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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귀한 유마거사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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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성기서 1996년 04월 170호
내 글 때문에 \'유마의 방\'을 이번 호 만큼은 \'중생의 방\'으로 제목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양심에 비추어 나는 결코 유마거사처럼 착한 업을 짓지도 않았고, 그 분처럼 부처님에 버금가는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으며, 부동여래不動如來가 살고 있는 미묘한 기쁨이라는 이름의 묘희妙喜 세계로부터 이 사바 세계로 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가 지은 업에 휘둘려 사는\' 나와 달리 그 분은 대승보살로서 원력으로 몸을 받아 세상에 나와서 중생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으로 삼으셨으니 그 분의 이름을 빌리는 것조차 내게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잘 것 없는 나의 생각이나 체험보다는 먼저 유마거사의 단편單片이라도 짚어 보는 것이 나의 도리라 생각한다.
불교의 크나 큰 두 수레바퀴(지혜와 자비) 가운데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우주적 생명체가 한 몸임을 알고 실천하는\' 대자비심을 생각해 보자. 유마거사가 병들었을 때, 부처님을 대신해 병문안을 온 문수보살이 \"그대가 아픈 원인은 무엇이며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까? 그 상태는 어떠하며 언제쯤이면 병이 낫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유마거사가 답했다. \"이 세상에 어리석음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혹시 모든 사람들이 병고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때 제 병도 씻은 듯이 낫겠지요. 문수보살이시여, 보살이 기꺼이 윤회 가운데 뛰어든 것은 오직 중생을 위해서이며 제가 아픈 것도 사실은 저 윤회가 원인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병고에서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보살의 병도 씻은 듯이 낫겠지요.\"
탐욕과 진애와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에 중독된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일념에서 중생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이 대자비심은 무조건적이며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초월한 것이다. 유마거사는 윤회를 반기느느 모든 마魔와 그릇된 주장을 반기는 외도들이야말로 자기의 진정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삼악도에서 고통받고 있는 일체 중생을 위해 반드시 대자대비한 마음을 일으켜, 그들 역시 마음을 바르게 꿰뚫어 보아 스스로 병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함을 강조하는 유마거사의 자세에서 우리는 대승불교 특유의 드넓은 포용력을 본다. 모든 중생이 본래 절대 평등한 존재임을 스스로 꿰뚫어 보고 그들이 자신을 미워하든 훼손하려 하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혜와 방편을 갖추어 이들 스스로 자신이 해탈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서 역사 속으로 뛰어드는 인간의 위대성을 본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몸과 입과 뜻으로 남의 목숨을 해치고, 주지 않는 것을 갖고, 음행淫行하며, 거짓말하고, 술을 마셔 이성을 잃은 적은 없었는가? 아주 많다. 아니, 이것은 고사하고, 남이 잘됐을 때 함께 기뻐하고, 남이 슬퍼 울 때 함께 눈물을 흘려 주고, 남이 아플 때 같이 신음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별로 없다.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내가 무명無明에 사로잡혀 있기에 착한 일은 하지 못하고 악한 일만 많이 해왔다는 것. 그래도 다행히 백천만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그 가르침이 위없이 깊고 깊으며 미묘한 줄 믿어 그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 때문에, 오늘은 어제보다 더 욕심부리고, 덜 성내며, 어리석은 행동으 ㄹ덜하고자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자리에 틈틈이 앉아 마음을 들여다본다.
달마대사의 \"마음 관하는 이 법이 일체를 다스린다\"는 말씀을 실천함이 \"어떠한 존재도 본래부터 청정하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모든 중생이 원하는 대로 따라 주는\" 유마거사의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 주는 본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 부처님에게도, 유마거사에게도, 내게도, 모든 중생에게도 고루 갖추어져 있다 하니, 내 할 일은 오직 이를 몸소 확인하고, 거기서 얻은 지혜와 방편으로 윤회의 세계로 뛰어들어 고통받는 생명 있는 것들을 돕는 일일 것이다.
지혜와 방편의 긴밀한 관계를 유마거사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방편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혜는 속박이고, 방편이 뒷받침되는 지혜는 해탈입니다…, 그릇된 견해와 번뇌와 수면과 집착과 성냄을 끊고 모든 선근을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위해 회향하며 이러한 일을 조금도 과시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지혜가 뒷받침되는 방편이고 해탈인 것입니다.\" 세계적 종교 백화점인 우리 나라. 그리고 21세기의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이 중요한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여 불교인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불교를 바르게 알려서 갈등과 반복보다는 이해와 조화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이루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몫일 것이다. 더욱이 종교에 관한 한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공공연히 자신의 종교를 두둔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종교활동에 불편을 끼치고서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느끼지 못하는 이 불쌍한 사람들까지도 제도해야 하는 우리 불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지혜와 방편일 것이다.
이 지혜와 방편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떠한 존재도 본래부터 청정하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스로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남과 어울려 살다 보면 내가 불자임을 까맣게 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특히 종교가 다른 사람과 의견 충돌이라도 생겨 말다툼이라도 하고 나면 괜히 부처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한다. 명색이 불자이니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먼저 상대의 뜻에 순순히 따라주고, 나중에 알맞은 때를 골라 옳고 그름을 가리면 그 처럼 서로 얼굴을 붉혀 가며 미워하지는 않았을테니까. 비길 데 없이 훌륭하신 스승의 이름을 더럽힌데다, 상대편이 가슴 아파했을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은 더욱 쓰리다. 나고 죽음이 구름 한 조각 생겼다 사라지는 것과 같이 무상하고 짧을 진대, 어찌 동업중생과 착한 업을 지어 둘이 함께 성불하기는 커녕 온갖 선근善根을 해치는 분노의 노예가 된단 말인가.
이제는 모든 것 놓아 버리고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부지런히 닦아 유마거사의 가르침을 오느러에 실천하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불자가 되자고 새로이 원을 세운다. 부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늘의 유마거사들이 이 세상 가득해 가는 곳마다 불국토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행복하기를!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