위에 이웃하던 화랑은 하나 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카페와 의상실이 들어섰다.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웃돈까지 얹어주며 사 가던 미술품이 사십 퍼센트 할 일을 해도 사는 사람이 없는 한파를 맞았다. 화랑가는 음식점 거리와 다를 것 없는 풍경으로 변하였고, 그 곳을 찾던 애호가는 집에 걸린 그림 몇 점으로 만족하는 양 발길을 돌렸다.
표구점 주인을 처음 본 순간 지금도 이런 사람이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서화에 찍힌 인장처럼 보이지 않는 선善의 인장이 얼굴에 찍혀 있기라도 한 듯한 인상이었다. 고매한 학식보다 나를 머리 숙이게 하는 것은 착한 섬성이기에, 겪어 보지 않았지만 절로 그 사람 앞에서는 조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주인의 얼굴에서 맑은 물 들여다보듯 내면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어눌한 말씨 탓도 아니고 수수한 옷차림 탓도 아니었다. 살다 보면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직관이 작용한 탓이었다.
표구점 주인은 그 가게에서 그 자
리가 화랑 거리로 사랑을 받던 시절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십여년동안 성실하게 모은 먹이를 단숨에 가로채려고 매 한 마리가 주인의 곁을 서성이기 시작하였다. 주인의 눈에는 경계해야 할 매이기보다 친구로 맞아들일 새 한 마리로 보였다. 주연은 동업하자는 새에게 먹이뿐 아니라 믿음까지 남김없이 주었다. 매는 멀리 날아갈 준비를 완벽하게 꾸며 놓고 어느날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생계의 젖줄인 표구점마저 빚으로 처리되어 길에 나서게 될 처지였다. 동생의 도움으로 가게는 간신히 살릴 수 있었지만 그 뒤의 고생은 말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 지난 상처를 더듬는 주인의 목소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 미움과 분노의 불길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월이 둥 두드려 주며 위로 해 준 까닭일까 하고 의문을 가져 보았지만 세월보다 강하게 이끌어 준 어떤 빛이 감지되어 왔다. 그 빛은 착한 천성天性에서 떠오르는 별 같은 것이었다. 별은 전구보다 쓸모가 없다 해도, 착한 사람은 무능하다고 비소非笑를 머금어도, 천 년 한恨이라도 씻어 줄 해맑은 얼굴은 선善밖에 없을 듯 싶다.
세 평 남짓한 표구 가게에서 진심하나로 십칠 년을 살아온 주인에게 올 봄에는 봄볕이 활짝 들기를 소망해 본다. 반야심경을 불佛자로 써서 선물한 스님의 기도하는 마음, 소중한 선물을 자신이 갖지 않고 내게 건네준 천진행 보살의 따뜻한 마음, 표구를 하여 거실에 걸어 놓고 복록을 바라던 나의 기도까지 착해 보이기만 한 표구점 주인이 받았으면 좋겠다.
선인은 역경에서도 즐거운 듯 한 얼굴을 하고, 악인은 번영할 때에도 고개를 꼬고 있다는 시인의 말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그런 만남이었다.
화신풍花信風이 몰고 올 봄비는 어디쯤 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