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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교육,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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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효산 1996년 04월 170호
강원은 승가의 오랜 전통적 교육기관이며, 바람직한 수행자 양성을 목표로 지금까지 한국 불교의 동량을 수없이 배출하여 왔으며, 또 한국 불교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청년 승가의 기본 교육기관이다. 부처님 당시의 기원정사나 죽림정사처럼 공동체 생활 속에서 직접 일하고(운력) 대중 화합하며 경전을 익힐 수 있는 공간이 강원이다. 따라서 강원의 명칭 또한 지금의 \'승가대학\'에서 \'불교전문전통강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강원 교육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부처님 당시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고, 중국에 와서 차츰 구체화되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새로운 규범을 세우고 우리 나라에 넘어 와서는 지금의 강원 교육 제도로 정착되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수많은 강원이 있지만 비구니 강원을 제외하면 사미과에서 대교과까지 완벽한 시설과 교육 체계를 갖춘 강원이 몇이나 될지? 상상에 맡길 뿐이다.
기금의 강원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아직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맴돌고 있을 뿐 개선의 기미와 발전적 방향 모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다. 무릇 시대의 변천에 따라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시대의 흐름과 그에 따른 교육의 개편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 시대에 맞는 교육제도를 확립하고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안일한 교육 방법을 고집하여 시대의 조류에역행하는 오류가 범해진다면, 우리 불교는 침체된 낙후성과 정체된 고립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그 동안 강원 생활에서 느꼈던 몇 가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얼마전 교육원에서 제정된 교육 제도를 보면 내전과 외전을 함꼐 하도록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 재래식 강원 교육만 받은 스님들의 역량만으로는 요즘과 깉이 지적 수준이 월등히 향상된 재가 불자들을 포교화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한 현상을 떠나서라도 \'정체 현상\'을 빗고 있는 현 강원 교육 제도는 다분히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제도적 측면이다.
강원을 졸업한 뒤 좀더 전문적인 교학연구를 위한 종단적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최근 \'화엄학림\'(남원 실상사) 등의 학림제도는 좋은 본보기이다. 아울러 총림같은 큰 강원에서는 \'수의과\'같은 대학원 수준의 교육 제도도 하루속히 신설한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한문 경전 해석의 서당식 학습 방법에만 의존하는 현실은, 나중에는 학인들로 하여금 졸업만 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에 젖게 할 뿐만 아니라 교육 연구보다는 이른바 대중 생활을 통한 \'중물 들이는 곳\'이라는 소극적 차원에 안주하고 만다. 강원의 하루 생활이 아침 저녁 예불, 사시 예불, 간경, 발우 공양, 상강례, 강의, 논강, 운력 들이 전부일 수만은 없으며, 그것은 다만 기본 수행 과정의 척도일 뿐이다. 그러한 예불, 운력, 공양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잘 되게 하기 위해 이러한 범주에만 안주한다면, 언제쯤 우물 안에서 나올 수 있을까.
둘째, 교과 과목에 대한 의견이다.
가원이 승려의 기본 교육기관임을 감안할 때 불교의 전체적인 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도 불교사, 중국 불교사, 한국 불교사 등의 불교사 전반에 걸친 교과 과목, 그리고 선학 사상사, 교리 발달사, 비교 종교학 등이 필수 교재로 채택되어야 한다. 또한 현대의 시대적 배경에 걸맞는 세계화의 목표를 직시한다면, 영어나 일어 등의 외국어도 교양 과목으로서 필요하다고 보아지며, 이러한 외국어 실력 배양은 다른 나라의 불교 교학을 비교 분석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특히 비구니 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컴퓨터, 서예, 다도, 꽃꽂이 등의 배움의 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예라고 하겠다.
셋째, 교육 과정의 효율성에 대한 문제이다.
세미나식의 논강 체제는 전총강원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 중의 강점이다. 다만 그 논강 체제가 얼마만큼의 효율성을 담보하고 있는지는 각 강원의 입장에 맡기기로 하고, 덧붙이고 싶은 것은, 논강 체제가 그 논강의 내용을 자료화하면서 교학 연구의 근본 바탕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각 과목을 이수할 때마다 리포트 등의 과제 제출 방법도 교육의 효과를 높이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넷째, 강사진의 자질 문제이다.
강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여야 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곧 강원, 율원, 학림 등의 배움터 말고, 특별히 강사진 배출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말이다. 이것은 종단적 차원에서 다룰 문제이지만, 사자가 사자 새끼를 낳듯 큰 강맥들을 전문적으로 배출해 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좀더 구체적인 고민이 적은 관계로 단지 추상적인 메시지로 전달할 뿐이다.
그리고 교학 연구를 위한 환경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관광지가 되어 있는 까닭에 소음 공해를 피할 수 있는 알맞은 교육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해인사의 경우 강의할 수 있는 \'화장원\'이라는 이름의 좋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나 겨울에는 추워서 사용하지 못하고 또 비가 오면 습기가 차서 칙칙한데도 마냥 방치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강원은 처음 발심하여 행자 생활을 거치고 이제 막 계를 받은 풋중이 강원에 입방하여 대중 생활 속에서 경전을 공부함으로써 실질적인 스님으로 자리매김하는 곳이다. 대중 생활을 통하여 스님으로서의 자세를 익히면서 아침 저녁 예불, 발우 공양, 운력, 간경 등을 통하여 소위 장판때 묻은 스님으로 성장하는 곳인 까닭에 그 중요성은 그 무엇과도 견줄 바가 없다. 한국 불교 1600년이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새로운 변신의 모색이 없다면 급변하는 사회의 틀 속에서 정체된 한국 불교는 존립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불교의 이념을 실천하려면 교육의 변화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 인간의 가치관을 형성함에 있어 처음의 시작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강원에서의 생활과 배움이 앞으로의 생활에 밑거름이 된다고 볼 때 역사의 흐름을 통찰하는 안목을 열어 줄 곳은 강원에서의 배움이다. 강원 교육의 기간을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배울 것은 배우게 하고 졸업시켜야 한다. 어쩌면 전통 단절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는 현시점에 허황된 소리일지는 몰라도 한국 불교와 사회적 연관 관계를 염두에 두고 전통 강원의 특수성을 살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교육 방법이라 생각된다.
강원 교육의 목적과 그것에 의하여 표출되는 강원 교육 과정의 개편은 필연적이며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