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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너머>의 첫 토론, ‘지금 현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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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진현(해인사승가대학 3학년) 2017년 01월 419호
조계종 기본 교육 기관의 교육방식이 토론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 조계사에서는 <학인토론대회>도 열렸습니다. 해인사승가대학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강의시간에 학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학장스님께서는 이러한 토론식 수업이 정착될 수 있도록 공식적인 토론모임의 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하기도 하셨습니다. 학인으로서 겪었던 고민이나 문제의식에 대하여 고작 지대방 잡담 정도로만 끝나곤 했던 것이 그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원 3학년 중심으로 5명 곧 효연, 황림, 봉림, 혜인, 진현 스님이 모여 <깨달음 너머>라는 토론모임을 결성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토론모임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이라면 맥락없는 몇 마디 말로 지리멸렬하게 대화를 끝내고 말았을 문제들을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하고, 또 다루기 민감한 주제들까지도 거침없이 자유롭게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강사스님들도 학인들의 교육이 토론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면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
셨습니다.
<깨달음 너머> 첫 모임에서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대화가 오
가는 도중에 간화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토론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간화선은 대
승의 탈을 쓰고 있는 소승불교가 아니냐?”라는 한 스님의 말을 시작으로 격한 논쟁이 오고갔습니다. 갑론을박의 제법 긴 논의를 통해 토론의 주제를‘지금 현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리自利인가? 이타利他인가? ’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 앞서 각자가 생각하는 자리와 이타의 뜻을 간략히 정리한 후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리란,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의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며 수행하는 것을 말하고 이타란, 스스로의 수행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리의 가치에 우선하는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지금은 수행이 갖춰진 정신적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고, 이타 측 의견은 “지금 당장 자신의 수행을 잠시 미루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직접 나서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불교를 공부하는 우리가 세간을 벗어나 자기 깨달음을 향한 자리를 추구해야 할 것인지, 세간 속으로 들어가 고통과 좌절을 겪는 이들과 호흡하며 함께 이타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다양한 학사대 <깨달음 너머>의 첫 토론, ‘지금 현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
의견들이 분분했습니다.전체 토론 내용 중 중요한 부분만 추려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고통과 절망감에 놓인 분들, 예를 들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자리自利가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까요? 본인수행을 우선시하는 수행자가 고통 속에 있는 분들에게 힘이되겠습니까?

<대지도론>에 있는 말씀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인용해 보겠습니다.‘ 보살의 법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그 본분이거늘. 무슨 까닭에 숲 속에 한가히 앉았거나 산 속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 한 몸만을 좋게 하고 중생들을 버리는가? ’라는 질문에‘보살이 몸은 비록 중생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항상 버리지 않았나니 조용한 곳에서 선정을 구하는 진실한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비유하건대 약을 먹고 몸을 조섭하거나 잠시 집안일을 쉬었다가 기력이 회복되면 전과 같이 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답합니다. 자리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도 이와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리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복지, 템플스테이, 단기출가와 같은 사회참여적인 이타의 활동이 있는 반면에 자리를 우선하여 수행하는 수좌스님들은 사회에 어떤 기여를하고 있을까요?

재가자와 함께 정진하는 시민선방을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수좌 스님들이 재가 불자님들의 선지식 즉 멘토가 되어 주는 이타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 시민선방만을 예로 드셨는데 납득할 만한 답변이 되기엔 사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소외계층인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더 나아가 해외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자리는 제한적인 도움만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앞서 선지식이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선지식은 종교적 지도자로서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장이자 티베트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 더 나아가 고난에 찬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는 종교인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강연이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이라마에게는 여러 생을 통한 자리의 성취가 이러한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법륜 스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고민을 듣고 즉각적인 해결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성숙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즉 이타의 실천은 자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자리의 가치를 우선하게 됐습니다.

●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리는 이타의 실현을 위한 것입니까?

생각합니다. 자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완성하여 깨달음을 얻으신 후 45년동안 진리를 설하는 이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리를 구하는 것은 이타의 실현을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토론을 통해 문답을 주고받은 모두는 자리와 이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며 앞으로의 수행 방향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깨달음 너머>가 도반들과 함께 길을 찾아가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