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그렇게도 열망하던 게 여긴 없어. 시도 사상도 없는 노동뿐이라니.’사유하는 것은 인간을 알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란 말씀이다. 중생의 번뇌가 팔만사천 가지여서 팔만사천법문을 하신 부처님처럼 모든 중생과 소통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렇게도 열망하는 것들이 우리에게서 찾아지지 않겠나 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오늘도 선방으로 법당으로 율원으로 하나 둘 향하시는가. 지혜와 자비라는 두 날개를 펼치기 위해서, 수행을통해 지혜를 닦고 소통으로써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러니 날마다 스님들도 공부하시고 우리도 그 모습을 좇아 공부할 밖에.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어떤 힘으로도 상대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린 모두 밖으로만 나가기 바쁘다. 사는내내 집 밖에서 마음 밖에서 서성이느라 늘 불안하고 점점 소진되는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 한다. 마음 안에 주인이 없으니 텅 비어 누가 집을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프니 큰일이란 말씀이다.
“유럽 사람들은 집을 살 때 골조만 사요. 그러고는 남편과 아내가 함
께 문을 달고 마루를 깔며 집을 가꾸어나가지요. 주말이면 아내는 살림을 하고 남편은 장작을 준비해요. 그리고 함께 정원에서 꽃을 심고나무를 가꿔요. 그런데 우린 주말만 되면 모두가 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요. 내면을 가꿔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줄은 모르고.”
남들 눈에 근사해 보이는 집 한 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살다가 그 집장만한 후에야 문득 고개 들어보니 주름이 자글자글한 몸만 남았다. 이런 한 줄로 인생이 요약되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집 지키다가 인생이 끝나버리고 말 중생들에게 던지는 말씀이다. 그러니 스님들은 어찌 사시는지 그 걸음을 곰곰 들여다볼 법 하지 않나. 당신들께선 그래서 살만하신가. 그리 살면 우리도 정말 행복해지는 건가.
“종교는 인간의 삶에 성스러운 가치를 부여하는 거예요. 우리가 자기 자신을 성스럽게 생각할 때에성인聖人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불교를 믿는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한 거예요. 그렇게 살아가는 성직자들을 보면서 누구라도 자신을 성스럽게 만들어 갈 수 있어야지요.”
도시의 흔들리는 밤거리가 아닌 새벽바람을 가르며 산사의 법당으로 가는 스님들의 발걸음에서, 돈을 붙잡기 위해서 허둥대는 게 아닌 가지런히 합장한 스님들의 두 손에서 우린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스러운 순간과 그 순간의 무한한 확장을. “물질이 없어도 희열을 느끼며 사는 모습을 중생들에게 보여주는 게 스님들의 역할이죠. 그렇게 성스러운 가치를 중생들이 느낄 수 있게 해야지요.”
스님은 인간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단다. 사람들이 패션모델이 입은 옷을 보고 그 옷을 입고 싶어 하듯이 스님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흉내라도 내다가 그게 점점 익숙해져서 그렇게 살게 하는 것. 어려운 교리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부처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더 빠른 방법일 것이라고 향적 스님은 말씀하신다.
“스님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성스러워지기 위한 것이에요. 제 자리를 잘 지키며 여법하게 살아갈때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존경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야 그 길을 따르겠지요.”
그것이 종교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는 수행자의 걸음을 중생들이 제 발로 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이 아무 것도 모른 체 물속에 잠겨갈 땐, 그것을 알면서도 고개 돌린 채 누군가는 가책도 없이 살아갈 땐, 그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의 커다란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여쭙는다.
“자기 역할부터 제대로 해야지요. 전쟁은 군인이 하고 경찰은 사회질서를 잡고 정치는 정치인
이 하고. 그러나 한 배를 타고 가는 공동체이니 배가 뒤집힐 때엔 종교 지도자들이 지적을 해야겠지요.”
향적 스님은 이 국면에서도 희망을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지금껏 대한민국은 비상식이 통하는 나라였으나 이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그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치를 가지는 것이니. 그러니 우린 이 상황을 씁쓸해할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거울삼아 살아가야 할 것이란다. 그러면서 한 걸음씩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사람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인간은 신비하고 미묘해요. 수행이라는 건 그런 미스터리한 인간을어떻게 아느냐의 문제죠. 참 어려워요.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서.”
향적 스님은 아무리 살아도 사람이 참 어렵단다. 부처님의 제자로 50년을 살아왔음에도. 그러니 세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얼마나 버겁고 눈물겨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인간들이 버젓이 인간의 탈을 쓰고 활보하니 얼마나 우스운 나날들인가. 인간을 알기에 인간을 치유하였던 부처님의 걸음이 얼마나 필요한 광화문인가. 해가 기우는데 향적 스님은 또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신다. 내일은 또 어디로 가시려는가 여쭈니 스님은 그저 미소로 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