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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각사佛刻寺에 사는 와편각슈瓦片刻手 여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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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시중 - 정영주 2017년 01월 419호
충남 금산 외딴 산골짜기에서 와편각하는 여공 스님을 만났다. 한창 터전을 닦아가던 중이었다. 그런
데 흙더미 위에 익숙한 ATM기 부스 하나가 덩그러니, 전화도 안 터진다는 곳에서 그 존재감은 참 이
질적이었다. 산골 전시장을 준비하신다는 작업장에는 와편각 작품들이 채워졌다. 사진 너머 작품들의 맨얼굴은 역시 시선을 잡아두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호기심이 새록 했다.
스님의 와편각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손에 호맹이(호미) 들고 마당을 그렇게도 못살게 굴었단다. 땅을 파헤치거나, 그림을 그리고서 툇마루에 앉아 감상하기도 하고. 동네 가마터에서 흔하게 구했던 도자기 파편에다 또 뭔가를 새기며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다. 스님의 와편각은 이미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인사동 전시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 조각을 잇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네들끼리 뭔가를 얘기하다가 가고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가고 그러길 몇 번은 그랬단다.그 모습들이 하도 의아해서 알아보니 천연염색, 서각, 서예 전공자들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스님의 와편각 작품이 제각각 그들의 세계로 읽히니 흥미로워 입소문이 났단다. 여공 스님의 작품들은 고민과 노력의 시간 그 결들이 더해져 감히 흉내 낼 수 없는‘여공 스님 표’작품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 한 방향만이 아니라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무애無碍한 길이 보였나 보다. 얼핏 봐도 기와조각, 천연염색 그리고 옻칠의 만남은 친화력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공 스님은 접점을 끌어냈다. 그리고 조각의 새로운 분야 그 길에 홀로 서 있다.‘ 일도일각一刀一刻’한호흡, 한 번의 칼이 만들 모양을 정확히 계산하여 한 번에 새긴다. 스님에게는 그것은 수행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도일각의 결과는 즉각적이다. 이보다 더 엄격한 수행이 있을까.
그래서인가 스님의 시선에는 걸림이 없는 듯하다. 선입견의 벽에 갇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쉬운 게 우리네 삶이지 않던가. 원칙이 없는 것이 스님의 원칙인가 싶다. 그래서‘와편각슈 여공스님’에수식어가더늘어난다.‘ 시쓰는석여공스님’ 거기다 ‘고요숲’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시집 제목 <앉으라 고 요>에도 발상의 전환이 엿보인다. 시집 속에 시어들은 정해진 제 길은 없었다는 듯 풀어냈다 당겼다 하며 의미와 리듬감이 마치 달통의 경지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 출판사를 만들게 된 연유는 아픈 것이었다. 스님의 시를 팔아먹으려는 자들 덕분이었다고, 스님의 와편각 작품들을 보고 해외 전시를 하자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들에게 속은 실망과 아픔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작품 <만고중생>이 탄생한 것일까. 참 힘이 든 시절, 절망과 좌절로 너덜해진 마음을 기워가는 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니 필자의 간곡한 바람이 인다. 홀로 뒤로 걸어가는 이에게 발자국마저 지워버리는 심술궂은 바람은 물러나기를. 홀로 뒤로 걸어가는 사람, 여공
스님의 각은 고독하지만 결국 희망과 자유를 내안에 새기는 간절함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