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과 절망감에 놓인 분들, 예를 들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자리自利가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까요? 본인수행을 우선시하는 수행자가 고통 속에 있는 분들에게 힘이되겠습니까?
<대지도론>에 있는 말씀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인용해 보겠습니다.‘ 보살의 법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그 본분이거늘. 무슨 까닭에 숲 속에 한가히 앉았거나 산 속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 한 몸만을 좋게 하고 중생들을 버리는가? ’라는 질문에‘보살이 몸은 비록 중생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항상 버리지 않았나니 조용한 곳에서 선정을 구하는 진실한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비유하건대 약을 먹고 몸을 조섭하거나 잠시 집안일을 쉬었다가 기력이 회복되면 전과 같이 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답합니다. 자리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도 이와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리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복지, 템플스테이, 단기출가와 같은 사회참여적인 이타의 활동이 있는 반면에 자리를 우선하여 수행하는 수좌스님들은 사회에 어떤 기여를하고 있을까요?
재가자와 함께 정진하는 시민선방을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수좌 스님들이 재가 불자님들의 선지식 즉 멘토가 되어 주는 이타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 시민선방만을 예로 드셨는데 납득할 만한 답변이 되기엔 사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소외계층인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더 나아가 해외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자리는 제한적인 도움만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앞서 선지식이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선지식은 종교적 지도자로서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장이자 티베트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 더 나아가 고난에 찬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는 종교인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강연이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이라마에게는 여러 생을 통한 자리의 성취가 이러한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법륜 스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고민을 듣고 즉각적인 해결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성숙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즉 이타의 실천은 자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자리의 가치를 우선하게 됐습니다.
●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리는 이타의 실현을 위한 것입니까?
생각합니다. 자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완성하여 깨달음을 얻으신 후 45년동안 진리를 설하는 이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리를 구하는 것은 이타의 실현을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토론을 통해 문답을 주고받은 모두는 자리와 이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며 앞으로의 수행 방향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깨달음 너머>가 도반들과 함께 길을 찾아가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