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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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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혜민 1996년 04월 170호
임이시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건너시고 말았네.
오오 님은 물에 빠져 돌아가셨네
임이시여 임이시여 어이할꼬.

고조선 때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는 \'공후인\'은 이 땅에서 불리어진 최초의 노래이다.
인간은 언어가 소통되기 시작하면서 곧 그들만의 노래를 만들어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노래를 좋아했다. 일찍이 백제의 서동(무왕)은 아름다운 신라 여자 선화 공주를 노래의 위력에 힘입어 아내로 맞이하였다.

선화 공주님은/남 그윽히 얼어두고/맛둥방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

유명한 서동요라는 노래이다. 서동이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때 광덕이라는 수행자는 늘 노래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본성을 정화하여 깨달음에 도달하였다.

달님이시여/서방까지 가셔서/무량수불 전에/일러다가 사뢰소서/서원 깊으신 부처님/우러러 두 손을 모아 올려/원왕생 원왕생/그리는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아, 이 몸을 남겨 두고/사십팔대원을 이루실까.

그는 이 \'원왕생가\'라는 노래를 타고 극락세계로 날아갔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에 살어리랏다/머루랑 다래랑 먹고/청산에 살으리랏다/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산이나 들에 나가 일하다가 힘들고 서러워질 때 옛 사람들도 노래의 리듬으로서 슬픈 감정을 달래곤 하였다. 그들은 농사철이 시작되면

곡우절기 가까우면/못자리를 해야느니/물꼬를 깊이 치고 도량 밟아 물을 막고/한편에 모판하고/그 나머지 삶이 하니/점심밥 두루 갖춰 때 맞추어 내어오니/농촌의 후한 풍속 먹는 음식 안 아끼어/일꾼의 처자 권속 모두가 같이 먹네

들판에 나가 합창하여 삶의 신명을 돋군 노래를 \'농가월령가\'에는 기록하고 있다. 가난과 슬픔의 세월을 사는 사람일수록 노래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내가 어릴 때 마을 뒷산에서는 늘 꿩이 울었다.

꿩꿩 장서방/어찌어찌 사는가/새끼들은 많은데 숟가락은 적고요/꿩꿩 장서방 어찌어찌 사는가/먹을 것은 없어도 그럭저럭 산다네

보릿고개 시절 긴 겨울을 넘어야 했던 사람들은 앞산에 꿩이 울면서 건너편 동무 꿩에게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울었다고 말하곤 했다. 꿩 우는 소리까지 자신의 모습을 대신해서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끝없는 압박과 설움에서 늘 뒷북만을 치던 그들이기에 서로 의지하며 덮을 수 있는 이불은 노래만이 그들의 친구였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들판에서 산골에서 어깨동무하며 합창을 하면서 눈물과 웃음을 나누었다.
우리 시대의 한 시인은 이런 노래를 지었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새가 되자 하네 새가/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애는/파랑새가 되자 하네/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불이 되자 하네/불이 되자 하네/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느/들불이 되자 하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노래가 불러지는 한 우리의 앞날은 매우 밝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가 사는 땅에는 그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는 집들이 많이 생겼다. 땅덩이가 작아서일까 유행은 시골이라도 예외가 없다. 냄비 끓듯 전국 방방곡곡은 그야말로 노래방 산천이 되었다. 줄잡아 이만오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곳저곳 면소재에도 얼마전에 노래방이 두 개나 생겼다. 빈 집들은 해마다 늘고 문전옥답은 잡초만이 무성하고 분교는 폐교가 되었다. 그런데 시골 면에 가요방의 불빛들이 도시처럼 깜박거리고 있다.
확실한 민족 사상과 이해가 없을 때 문화는 공해가 되기도 한다. 민족의 전통이란 수많은 사람의 살과 피와 땀에서 얻어진 응집된 탈일진대 고유의 문화를 배척하고 상실한 사람들이 무슨 상표를 만들 수 있으랴. 오늘날 성행하는 대중문화는 뿌리는 뿌리끼리 줄기는 줄기끼리, 색깔이 달라서 올라오는 것들은 거의가 서양문화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 민족의 긍지는 찾기 어렵다. 오죽했으면 \'국악의 해\'라는 것을 정했을까마는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처방이 즐비하게 나오는데도 초등학교에서 사물이나 민요 같은 것을 여전히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누적된 피로와 억눌린 정서로 인하여 봄날에 느끼는 춘곤증 같은 나른함을 가지고 있다. 개인과는 전혀 상관 없이 뭉개구름처럼 자꾸만 밀려오는 아픈 고통을 맛보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꿈은 멀고 좌절만이 우글거리는 거리에서 희망과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
\"왜 사느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냥 내가 있을 뿐 지금의 나는 신나고 싶을 뿐이야.\"
요즘 신세대가 갖고 있는 행동 양식이다. 이런 시대에 철학적이고 고전적인 행위들이 어느 적에 쓰여질 것인가. 가볍고 단순한 행동에서 의식은 점점 야하게 벗겨지기 마련이고 부담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노래방만 한 곳이 쉽게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을 찾기 마련이고 출가한 스님들도 더러 그 곳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에게도 십팔번은 있기 마련이다. 나도 몇 번가서 노래를 불렀다. 비좁고 탁한 공기 속에서 십팔번을 부르기는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지가 되어 함께 들어간 벗들은 노래가 시작되어도 귀기울여 듣는 곳이 아니다. 저마다 다음에 부를 노래 찾기에만 바쁘다. 자유와 정겨움의 정서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합창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산과 들에서 어깨동무하면 손뼉을 치고 부르던 노래들은 거기서는 노래가 될 수 없었다. 얼마전만 해도 빙 둘러앉아 손뼉을 치며 합창을 했다. 부르는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누군가 노래의 머리에 목청을 돋구었고 기름에 불 붙듯이 금세 노래는 들불이 되기도 하고 파랑새가 되기도 했다. 노래는 사람들을 더욱 그리워하게 하는 묘약을 지니고 있었다.
샘물처럼 선량한 노래들을 이제는 그 굴 속으로 들어가서 부르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지금 한반도 남녘땅은 노래방 산천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곳은 햇빛도 바람도 공기도 없는 답답하고 좁은 곳이지만 은전 한 닢으로 세상의 꿈과 사랑을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기에 사람들은 곧장 그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노래들은 이제 갇힌 닭장의 신세가 되어 누가 와서 찾으면 화창한 얼굴로 그 곁으로 가 앉는다. 그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이 터를 잡고 씨를 뿌리며 산과 들과 집에서 싱싱하게 부르던 노래들은 이제는 더 이상 노래가 아니다. 노래는 마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나는 야채처럼 감호소에 갇힌 장기수의 모습처럼 표정을 잃는다. 합창이 없는 시대에 피오나는 노래방 산천은 무성하기만 하고 그대도 사람들은 잘도 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