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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다운 업과 율다운 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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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주경 1999년 04월 206호
요즘 불교신문을 펼치면 매주 초심호계원의 개정과 판결에 대한 공고문이 굵은 고딕체의 글씨로 눈을 자극하고 있다. 신문을 넘기면 해종행위조사특별위원회의 동원 공고가 같은 크기의 활자로 찍혀 있고 공고문 아래에는 인적 사항과 동원 일시를 알리는 도표가 나온다.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를 빌미로 종단을 분규와 혼란에 빠지게 하고 한국불교의 위상을 떨어뜨린 이른바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에 대한 조사와 심판이 한창이다.
그 명단을 보면 그 동안 종단의 중진과 소장으로 활동하여 이름이 익숙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에는 종무와 불사, 포교의 현장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도 있어서 아쉬움을 표하는 스님들도 없지 않다.
경에 이르기를 “만일 모든 비구가 다투며 ‘죄를 범한 비구와 죄를 들춘 비구가 있다’고 서로 말할 때에, 이 바른 생각에 따라 스스로 살펴보지 않으면, 그런 비구는 긴 밤 동안 거칠게 날뛰어 싸움은 갈수록 더하고 서로 어기어 맺는 원한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일으킨 죄에 대하여는 바른 법률로써도 그치게 하고 쉬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여, 죄가 있는 사람이나 죄를 들춘 사람은 마땅히 바른 생각에 따라 스스로 관찰하여, 긴 밤 동안에 거칠게 날뜀을 더하거나 자라게 하지 말라. 모든 비구여. 그렇게 하면 싸우지도 않게 되고 일어난 싸움도 능히 법률로써 그치게 하고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또 부처님께서는,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에게 겸손하고,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라는 우바리존자의 물음에 “아니니라, 우바리여”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이번의 종단사태에 따른 징계는 철저한 계율 정신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인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법과 율의 시각이 아닌, 정치적 시각으로 죄를 판단해서 자칫 넘치고 모자라거나 치우침이 생기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종단은 율장과 경장에 따른 삶의 방식을 지켜 오지 못하고, 세속의 법에 가까운 종헌종법에 더 많이 의지하고 지내 온 까닭에 종단과 한국불교를 욕 먹이고 옛 스님들과 부처님께 누를 끼치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번 징계와 관련된 공고문에 나온 “… 특정 징계 대상자를 원칙 없이 옹호하고 지나친 변론을 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는 바…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모든 종도들 앞에 엄숙히 밝혀 둡니다”는 구절은 조계종의 현실에는 맞을지 모르나 승가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이고 강압적인 힘의 논리를 담고 있어 씁쓸한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바로 잡아야 할 승가의 질서와 규율은 뚜렷한 가닥을 찾기가 힘든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단은 수행이 깊고 경과 율을 두루 갖춘 훌륭한 분을 총무원장으로 모셨다. 지금이야말로, 이에 의지하여, 세속의 정치 논리를 넘어서서 초발심으로 돌아가 경율經律과 그 정신에 의지한 본디 종단의 모습을 찾아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