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는 불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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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박희승
1996년 04월 170호
1,200년, 너무나 장구한 세월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천 년이란 너무나 무거워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지구에는 천 년 이상 사는 생물이 없다. 그런데 1,200여 년 역사를 거치면서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이 있으니 \'해인사\'가 아닌가 한다. 그 동안 숱한 고승을 배출하여 인류의 정신 세계에 밝은 지혜와 큰 힘이 되었고, 대대손손 창달해 온 전통과 문화는 우리 민족과 인류에게 더 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처럼 훌류앟 스님과 소중한 문화 유산을 간직해 온 해인사가 오는 2002년 개산 1,200년이 될 떄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개산 1,200년을 내다보고 해인사와 우리 민족 문화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해인사는 창건된 이래 1,200여 년 역사 대부분이 왕권王勸시대였다.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된 당우와 사격은 왕이나 귀족들으 돈독한 후원 아래 거듭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절대 권력으로부터의 후원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은 대중이 주인인 민주시대이다. 해인사가 여러 가지로 제약 받고 있는 국립공원이라는 제도도 결국 권력자가 아닌 국민대중을 위한 것이다. 해인사뿐 아니라 종단 살림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라는 것도 실은 국민들이 부담하는 것이다. 까닭에 앞으로 해인사는 과거 왕정국가시대와 달리 점점 더 국민을 의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민들이 해인사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불자들은 수행 도량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정진하여 훌륭한 스님이 많이 나오길 기원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국민들은, 해인사가 천 년이 넘게 간직해 온 전통과 문화유산, 그리고 자연 환경의 보존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해인사와 같은 명찰은 대체로 수려한 풍광의 자연 환경 속에 있다. 하지만 산업화로 자연 환경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는 이즈음 수천 년을 간직하여 온 해인사와 가야산의 풍광은 세속적인 욕망에 연연하는 업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뒤는제 시작된 지방 자치제로 세수稅收 증대를 원하는 자치 단체의 과욕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해인사와 가야산의 자연 환경을 욕망 추구의 희생물로 삼으려 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해인사와 가야산은 골프장, 관광호텔, 케이블카 등 각종 위락 시설을 앞세운 욕망의 노예들의 무분별한 도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가야산과 해인사가 가지고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그리고 정신 세계의 빛나는 전통을 하루 아침에 파괴하는 어리석은 중생의 무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인사가 지금까지 1,200여 년을 거쳐 온 전통과 문화를 다가오는 2000년대에도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는 바로 해인사와 가야산의 자연 환경 보존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까닭에 해인사는 뜻 있는 전문가를 모으고 관계 당국을 설득하여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전통과 문화재와 연계된 개발 대안을 마련하여 물욕에 사로 잡힌 이들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해인사가 1,200년이 되는 2000년대는 흔히 문화의 시대라 한다. 온 인류가 20세기에는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물질적 풍요를 지향했지만, 21세기는 물질적 욕구를 넘어 정신적 성숙을 희구한다는 것이다. 이때 정신적 성숙은 바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창달로 연결된다. 미국을 예로 들면, 1965년 이후 박물관을 찾는 미국인의 숫자가 연 2억 명에서 5억 명으로 증가하여 박물관 비즈니스가 흥행하고 있다. 영화를 비롯하여 오페라나 미술관도 마찬가지로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 사람들이 생활의 여유를 가지면서 문화와 스포츠, 레저 생활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됨을 말한다.
이런 추세를 볼 때 해인사는 매우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해인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해 오며, 풍부한 문화 유산을 간직하여 왔다. 지난해 고려대장경과 판고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바와 같이 해인사는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데, 이것은 다가오는 문화의 시대에 해인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인지를 상상하고도 남는다. 특히 90년대 이후 대중에게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답사여행의 흐름을 보아도 앞으로 해인사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해인사는 이러한 시대에 대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찾는 내외 관광객들에게 전통을 계승한 다양한 볼거리와 상품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도 좋다.
아울러 해인사는 법보종찰의 전통을 현대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한 불사를 추진해야 한다. 팔만대장경은 진리의 보고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문 경판으로 남아 있는 한 신앙 대상과 문화재 가치에 머물 것이지만, 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전산화를 실현하고 우리말로 번역하여 현대인에게 널리 활용되면 우리 세상은 더욱 자비롭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해인사 한 사찰만의 원력으로는 쉽지 않겠지만, 선도적으로 나선다면 종단과 신심 있는 대중들이 많이 동참할 것이다.
또 해인사는 수려한 입지와 훌륭한 스님들을 활요하여 세속인들의 심신 수행에 노력하는 것도 좋겠다. 지금까지 해인사는 대체로 스님들을 위한 수행 도량이었다. 앞으로 해인사가 국민의 정신 세계에 이바지하려면 전통 도량 가까운 곳에 적정한 규모의 수련 시설을 갖추고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것이 좋다. 현대인들은 삭막한 도시 생활과 경쟁 위주의 인간 관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겨워 하고 있다. 수려한 입지 조건에서 만고의 진리와 전통적인 수행 가품을 계승하고 있는 해인사는 현대인의 심신을 치유하는 데 좀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인사는 주변의 전답을 활용하는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농경시대에는 각광 받던 토지가 시대 변화 속에 거의 버려지고 있다. 이제 탈농 흐름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전답을 매각할 수 는 없기에 사중에서 이유휴 토지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영농 법인을 설립하든지, 주말 농장을 운영하든지, 유기농볍을 도입하여 유기 농산물 생산을 통해 사중과 도시 사찰에 보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2002년에, 개산 1,200년을 맞게 되는 해인사의 미래에 대하여 몇 자 적었지만 실정을 모르는 처지라 엉뚱한 소리가 아닌지 두렵다. 하지만 해인사는 가깝게는 불자, 넓게는 국민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인류의 정신적 귀의처이다. 해인사를 소중히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유롭게 미래를 생각해 본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