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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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6년 05월 171호
쌀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뒤주의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면 밥을 굶던 시절이, 그럴 때면
아버지의 야윈 뒷모습을 보이며 쌀을 꾸러 가곤 했다. tkF을 조금이라도 얻어 올 때면 아버지의 표정은 밝았지만 빈 손으로 돌아올 때면 아버지의 야윈 어깨는 더욱 처져 있었다.
오랫동안 그 소리와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고 살았다. 집집마다 뒤주가 사라지고 tkF통이 놓이면서 tkF은 더 이상 귀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해도 쌀밥은 풍족히 먹는 시대를 살면서 아련하게 가난과 허기에 붙어 있던 수채화 같은 정서의 물결까지도 내 기억의 장 밖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머리를 깎고 절집에 와 살면서 다시 뒤주를 본다. 통나무로 만들어져 나무의 무늬가 그대로 살아나는 사가의 궤. 밑둥과 머리는 널빤지를 대어 막고, 머리부분의 한쪽에 ANSwkR을 달아 열도록 만들어져 있는 뒤주.
세월이 흐르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들 삶의 흔적이 많이 지워졌어도 절집에는 여전히 그 삶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모두들 옛 것이라 말하는 것들이 절집에서 오늘이 되어 시간의 향기를 온순하게 피워올리고 있다.
어쩌면 절집은 세월의 창고는 아닌지, 기억의 잊혀진 것들이 절집의 곳곳에서는 현전 되어 끊어진 기억의 마디를 이어 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느리고 더딘 절집의 시간들.
절집에 들어서면 말해질 수 없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절집이 잊혀진 세월의 자취를 잊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두었기 때문이리라.
모두들 변화의 물결을 따라 바쁘게 흘러 가는 세상 속에서 승가만이 뒤에 남아 사라지는 것들을 사루어 세월의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