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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연 스님과 함께 돌아보는 ‘그 시절의 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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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해인, 길에서 길을 묻다 - 편집실 2017년 01월 419호
“해인지 편집장은 바뀌어도 독자들이 편집실을 지켜가야죠.”
연말이면 어김없이 편집실을 방문하시는 독자님이 따뜻한 후원금과 함께 의미심장한 말씀을 건네셨다. ‘그 시절의 해인지’에 아직도 매료된 분들을 편집실에서는‘골수 독자님’이라 부른다.
이분들의 마음은 월간해인에게 큰 버팀목이다. ‘그 시절의 해인지’를 추억하는 독자님들은 월간해인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해인지”를 부를 때 느껴지는 각별한 마음은 길을 잃고 헤매는 월간해인을 이끌어 주는 따듯한 손이다. 손을 맞잡고 월간해인은 함께 걸어갈 것이다.
편집실 한켠에 놓인 월간해인의 역사들. 이미 낡고 누레져 버린 종이에 활자活字들은 여전히 생동하고 있었다. 월간지 한 권의 무게가 이다지도 묵직했었던가. 월간해인의 역사 중 한 분을 뵈었다. 편집장을 지내신 법연 스님이다.

● 근래 옛 해인지를 보았습니다. 지인은 글을 읽다가 감동 했던지, 그 구절을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더군요. 그리고 책 상 앞에 붙여두고 보겠다며 복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쓰셨 던 <죽비의 소리>였습니다. 이후 스님의 글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참 궁금했습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 쓰기를 고집하던 때가 있었죠. 세상 읽는 눈은 앞서가 는데 글이 그만큼 안 따라가는 거라. 재주도 부족하고. 그리고 글에 대한 감, 감각 같은 게 다 한때였던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젊은 시절의 한때… 글에 대한 기 운을 계속 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구요. 삶의 궁극 적인 진실에서 봤을 때 글이나 감각 같은 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놓아버린 겁니다.”

● 당시 스님이 편집장으로 계실 때 어땠었는지.

“당시만 해도 편집장이 혼자 다 했죠, 마감을 해야 하 니까, 잔 글이라도 써야 하고. 편집장이 글을 안 쓰곤 못 배겼어요. 그리고 당시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어 요. 요즘에야 이메일이나 전화가 잘돼서 편리하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어요. 원고 청탁하러 가고, 원 고를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했지만. 또 원고를 받으러 가는 거라. 필자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독자분들의 의견도 전하고 그러면서 원고 하나 얻기 위해서 두 번 을 갔었어요. 특히 연재하는 경우에는 더 그랬죠. 필자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어요.‘ 이번에는 이런 부분의 의견을 더 심화하자’든가 끊임없이 필자와 소통 을 했었죠. 좋은 원고가 나오려면 편집자는 필자와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 당시 해인지의 글이 빽빽하게 지면에 들어차 있었는데, 술술 읽히던 게 신기했습니다. 원고들마다 개성이 있으면서 도 뭔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구슬이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지금은 글의 힘이 많이 약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세태일까요?

“그럴 수도 있구요. 그런데 편집자의 태도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만큼 필자와 이야기를 많이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동판매기처럼 원고를 주문하면 딱 나올 거라 생각하면 곤란하죠. 원고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정보도 주고. 혹 다른 글을 쓸 수 있으니까, 당시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불교 책도 연계해 주고. 당시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라 고 하면, 편집장 안 하려 할 거예요.(웃음)

● 1987년 1월 해인지의 목차 하단에 숨은 듯 피어 있던 글을 만났습니다. ‘만일 과거의 시간으로 인하여 미래와 현재가 있다고 한다면, 미래와 그리고 현재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있으리라’
월간해인이 처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난 월간해인에 서 찾으라는 의미처럼 느껴집니다. ‘그 시절의 해인지’를 추억하시는 구독자분들을 위해, 현재 월간해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힘들게 가더라도 좋은 필자를 맞을 궁리를 해야 해요. 좋은 필자. 필자가 글을 대변하니까. 유명하고 원고료 많이 드리는 필자가 아니라, 처음에는 좀 못쓰더라도 몇 번 쓰면 실력이 확 느는 분들이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기술이 부족한, 그런 분들을 기다려 주고, 독려해주고, 그러다 보면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거예요. 편집자는 필자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다 보면 필자는 글을 쓸 용기도 얻죠. 당시 스님의 글을 싣는 잡지가 많지 않았어요. 스님들을 모르기도 했고. 하지만 제가 할 때, 장점은 내가 스님이니까. 스님들을잘이해하는거죠.‘ 써, 그럼좋아 질 거야! ’이렇게 북돋워 주고. 지묵 스님 같은 경우는 학생회작은 문집공간에 실린 글을 보고,‘ 이스님 글 좋구나.’싶어, 해인지에 글을 싣게 되었죠. 그때 스님 글을 많이 실었어요. 그런데 요즘 스님 필자가 많이 없어 아쉽더라구요. 필진을 발굴해야 해요.
일반인들 중에도 보면 필자가 많이 있어요. 이런저런 잡지를 많이 봐야 해요. 학생이나 주부라도 참신하게 글을 쓰는 분들이 있죠. 참신한 글에 끌려 보다가 이 사람 누구지, 하면서 다시 보게 되는 거죠. 글은 참신 해야 해요.‘ 글 하나 써 주세요.’그러고 말면 안 돼 요.(웃음)

● 근래‘해인지스럽다’‘해인지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없었던 표현 같은데요. 저도 어느 순 간 그렇게 해인지를 분별하고 있더군요. 해인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고요. 해인사라는 분위기, 해인사의 역사, 해인사가 지향하는 미래, 해인사가 가진 값진 것들. 그런 것들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한국불교에서 해인사가 가지는 위치, 승가에서 보는 해인사. 스님들 세계에서 해인사에 대한 자긍심이 커요. 재적승의 숫자도 타 본사에 비해 몇 배 많고. 다른 사찰은 단일 문중으로 살림을 살아왔는데. 해인사는 다중 문중이에요. 그런데 성철 스님 계실 때 초기만 해도 문중에 별로 관심 없었어요. 타 문중이라도 해인사 강원에서 수학하려고 하고, 자신의 제자를 해인사에서 공부하라고도 하고, 그런 때가 있었죠. 본보기가 됐었구요. 해인사의 그런 점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무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잘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사회와 한국불교가 함께 움직일 때, 해인사에서 승려대회가 있었어요. 그 시점에 제가 해인지를 맡았죠. 해인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해인지도 그 분위기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어느 정도 해인지가 감당을 했었구요. 지금 돌아보면 많이 성글고, 부족하고, 분위기 정도만 전달한 것 같지만. 그래도 당시 여타의 불교잡지, 신문에는 전혀 세상과 상관없는 부처님 법과 말씀만 실었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불교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불교인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그런 목소리를 내는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해인지가 그 일을 했죠.”

● 얼마 전 기사를 봤습니다. 이웃종교의 행사에서‘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성자라고 하는데 가난함을 낳는 구조를 바꾸자고 하면 빨갱이라고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얼었다는 글이었습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계가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과 목소리가 여전히 소극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불교가 그만큼 기반이 없어서, 그런 목소리를 내지 못 해서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한때는 불교계에는 패배주의자들만 모였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계, 한국 사회가 다 해 당돼요. 기반이 없어서. 그리고 그런 의견들은 항상
나눠지니까. 해인지 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그런(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부분 때문에. 편집장에서 잘리기도 하고, 외압이 많이 있었죠.‘ 무슨 불온문서 같은 걸 해인지에 싣느냐. 거룩한 방장스님 법문이나 싣지.’그런 얘기 들을 수 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편집자는 다 들어
야 돼요. 한 의견만 들을 순 없어요. 그렇지만 편집자의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밀고 가는 거죠.”

● 월간해인 개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월간해인 편집자에게 죽비소리 같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5, 6개월 하다 보면 잡지를 만드는 사람의 성향, 취향, 인문학적 소양 모든 게 드러나요. 숨길 수가 없어요. 잡지는 부지런해야 해, 게으르면 안 돼요. 필진이 내 살림이다 생각하고. 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사람이다 생각하고 애정을 가져야 해요. 옛날에는 해인지 나오면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언제 나오느냐고 기다리고 했는데. 요즘에는 해인지 나오면 사람들이 안 가져가더라고. 나부터도 안 보게 되더라구요. 내용이 뻔하게 느껴지니까. 독자의 취향도 다양한데. 두 코너만 재밌게 찾아보게 되면 그 잡지는 성공한 거죠. 역시‘필자가 중요해, 필자가… 필자가’편집자는 필자를 통해 대신 말을 하는 거죠. 잡지 만드는 일이 엄청 힘들지만 한편 재
밌어요. 저 잡지에 투고하고 싶다, 쓰고 싶은 잡지가 가장 성공한 잡지예요. 옛날에 해인지가 무슨 돈이 있어서, 원고료 많이 주지도 못했는데. 처음 <유마의 방> 만들면서 백낙청 선생한테 원고 써달라니까 어렵게, 어렵게 써줬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 분들도 써주고. 나중에는 교수들이 서로 해인지에 기고하겠다고 했죠. 외양은 어떻더라도 내용에 중심이 있어야 돼요. 해인사만이 가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감성으로나 이성으로라도 캐치해야 하는데. 유행 따라 이것저것 하려하다 보면 안 되는 거야. 잡지는 자기발견과 똑같이 가요. 필자를 만나면서 배우는 거죠.”

● 당시 스님께서 편집실에서 고뇌하시면서 원고를 쓰시던 모습을 봤다는, ‘그 시절의 해인지’를 기억하는 독자분이 들려주셨습니다. 전 해인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고민’의 긍정적인 면을 무겁고 부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해인지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그러게요. 고민이 안 보이더라구요. 한 권 채워 낸 것이 다한 것처럼. 그럴 때가 있어요. 하다 보면 이번에는 그냥 한 권 내고 보자, 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다음이 없을 수도 있어요. 자기 계발과 같이 한다는 마음으로 한번 낼 때 전력투구를 해야 해요. 잡지는 편집자의 자기 계발과 함께 가요. 잡지 만드는 사람이 재미없게 만들면 보는 사람이 재밌게 보겠어요? 고민 없이 만들어 내면서 한 달 한 달 달력 떼듯이 만들어 내면 안 된다는 거죠. 고민을 많이 하세요. 고민 많이 안 하면 다른 사람도 안 봐줘요. 고민할수록 다음에 그만큼 칭찬을 많이 받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해인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을 독자들은 갈구하죠. 그런 걸 편집자가 잘 드러내서 하는 게 중요합니다.

● 법연 스님은 해인사 총무국장 소임을 다하시고 지금은 진주 의곡사에 계십니다. 사중에서 법연 스님을 뵐 때 항상 포행하시고 계셨어요. 그 걸음과 모습에서 왠지 해인사라는 공간을 한껏 여유롭게 즐기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님의 여유로움이 보는 이에게도 전해지더군요.

“십 대, 이십 대를 해인사에서 보내고 육십이 다 되어서 해인사에 돌아왔을 때,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그래서 해인사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정말 복된 날들이었어요. 새벽예불을 할 때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모든 것이 다 복된 시간들 이었어요.”
스님의‘그 시절의 해인지’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비결에는 필력의 아우라도 한몫을 했지만 행간의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열정, 고민 그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월간지 한 권에서 느낀 무게감은 42면의 종이 무게를 의미하지 않는다. 공간에 채워진 의미와 노력, 가치의 깊이에서 전해진 무게감이다. 마지막으로 법연 스님은 아리송한 말씀을 툭 건네주 셨다.
“해인사 대적광전 위 겨울 하늘같은 생각을 하면, 해인지가 금세 좋아질 겁니다. 고생하세요.”라고요. 그런데 이 말씀이 꼭 월간해인 골수 독자님들의 각별한 마음과 닮은 것처럼 느껴져서, 저도 냉큼 받아듭니다. “네, 고생하겠습니다.”라고요.

월간해인에 일 년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많이 고민하며, 정진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동안 월간해인의 역사를 밝혀 온
등불들이시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