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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해인, 온고지신의 교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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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해인, 길에서 길을 묻다 - 현진_청주 마야사 주지 2017년 01월 419호
학인시절 화엄경을 공부하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편집장 도각 스님이 찾아와서 해인지에 글을 연재하자고 제안했다. 풋내기 수행자였던 나로서는 과분한 일이기도 했지만 가슴 설레는 특전이기도 하여서 꼬박 2년을 독자들과 만났다.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공식적인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해인의 지면은 일종의 데뷔 무대였던 셈이다. 이후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펴낸 책이‘삭발하는 날’이니까 월간 해인은 내겐 고마운 은인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아현동 편집실 시절의 풍경도 좋은 그림으로 남아 있다. 달동네 끝의 감나무 집. 야트막한 계단과 수돗가. 그리고 방 두 칸의 사무공간이 있었다. 그때는 그곳이 편집위원과 더불어 필자들의 다담 장소로 손색없어서 안방 드나들듯 했었는데 지금은 과거의 사진이 되었다. 가끔 아현동 고개를 지날 때마다 그 집의 근황이 궁금하여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릴 때가 많다. 편집실이 해인사로 옮겨간 후에도 월간해인은 본래의역할에 소홀하지 않고 알찬 지면으로 발행되는 것을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내가 해인사에서 소임을 볼때 편집실과 포교국은 나란히 사무실을 두면서 교류했다. 어느 해, 독자들을 초청하여 수련회를 했을 때 마침 인기 있는 원성 스님이 참여해 주어서 대성황을 이루었던 일도 있다. 그 당시 원성 스님은 해인지에 동승 그림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그즈음 그의 인기는 최근의 혜민 스님과 비견될 정도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인지와의 오래된 추억은 내 삶의 일기장에 차곡차곡 스미어 있다.

월간 해인은 불교계의 가장 권위 있는 잡지로서 언제나 새 지평을 열어왔다고 자부한다. 수많은 명사들이 해인의 지면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의견을 제시하는 토론의 장으로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인이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성격과 올곧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회의 쟁점이나 교단의 문제에 대해 예리한 논설로 비판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이런 죽비의 소리 이면에는 절 집의 역사와 수행문화가 행간에 배어 있어서 다양한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내 방 서가에는 월간해인의 창간 합본호가 빛바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지났지만 다시 읽어도 그 시절의 글에는 생명력이 퍼덕인다. 그것은 시대의 상황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월간해인은 다변화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시대는 전문 출판인도 없으며, 전문 작가도 없고, 전문 기술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책을 편집하고,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한 세상이기 때문에 영역을 제한하기가 참 어렵다. 일간지나 월간지에 투고한 뒤 활자화되어 나오기까지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그런 세태가 아니라서 인쇄 제작되는 해인의 입지가 더 좁아지는 이유도 될 것이다.그러나 사회가 급변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 믿는다. 전자책과 상관없이 종이책 서점은 여전히 활기 넘치고, 인터넷 속보가 빠르다지만 종이신문 또한 가정마다 보급되고 있다. 활자와 종이에는 정이 있고 이웃이 존재하지만 디지털은 차갑고 무표정하다. 나는 기계와 마주하면서 업무를 볼 때마다 이방인처럼 느껴져서 어쩐지 씁쓸하다. 사람은 사람과 대면할 때 거리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월간 소식지들의 생존력은 정을 나누는 인간의 가슴이 사라지지 않은 한 계속 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
는 편이다. 이런 심정에서 옛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옛 것을 비추어 봄으로써 지금의 교훈이 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해인을 디딤돌 삼아 현재의 해인이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는데 뒷방의 잔소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첫째, 해인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다. 즉, 권위 있는 필진으로 구성할 때 지면의 무게도 살아날 수 있다. 사석에서 몇 차례‘필진이 그 잡지의 성격이며 얼굴 ’이라는 점을 건의한 바 있는데 반영되지 않아서 무안을 경험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최인호 작가 등이 해인의 독자들에게 열띤 호응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이 모두가 필진섭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해인이 지니고 있는 권위 때문에 청탁을 거절 못하는 사연이 더 컸다. 이를테면 외부 편집위원 제도를 부활하면 좋을 것이다. 편집위원들의 안목도 필요하겠지만 다양한 필진을 추천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둘째, 신인 필자를 꾸준히 발굴하는 일이다. 해인이 배출한 작가들이 참 많다. 현응, 여연, 원택, 종림, 지묵, 성전, 원철 스님 등을 비롯하여 판화가 이철수 씨 또한 해인을 통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불교잡지의 유행을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방북소녀로 잘 알려진 임수경 씨가 해인의 필진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자체가 상당한 파격이기도 했지만, 매달 생태적 삶을 소개하는 내용 또한 앞서가는 시대의 혜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들의 입장에서 기다려지는 연재물이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학인시절에 지묵 스님이 기고했던 ‘지대방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해인이 발행되면 그 지면을 먼저 펼쳐 볼 정도로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글이었다. 그러므로 숨어 있는 필자를 발굴하고 모셔오는 일에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해인사출판부를 정비하는 일이다. 월간해인은 출판 인프라가 충분하다는 강점이 있다. 필자는 물론이고 연재했던 글을 단행본으로 제작할만한 여건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박원자 작가의‘행자시절 이야기’도 다른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교양 도서로 인정받았다. 이와 같이 해인의 필자들을 저자로 선점하여 책으로 펴낼 수 있도록 체계화한다면 재정적인 안정과 더불어 포교의 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의 첫 산문집‘삭발하는 날’을 해인사출판부에서 발행했는데 몇쇄를 연거푸 찍을 정도였다. 그 즈음에는 편집위원들의 책들이 출판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아직도 스님들의 수행과 삶은 세인들의 관심 대상이므로 기획 단계가 우선 요구되기 때문에 출판부를 언급한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월간해인 특유의 편집을 고집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의 고집은, 절집의 정서와 문화를 지닌 독창적 사고를 말한다. 향적스님이 조선대 고현 교수의 디자인을 표지로 활용하여 관심과 찬사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이처럼 해인지 속에는 절집의 정감이나 풍경소리가 배어 있어야 성공한 편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이나 내용이 너무 세속화되거나 상업적 흐름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노파심절.여담이긴 하지만, 내 글쓰기의 비결은‘적자생존’이다. 생각날 때마다 적어야 글이 될 수 있다. 기억에 의존하다 보면 잊어버리기 일쑤라서 무조건 단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야 살아 남는 것이다. 입적하신 법정 스님도 엄청난 메모광이라서 다섯 걸음마다 필기했다고 하여‘오보일기五步一記’라는 일화를 남겼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편집실에서는 항상 기록하고 경청하면서 잡지의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빌 게이츠는 그의 비망록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유별나게 머리가 똑똑하지 않다.
특별한 지혜가 많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생각으로 옮겼을 뿐이다.

무슨 일이건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과 도전이 역사를바꾸었다. 묻지 않으면 답도 없다. 이런 점에서 해인의길을 질문한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조각조각의 생각들이 모여 아름다운 한 필의 비단이 되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