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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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04월 170호
풍경이 좋고 햇살이 투명하게 쏟아지는 오후, 산방의 문을 열고 조붓한 산길을 따라 걷는다. 바라볼수록 따뜻하게 다가오는 하늘, 햇살은 이미 맑게 익어 하늘 놀이가 무료했던지 이 땅으로 단체로 소풍을 떠나왔나 보다. 내 온몸에, 내 발길에 푸짐히 깔리는 햇살, 눈을 감고 내 몸에 붙은 햇살에게서 하늘 내음을 맡는다. 먼 기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어머니의 젖내음, 햇살이 내게 건넨 하늘의 내음은 꼭 그런 것이었다. 하늘 아래서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아도 하늘의 내음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들이 잎을 벌려 고운 향내로 햇살을 유혹하는 산길 아래로 계곡의 물들이 괄괄괄 소리내어 흐른다.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 계곡에 손을 담구고 계곡의 물을 양손 가득 담고 하늘로 뿌린다. 햇살보다도 밝고 투명하게 낙하하는 물방울들,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며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면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반짝이며 걸어오는 내 어린 날의 마을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외나무 다리가 있고, 봄이면 마을의 아낙들을 이유없이 끌어들이던 개울이 흐르던 마을의 풍경.
그때부터였다는 생각이 든다. 개울에 서면 흐르는 것이 물이 아니라 햇살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녔던 것이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햇살이 맑은 날 흐르는 물 앞에 서면 나는 오래도록 그때 그 마을의 풍경에 사로잡힌다. 그때는 살아가는 것이 참 소박했었다. 그때는 봄이 오고 햇살이 이렇게 단단한 날이면 개울가에 빨래하는 방망이 소리가 깊은 산골 마을에 무슨 풍금소리처럼 떠다녔다. 집집마다 겨우내 밀렸던 빨래감을 벌여 놓고 수다를 떨던 건강했던 마을 아낙들, 늘상 만나 늘 주고 받는 이야기였지만 이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며 주고 받는 이야기는 언제나 그들에게는 새롭고 새로웠다. 겨우내 눈이 많이 와 애를 먹었다는 둥, 봄에는 무엇을 파종해야겠는데 돈이 될지 모르겠다는 둥, 가난에 시달리다 해동이 되자 이 산골을 떠난 집안의 이야기 등등. 그 모두가 고통스럽고 아픈 이야기뿐이었지만 개울가의 빨래터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슨 재미나 흥미거리로만 모두에게 다가설 뿐이었다. 아무도 이 개울에서는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흐르는 물에 빨래를 깨끗이 세탁하듯 그들은 그 걸직한 수다를 통해 아픔을 딛고 다시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만 같았다. 투박하지만 순박했고, 무지하지만 다정하고 다감했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함지박만한 질긴 웃음으로 겨우내 아팠던 마을의 이야기를 흐르는 개울에 실려보내고 봄햇살처럼 완만한 마음으로 가난과 아픔의 흔적을 지워 나갔으리라. 오래 묵은 기억의 사진을 보는 동안 그 때 그 사람들의 마음도 햇살처럼 투명하고 완만한 것이었다는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이제는 모두들 늙어 파 뿌리 같은 머리를 끄덕이며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아마도 그들은 지금도 그때처럼 쉬이 굴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한 바가지의 질긴 웃음을 웃으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이렇게 햇살이 좋은 날이면 그때 그 외나무다리가 있던 개울가로 찾아가고만 싶다. 가서 슬픔에 쉬이 무너지는 마음을 개울에 실려보내고 외나무다리에 걸터앉아 그때 그 사람들의 질기고 큰 웃음을 양손 가득 담아 올리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