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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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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당 바람결 - 영덕 1996년 04월 170호
마른 버짐 핀 까실한 얼굴로 팔랑개비를 돌리며 성황당을 지나 언덕을 달려가던 유년의 봄. 대추나무 가지 끝에 걸린 가오리연 같은 알 수 없는 외로움으로 오던 그런 봄이었지만, 그때의 바람 결에는 그래도 봄해살 같은 설레임이 있었다.
저의 고향은 운문사 비석거리/동북촌 쇄진한 몸 원응국사/비석 맡에 머리 누이고/행여 이 겨울이 마지막 일라/다투어 매화헌에 암향 그윽해도/다시는 못볼지 누가 알까/고목 그루턱에 물오르는/한가닥 새순으로 홍도야/홍도야 피어 볼 수 있을까/내 속에도 빨간 피 돌고 있다고/나즈막히, 나즈막히

유난히 짙붉은 꽃을 피우는 복숭아 나무이지만, 죽은 듯 서 있는 고목을 바라보며 읊던 시가 이젠 나의 독백이 되어 봄을 맞았다.
매원梅園에 빨갛고 파랗게 물오르는 새순이 투명하다. 영글게 부풀어 오르는 매화 꽃마울을 보며 살아 있다는 것이 느꺼워져 나도 모르게 눈물 겹던 날, 보이얀 햇살을 흠뻑 맞으며 담 밑에 재어 놓은 기왓장을 들쳐 내어 동글게 동글게 청태가 보기 좋은, 해 묵은 것을 골라 방에 들였다. 고색이 찬연하여 바라보고만 있어도 무한의 시공을 넘나들게 하는 색감이 참으로 기가 막히다.
요즘 가스 가마에서 일률적으로 찍어 나오는 시멘트 기와와는 같지 않아서 낱낱의 빚어 구운 솜씨가 역역하다. 두런두런 얽어진 문양이 흐릿하니 지워져 가고 검스레한 기와 한 장이 옅고 짙은 수많은 잿빛을 담아낸다.
퇴락하는 고찰의 툇마루와 낡은 풍경, 귀떨어진 석탑과 부도. 깨어져 아무 곳에나 뒹구는 빗살무늬 옹기 조각 햇빛에 반짝이는 파리 조각 후미진 비석거리의 적요. 이수도 없는 비석에 얼룩진 돌옷. 풍상을 견디어 온 속 빈 고목이나 놋그릇에 낀 신비한 파란 녹. 닳아서 모가 없는 댓돌에 패인 낙수자국……. 굳이 인고忍苦의 세월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어 오래 묵어진다는 것은 그 존재로 깔고 앉은 가시적 공간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의 여백이 더 엄청남을 느낀다. 문득 육십 인생을 쥔 두 손이 가냘프게 보인다. 유무를 나누고 유한과 무한을 나누며 터무니없는 분별과 차별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살림살이. 첫 발심했을 때 이미 돌이킨 마음. 이제는 본분사를 생각하며 한마음 푹 쉬는 일만 남았을 터이지만 십팔계의 망식妄識이 제각기 나 여기 있다고 외쳐대니 마음 닦는 일이 참으로 쉽지만은 않다. 초로草露 인생이라든가 풀 끝에 맺힌 이슬같이 어느 날 문득 없을 것을, 오륙십 년 뒤에 지금 이 글을 보던 이들 모두 옷 갈아 입으러 갈테지만 물은 흘러가도 결국은 바다에 들어가고 달은 떨어져도 하늘을 여의지 않는다 했으니 부처님 문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의심해 무엇하리.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듯 유형의 옛 것만큼 긴 울림을 주는 옛 이름도 많으니 다시 만고 뒤에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뒷사람을 위하여 오늘을 지혜롭게 살아내야 한다.
겨울방학 내내 산중에 있다가 몇 가지 볼일로 서울 나들이를 하였다. 내려오는 차편을 예매하지 않은 터라 볼일을 마치고 서울역에 갔을 때 오후 일곱시 표 한 장을 구할 수가 있었다. 두어 시간을 대합실 의자에 앉아 졸다가 다리도 풀 겸 전시실에 들렀다. 마침 국보급 문화재 영인본을 전시 예약하고 있었다. 들어서며 보이는 해강 김규진 선생의 묵죽도 병풍을 보니 막 피오나는 댓잎에서 히끗이 눈을 얹은 겨울 죽까지 춘하추동의 대나무가 기이하다. 언제부터인가 소나무와 대나무에서 느끼는 취향이 각별해진 터인지라 몇 바퀴를 돌며 보아도 무심히 돌아 설 수 있게 마음을 놓아 주지 않는다. 추사의 세한도와 묵죽도를 번갈아 감상하며 내심 내가 갖은 재산 전부를 셈해 본다. 마지막까지 남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만일을 대비해 모아둔 화장비火葬費가 서화 값은 될 성싶다. 아직 살아있고 건강하니 이것을 주고 두 작품을 산다면 중으로서 탐심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요즘 사회의 경제가 좋지 않아 어렵게 살아가는 이가 많다던데 이 시점에서 이것을 사는 것 지탄 받을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벌써부터 필요했던 화엄경 한 질을 들이는 것이 내 처지에 옳은 일이려니 하며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당장 편안하게 두고 볼 곳도 없으면서 나는 기어이 계약서를 쓰고 말았다. 진본이 아니고 영인본이라는 데서 투기와 탐심이 아닌 옛것에 대한 순수한 애정일 뿐이라는 변명을 찾으며.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제자 이상적이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서적을 구하여 남의 눈을 피해가며 갖어다 주니, 굳이 사제지간이 아니더라도 어려울 때 등돌리지 않는 인간의 정리가 고마워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척척 그려준 것이 세한도이다. 굽은 듯 늠름한 적송 아래 툇마루도 없는 사각진 집 하나. 이 그림에는 마흔다섯 명의 무수한 발문跋文이 있으냐 그 가운데 중국인 장악진章岳鎭의 발문은 능히 발을 멈추게 할만하다.

도란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는 법이며 사람은 세상을 잘 만날 때와 잘못 만날 때가 있는 법이다. 이런 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어서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가 성하면 세상을 잘 만나게 되고 도가 쇠하면 세상을 잘못 만나게 되는 것은 사람의 노릇이지 하늘의 뜻은 아니다.
전傳하여 말하기를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하여 겨울을 없애지 못하는 것과 같이 군자가 세상이 어둡고 혼탁하다 해서 그것을 함부로 고치지 못하는 법이니 이럴 때에 군자는 그것을 오히려 굳게 명심하여 때로 융성하고 때로 쇠하고 때로 순경하고 때로 역경하는 사이 그 진퇴와 존망을 잘 알아서 그 바른 바를 잃지 않는 것이 군자라 할 것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歲寒然後知松柏之後週\'라 곧은 절개는 눈서리를 겪은 뒤에야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절개란 평상시에 굳게 했다가도 잠깐 사이 변하는 수가 있는 법이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절개르 ㄹ간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가 송백이 산속 바위 틈에 서서 늙어도 고독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장차 재목으로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만일 목수에게 버림을 받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진실한 모습을 보존하는 것으로 만족함이로다.

검은선 밖을 드나드는 찬바람이나, 발문에서 보이는 인품의 향기, 몇 번을 되뇌여 보며 그 깊고 넓은 울림을 다 가늠하지 못한 채 돌아서 왔다. 문득, 김용준의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