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과 나는 46세 동갑나기로 올 4월이면 결혼 20년이 된다. 파란많던 결혼 생활 10여년 안쪽, 그때를 새삼 돌이켜보니, 끝내 파멸하지 않고 이끌어나온 서로의 슬기가 때로는 자랑스러워 먼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평범한 부부가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조건 중, 애정과 물질은 지극히 균등해야 함이 필수적일 것 같다. 그 어느 한쪽만이라도 이탈되면 모든 균형이 깨어지고 마는 법, 하물며 전부가 메마른 사막뿐이니, 적게 주어진 복주머니가 서러워 하염없이 삼악(三惡)에 빠져들었고, 수렁에 던져진 사람인 양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아우성치던, 욕구 불만의 소용돌이! 생사를 걸고 행복을 잡으려던 그 날들은 흐르는 세월따라 멀어져 갔고, 얌전히 다둑거리는 불심(佛心) 언저리에 꿈결마냥 아련히 스쳐간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오가는 어떤 것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보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자리잡혔고, 이해와 용서함을 익히면서 아울러 자비심을 내려고 노력도 한다.
현재 우리는 착실한 불교의 도반이 되었고, 남이 그리 쉽게 하지 않는 가정 불교를 실천하는 중이다.
처음엔, 부처님을 모실 만한 방이 따로 없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농방에다 특별히 주문하여 아담한 불장을 마련하였고, 그 안에 정성들여 모셨다.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에 예불 공양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지 벌써 수삼년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반응이 좋지 못해 걱정되었고, 친지들 간에 험악한 오해가 생길까 두렵기도 했다.
큰애인 딸은, 이제 제법 물이 들었는지, 제가 다니는 H여고 부근의 H정사에 종종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친구들도 달고다닌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잘 따르다가도 간간이 투정부리며 반항하려 드니, 난처할 때가 여러번 있기도 했다. 허나, 실망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법문을 들려 주고, 법문을 인용하며 아이들을 키운다.
내가 자랄 때는 공자왈 맹자왈을 듣고 자랐지만 지금의 나는 석가모니 설로 자식을 키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종교에 대한 편견에 치우친 오해가 생겨, 노골적인 반발도 받아넘겨야 한다. 그러나 남겨줄 유산은 석가모니 설뿐이고, 그것이야말로 살아 남을 재산이라 본다.
나의 조상들은 뿌리 깊은 불교 집안으로 겨우 그 맥을 이어 부모님께 이르렀던 것이다.
까망머리 단정히 감아 벗어 곱게 낭자틀어 은비녀 지르고, 풀먹인 하이얀 한복 차림에, 걸음도 조용 조용히 절을 향해 가고 오시던 어머님의 그 정성어린 모습-무엇을 의미하고 소망하였음인지 말씀하시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 같은-이 어린날의 기억에서 살아 있다.
아버님께서는, 뒤늦게 귀의하게 되었지만, 팔십 고령으로 별세하시기 보름 전까지도 매일같이 새벽 4시만 되면 윗목에 향초를 밝히고 천수경을 독송하시었다.
양친께서는 불교를 숭배하셨다는 본보기 외에 달리 가르쳐 주신 것이 없었고, 유일하게 남겨 놓으신 것이라곤 백팔 염주와 낡은 불경책 몇권과, 특히 아버님께서 손수 한자로 쓰신 천지팔양 신주경이 그 당시 이름없는 명필가의 글씨로 남아있을 뿐, 모두 떠나시고 말았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목표로 윤리 도덕을 말씀한 공자님의 유교도 훌륭하지만, 불교야말로 곧 생활의 전부요 충효를 뒷받침할 으뜸이 아닐까?
불교를 신앙하며, 유교를 가르친 우리나라 부모들!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우리 가정에 부처님 말씀을 전해 줄 수 있는 집이 과연 몇집이나 되었을까? 아니, 스님 외에 불법을 익혀 알고 있는 자 몇명이나 되었을까? 비통했던 역사의 한 토막만 없었더라도, 알맹이 없는 불교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엔 마을 교회당에 가는 것이 매우 흥미있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재미있는 일들이 다양했고, 입을 모아 부르던 찬송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들 기독교도들은 온 가족이 철저히 믿었고, 함께 모이면 기도하고 찬송하며 늘 그들의 하느님과 같이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들의 박애정신은 곳곳에서 펼치는 봉사활동의 기틀을 튼튼히 함을 볼 수 있고, 그들의 화합은 칭찬을 아낄 수 없을 정도이다.
목사님 앞에서 설교듣는 자들은 여자만이 아니다. 상하,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각계 각층의 사람이, 아버지로부터 자녀들까지, 모두가 정중히 설교를 듣는다.
우리나라 법당에도 절반 이상은 처사님들로 가득찰 그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현 불교의 처지는, 좀 늦은 감도 들기는 하지만, 뜻있는 많은 지도자의 활약으로 여러 각도로 개선 발전되었고, 거듭 밝아오는 장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의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교인들의 부흥회 광경을 잠시나마 구경하게 되었는데, 엉엉 소리내어 우는 자, 몸부림치며 흐느끼는 자, 그 각양각색으로 회개하는 모습들이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다.
천국이 어디 있으며, 극락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영혼은 어떤 것이며, 내세는 무어란 말인가? 모두가 부질없는 망상일 뿐 도무지 믿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부정해 버리고 싶었다.
언제인가부터, 종교를 가진 사람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자로 느껴졌고, 심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광신자로 보였다.
신이 없다는 것을 꼭 확증하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그러한 생각을 지울 수 없던 어느 날 밤,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희끄므레한 달빛은 구름 사이를 뚫고 고요히 잠든 대지 위에 소리도 없이 내려 앉고 있었다. 익혀두지 못한 길이고 인적마저 뜸한 탓인지, 으스스 심장이 조여드는 듯, 숨소리조차 기어들고 말았다. 발자욱 소리를 더욱 크게 내며 주위를 떨쳐내려 했으나, 앞에서 갖가지 물체들이 자꾸만 괴물로 변하며 다가오려는 듯했다. 저건 뭘까? 커다란 물체하나가 희멀거니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발은 땅에 붙어 버린 채, 애써 가슴을 열고 크게 숨을 돌리고는 용기를 내어보았다. 그냥, 고개를 돌리고 갈 순 없지 ! 꼭 손으로 만져 볼 수밖에. 달빛마저 숨어버린 처지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오그라드는 손을 쭉 펴서 몸서리치며 겨우 만져 보았다. 순간 안도의 숨을 힘껏 토할 수 있었고, 계면쩍은 마음에 화가 끓어올라 투덜대기도 하였다. 숨었던 달빛이 때맞추어 모습을 드러내니, 그 괴물의 정체는 바위 덩어리로 굳어져 있었다.
한번은, 별빛마저 구름에 덮인 칠혹 같은 밤이었는데, 외딴 산마루 길을 가고 있었다. 앞쪽 어디멘가, 가냘픈 여인의 울음 소리가 청승맞게 들려왔다. 섬뜩, 소름이 끼쳤고 무섬증이 밀어 닥쳤으나, 의문을 풀지 않고는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설사 도망을 친다 하더라도 공포감 때문에 얼마 못가서 쓰러지고 말 것 같았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목 알아내야 한다. 귀신이라면 한바탕 싸워 이길 것이다.” 이런 각오를 하면서 점차 가까이 다가섰는데 그만 울음이 뚝 그치고 마는것이었다. 순간 현기증이 날 것 같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크게 벌리고 살펴보았더니, 틀림없는 사람의 형체였다. 더욱 안심한 이유는 그 여인의 옆에서 또 다른 한 여인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달래 주는 듯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거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신론자를 닮아갔고 비총교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어떠한 종교든, 원래의 바탕은 개인의 기복 정신이 발단이 되어, 그것을 근원으로 하여 신앙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를 모르는 나로선, 믿는다고 모든것이 원만성취되리란 생각은 망상일 뿐도무지 합당하지가 않았다.
가까운 사찰이나 작은 암자 같은 곳엔 수 차례 소풍을 다니기도 했지만, 생판 다른 세계를 쳐다보듯 힐끗거리기만 했다.
여고생 때였을까, 그 때 처음으로 법당에 정중히 들어 경건한 자세를 가다듬어 보려 했다. 그런데 딱 버티고 묵묵히 앉아만 계시는 부처님은 엄숙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느껴졌고, 삼면에 그려진 탱화들은 너무 요란스럽고 미신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디에도 자비의 숨결은 느낄 수 없어 황당하였고, 고요한 적막마저 기분 나쁘게 한 순간을 흘러갔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 수 없으나, 시시한 생각이 들고 부끄러운 심정이 되어, 살그머니 문을 닫고 쫓기는 사람처럼 물러서 버리고 말았다.
때를 맞추어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가늘고 여린 풍경 소리가 적막을 깨고 잠시 식어가는 듯한 혈관 속으로 줄기차게 흐르며 심장을 약동시켰다. 그러자 한여름의 열기가 온 몸을 적시듯 하였고, 매미울음 곡조 너머로는 개울물 소리가 한가로이 졸고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절 뜨락에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정구업 진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라” 파리하게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스님 한 분이 소나무 그늘 밑에서 경을 노래하며 휴식을 취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뒤로 줄곧 뜻도 알지 못하는 그 귀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먹물옷 입은 스님네들만 보면 가슴이 웬지 설레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으며 신앙하고 싶도록 성스럽고 고귀하게만 보였다.
법당에서 찾을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어렴풋이 헤아려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부처님은 알 길 없었지만 스님이란 자체가 한없이 따르고 싶은, 동경의 대상처럼 되었다.
그리하여 산이 좋고 물이 좋고 절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라면 더더욱 좋아졌다. 골골마다 절절마다 헤매 다니면서, 까닭 모를 그리움에 김 소월의 시를 담아 끝없는 허공에 흩날리기도 하였다. 간간히 들리는 목탁 소리에, 물소리 새 소리 솔바람 소리! 마음의 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 폭의 산수화를 담고싶었던, 신비한 자연의 속삭임! 그 소리들은 정녕 불교와 연을 맺어 준 자비의 속삭임이리!
그러나, 그 연줄을 당기는 데는 기나긴 세월이 걸렸다. 내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또 어렵고 힘겨운 변화가 계속 밀려 오고 밀려 가고, 어느덧 32세가 되었을 때였다. 그제사 불현듯 잊었던 옛소리가 그립고, 잡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밀양에 있는 어느 작은 암자를 찾아갔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었다. 인생의 쓰라림을 뼈저리게 절감한 나머지, 허탈한 심정으로 묵묵히 예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참회할 줄도 몰랐으며, 믿음도 소망도 없이, 오로지 불자 되기를 간절히 발원할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부처님은 두렵지도 엄하지도 시시하지도 않았고, 너그러운 미소로 나를 측은한 듯이 내려다보고 계셨다. 어머님 손길처럼 포근한 정이 감돌고, 한량없는 위안의 눈길은 뼛속 깊은 곳까지 어루만지는 듯하였다.
토할 것 같은 통곡을 애써 참았지만 허물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줄달아 흘렀고, 찡한 코는 숨통을 막아, 입을 벌린 채, 피가 꺼꾸로 치솟는 설움을 쏟았다.
“부처님.”
“부처님전에 빛 좋은 개살구가 터졌읍니다.”
“거짓 웃음으로 감싸려던 가면도 날개도 훌훌 벗어던지고, 지금 알몸으로 떨고 있읍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참 불자의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한동안 울면서 절을 했다. 왜 울고 말았을까? 주어진 모든 어려움은 체념하기로 작심을 세우지 않았던가? 삶에 찌들은 증오, 아니면 회포란 말인가? 불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가슴속 전부를 펼쳐 보였으니, 부처님이 내 마음인 양, 알 수 없는 착각의 한 순간을 맛본 것이다. 어쩌면 좀지나친 독백이 아닐런지….
그 뒤에도 절에만 가면 곧잘 울었지만 세월이 가고 울지 않는 지금에야 돌이켜보니 눈물 그 자체도 어떤 집착임을 깨닫게 되었고, 나를 위한 눈물은 흘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놓지 못함에서 눈물이 흔했고, 놓아 버림에 눈동자 맑게 개이는 것. 이제사 겨우 불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지난 날들이 너무도 헛되었기에 아쉬워진다.
‘평상심’ 이 ‘도’ 라고 하지만, 어찌 불법을 모르고서야 올바른 수행을 할 것이며 불자라 말할 수 있으랴.
‘심즉불 불즉심’ 이라 하였으니 마음 빼면 시체와 다름 없는 법, 마음의 노예가되지 말고 마음을 노예로 삼아야 될 줄 안다. 일체가 유심조라, 어찌 하늘에 뜬 둥근 달이 슬픈자에게 슬퍼 보이고 기쁜 자에게 기뻐 보이는가. 달은 항상 둥근 달이지, 초생달도 반달도, 뜨는 달도 지는 달도 아닌 것이다. 백번 천번 입으로 떠들어 보았자 소용없고 마음 닦아 밝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참 불자의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을 크나 큰 복으로, 늘상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간다. 부처님 법은 나를 인내하게 해주고, 대가 없는 베풀음을 일깨워 준다. 집착 덩어리에서, 조금씩이나마 떨어지게 도와주고, 행복을 만들어 갖는 기술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비결을 모두 담고 있다.
불교는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실존자, 성인 석가세존께서 깨달은 우주 진리를 설법한 종교며, 그 분의 교시를 믿고 따르는 종교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법은 무시된 채 그 위력만 빌리려 하는 신도들이 아직도 허다하니, 하루 속히 계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본다.
흔히 많은 지식은 깨달음의 장애라고 말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모를수록 빠른 깨침에 달한다고 한다. 깨달은 자에게 부처가 달리 있을 수 없으며 자신이 부처요 자신이 신이라, 그 경지는 각자(覺者)만이 알 수 있는 것, 중생은 미치지 못하여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격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스님들을 제외한 우리 사회인들은 각자 생활하는 방식이 다르다. 진리를 깨치기 위한 공부는 거리감이 멀 뿐 아니라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 중생은 중생이니만큼, 각의 경지는 맛을 모르니 원하지 않는다. 나 아닌 남이사 하든지말든지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스님들께서는 이러한 점을 잘 파악하여, 옛 조사님 흉내내는 식의 어려운 말은 피하시고 중생심에 알맞은 법어로써, 깨달음을 강조할 필요없이, 대중이 다 함께 정도(正道)로 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불교나 스님이 무슨 구경거리가 아닌 이상 불교 사상이나 불교 교리가 우리 사회인의 생활 바닥에 밀착되어 고루고루 깔려지길 바란다.
불교를 대해(大海)라 말하듯이, 불법이 한량없이 넓고 그 뜻이 심오하여 중생의 근기로는 부족함이 많은지라. 자연히 부처님을 찾고 부처님을 통하여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타력적인 신앙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 뜻에서 비롯되어, 극락정토 아미타불을 염하며 극락 왕생을 비는가 하면, 관세음 보살을 염하며 대자 대비 원력으로 갖가지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빌기도 한다. 또 동방 아촉여래 약사불을 염하며, 길흉 화복과 병고 없기를 빌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염원은 자기의 미약과 무능한 점을 충분히 간파하고, 간절한 믿음만으로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든 해탈을 요하는 것이고, 종교적인 견지에서 보면 극히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본다.
“돌맹이를 물 위에 놓으면 가라앉지만 배 위에 실으면 큰 바윗덩어리 라도 떠 있다.”
이 말은 그리스 메난드로스 왕이 나가세나 존자님께 질문한 타력신앙에 대한 문답이다.
간절한 믿음에는 믿지 못할 불가사의가 더러 일어나는 예가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믿음은 청정한 마음과 직결되어 차차로 자력적인 어떤 힘이 생기며, 극복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이 생겨난다.
불교는 미신이 아니고 철학이며 진리다. 마음이 일체 만법의 근본임을 알아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불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김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웃과 이웃에 정법을 펴고 심어 주어야 함은 모든 불자들의 사명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우상을 믿는 것이 아니며 인간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최고의 불격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니, 냉정히 판단하자면, 불상은 없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교리가 너무 넓고 난해하여 깨닫지 못하면 알 수 없다는 문제점 때문에, 불멸 이후 점차 신앙하기에는 통 실감이 나지 않는 한편, 마음이 산만하여 정신이 해이해질 염려와 믿음을 상실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까이 모시고 그를 존경하고 그의 법을 우러러 믿고 따르며 항상 예배 드림으로써 신앙을 이어가게 되었다. 중생의 약한 신심에 무엇보다 실감이 필요했던 것이라 본다. 그런즉, 그것은 불상을 믿는다기보다는 불상을 통하여 실상을 보려는 지혜인 것이다.
점차 대승 불교로 바뀌면서, 자비 실천을 이상으로 삼고 보살도를 실천하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중생 성불 사상에서 비롯되어, 무수한 불상과 보살상들이 만들어졌다.
먼저, 석가세존 일불신(一佛身)을 삼신(三身)으로 나누었으니, 천지만물 그대로가 무형한 정신 본체로서의 법신(法身)이라고 보아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이, 다겁 수행의 과보로 보아선 극락세계에 계실 아미타불을 한층 더 신격화하여 과보적 보신(報身)인 ‘노사나불’이, 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교화적 화신(化身)으로 일컫는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 각각 내세워졌다. 그밖에도 많은 보살들이 등장하여 부처님의 이상(理想)을 발휘하였으니, 이 모든 다불 다보살은 석가모니 일불의 문화체이며, 부처님 한 분에게로 귀일 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궁극에는 아미타불이 따로 없고 약사불이 따로 없으며 여러 보살이 따로 없다 할 것이며, 그 모두를 석가모니 일불로 보면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는 무신론으로, 마음이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라, 석가세존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집착을 떠나 우주 진리 본체에 일체가 된 자를 각자(覺者)라 하며, 그와 같은 불성은 생명 있는 모든 중생에게는 누구나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석가세존은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유일무이한 신도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수도하여, 궁극의 경지를 성취한 각자이시며, 진죄의 몸이 되어 영겁을 상주하는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여기서 자력 신앙이 나오는데, 이것은 스스로 마음을 밝혀 해탈의 경지를 찾고자 부처님의 ‘법등명 자등명’이란 교시를 바탕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참선에 의하여 ‘심시불’을 전제로 명심 견성을 주장하는, 자력 성불의 신앙이 그것이다.
석존 말씀에,
나는 길의 안내자요 보화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 줄 뿔이고, 캄캄한 범어! 불빛을 밝혀 줄 뿐이며, 의사가 병자에게 약을 가르쳐 줌에 불과할 뿐, 가고 아니가고 먹고 아니 먹는 것은 너희들에게 있느니라.
하신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자력 신앙과 자력 수도를 여실히 교시한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는 타력 신앙과 자력 신앙이 동시에 겸해 있으니, 개개인의 근기에 알맞게 믿으면 된다. 어느 쪽이든, 불•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정신에 입각해야할 것이며, 해탈을 종국적으로 삼아야 될 줄 안다.
해탈, 그 자체가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라면, 특히 재가불자들은 어렵게 생각지 말고 조그만 집착으로부터 점점 벗어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 할 것 같다.
한 암자의 주지스님께 불교가 몹시 어렵다고 말씀드렸다가 호되게 꾸중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스님 말씀으론, 불교는 쉽고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고, 우선은 전달하는 책자나 그 내용의 글자 자체라든지 귀로 을을 수 있는 법문도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렇다고 경망스럽게 자꾸 질문을 할 수도 없고, 더우기 지체가 높은 큰스님은 커서 대하기가 힘들고, 낮은 스님은 그래서 그런지 아직 부족한 데가 많은 것 같았다.
불교를 알고 싶어 좀 공부를 하다 보니, 흥미가 당겨지면서도 알듯 모를듯 막힘이 많은지라, 짜증스럽기도 하여 집어치우고 싶었으나, 애써 하나 하나 베일이 풀려가는 데는 굉장한 이득감에 혼자 흐뭇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평소에 얼굴 익혀둔 스님 앞에서는 무식한 티를 낼 수가 없어 잘 알고 있는 척하며 감추려고만 하였으니 좀 더 빨리 많이 배울 것도 늦어지고 있는데, 생각지않은 낭패가 겹치기 시작했다. 절 바랑메고 왔다갔다 하다보니, 주위에서 참마음에서인지 골탕 먹일 셈에서인지, 불교에 관한 질문이 종종 들어왔다. 그래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고, 하면 할수록 범위가 넓어지며 즐거웠다.
재미붙인 나는 덜 익은 벼 꼴이 되어, 중년의 스님 한분께 “니무아미타불”을 주제로 정중히 가르침을 청했는데, 대뜸 이 스님 서두가, 아미타불은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이란 것이다. 이미 십대 제자 이름 정도야 손꼽으며 익혀 알고 있는데, 이 무슨 망발인가? 실망을 감추면서 끝까지 횡설수설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코끼리를 모르는 내개 코끼리의 한 부분만 안다고 해서, 감히 지껄이는 주제가 몹시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 일로 하여 평등이란 새로운 각도를 터득했다. 유정 무정 할 것 없이 천차만별 그대로가 전부 평등인데, 어찌 스님이라 해서 모두 학인의 단계를 넘어 통달할 수 있으리. 동생 같고 아들 같은 애숭이 스님이라 할 망정, 머리 깎고 먹물옷 입은 그 정신 하나만으로라도 불교를 신앙하는 뜻과 다름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경험을 쌓으면서 높은 산 깊은 골 두루 인연 따라 몇 년을 찾아다녔고, 불교를 좀 더 내것으로 하고자, 짬만 있으면 부처님 역사와 교리, 여러 선지식에 관한 책자들을 뒤졌다.
그러나 불교 아닌 것이 없고 부처 아닌것이 없을진대 굳이 장소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말에 동감이 갔으며, 무명을 벗기고 자성을 밝히는 공부는 참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나로선, 참회하는 것도 소홀해선 안될 것 같아 백팔배는 습관처럼 하게되었고, 더러는 천배도 해낼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삼천배를 통과하지 못한 점이나, 그것도 뜻하지 않은 일로 하여, 갑작스레 백련암을 가게 되어 삼천배의 감회를 맛볼 수 있었다.
그 사연인즉, 어린 두 남매를 둔 내 남동생의 처가 불행히도 기관지 천식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병상 생활 10개월 동안에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으며, 때로는 호흡을 되찾는 데 무려 너댓 시간씩이나 걸리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드디어 결혼 전에 믿었던 천주님을 찾게 되었고, 십자가를 가슴에 꼭 안고는 꺼지려 하는 생명에 모든 것을 걸고라도 소생해 보려는 본능적인 생의 애착과 죽음의 공포로 끝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자 기독교 신자인 그녀의 사촌 여동생 부부가 그 틈을 이용하여 예수를 믿도록 이끄는 데에 성공하였고, 날마다 몇명씩 몰려 다니면서 그들 방식대로 환자 치유 작전에 열심이었다. 결국은 불자이던 그녀 할머니를 비롯하여 그쪽의 친정 식구 모두가 기독교로 기울었고 급기야는 내 동생마저 꺾여들기 시작했다.
생사 기로에 선 환자에게는 불교의 태도가 너무나 소극적이고 나약하기만 했고, 우리들은 어떠한 방법도 대책도 마련치 못한 채 급하면 관세음 보살만 찾다가, 그나마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와 자신감 넘치는 신앙 방법에 풀이 죽고 말았다. 비통한 심정 금할 길 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과 기대는 그들의 하나님 덕택일지라도 제발, 부디, 살려만 주셨으면 하고 빌었다.
그러나 병은 날로 악화되어 병원 측에선 마지막 선고를 내리게 되었고, 퇴원을 강요할 뿐 관심 밖으로 돌리고 말았다. 살릴 방법은 기적뿐이라, 발을 동동거리며 애태우던 중에 법력이 높으신 모 스님이 도움의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두 분 언니의 설득으로 마음 돌린 남동생이 쾌히 동의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정성을 한데 모아 불전 기도에 들어갔다.
최후의 순간, 최후의 발악처럼, 부처님께 통사정하기 칠일 만에, 그야말로 기적같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죽어가던 그녀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한달 이내로 퇴원하여 지금 시골에서 요양중이다.
그때, 바시락거리고 살아나는 환자를 보고 병원장도 의아해 했으며 어떻게 된 건지 기적이라 했다.
스님의 이름 성은 잡초에 지나지 않고 영적인 어떤 힘이 씌어 스님이 되었으니, 일반인의 눈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했지만 그 분 나름대로의 법력은 대단한 것으로 믿어진다.
부처님 자비 원력과 스님의 기도 영험으로 감응을 받은 동생은 무슨 뜻에선지 몰라도 삼천배를 시도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좁은 병실에서 처를 돌보느라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낮에는 직장 일로 지친 나머지 신경통 관절 중세가 겹치게 되어 걸음도 정상이 아닌 동생이었다. 그처럼 마르고 시달린 몸으로 어찌 그러한 용기를 감히 낼 수 있으랴. 나는 눈물겹도록 감동이 스몄다.
우리 자매 모두가 늘 망설여오던 중, 불시에 용기가 치솟아올랐고, 그 사흘 뒤엔 출발할 것을 결정보았다.
그리하여 해인사에 도착하니, 어둠이 막 깔리는 가야산의 설경은 을씨년스럽게 웅크린 자세로 그만 시야에서 문을 닫아버리고 만다.
금년 들어 가장 심한 한파가 몰아쳤고 혹독한 추위는 볼을 꼬집어 뜯는 듯 애렸으나, 불전 공양물을 잔뜩 젊어진 등골엔 날씨답지 않게 땀이 배었고, 눈길 따라 바쁘게 내던진 발길은 곧장 백련암으로 이어졌다.
잠시 몸을 녹이고 모든 준비를 서둘러 끝낸 뒤 원통전에 들었고, 언니 두분은 동생 좌우에 자리잡아 그를 인도하며 백배 이백배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겨우 천배에 도달했으나, 이미 동생의 고통은 극에 온 것 같았고 차마 볼 수가 없어 눈물까지 울컥울컥 터질 뻔했다.
절을 한다는 목적이 참회인 만큼 무엇을 더 벌고 바라겠는가마는 그 순간만은 오로지 ‘동생에게 힘을 주옵소서’ 하고 기원하며 ‘옴 아비라 훔 캄스바하’를 일념으로 외었다.
천오백배를 간신히 채운 우리로서는 더 이상 그에게 절을 계속하도록 버려둘 수가 없었다. 찬탄과 위로와 설득을 동원하여 동생을 물러나게 하였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로 작정을 한 그에게, 크게 죄를 지은 것 같아 한편 마음은 어둡기도 했다.
마지막 삼천배 순간이 오자 감격의 눈물이 솟구쳤다. 그와 함께 아침 햇살이 빙그레 퍼져 하얗게 얼어붙은 가야산 중허리 백련암 뜨락에 따스히 감돌았다.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준 동생, 삼천배의 희열을 안겨다 준 동생, 그가 바로 불보살의 회신인 양 우러러 보였으나, 그 희열 나누지 못함이 퍽이나 애달프다.
백련암은 과연 성철 큰스님께서 계시는 곳다운 곳으로, 한눈에 짐작이 들고도 남는다.
관세음 보살님만을 모셔 놓은 원통전과 관음전 두 법당은 초라하리만큼 작고 꾸밈새 없으며, 일체 어떠한 후불 탱화들도 그려져 있지 않은 채 삼면이 모두 단색으로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그외에 인등이니 축원 카드니 하는, 개인 기복 신앙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었고 복전함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를 보더라도 그 분의 참 뜻을 헤아릴 수 있었고, 크나큰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조금도 삿됨이 없이 정법만을 위하고 정법만을 가르쳤고 정법만을 따르기 바라시며, 불공의 참뜻을 몸소 행하시고 설하시며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불교의 정화 선구자이신 거룩한 스님이시다.
그 불빛 꺼지기 전에 더 많은 등불들에 점화되어, 중생 구제는 물론, 불국토로 향하는 험난한 길에 찬란한 밝음이 열려지길 소망한다.
자기를 버리고 온 세상을 위해 출가하신 모든 스님들께도 삼가 부탁드리고 싶은 바램이 있다.
수행을 쌓아 분별 망상을 여의고, 불이(不二)의 법에 들어 득도하시고, 불격에 오르시려는 크나큰 원력을 탓할 순 없다. 참선 공부도 염불 공부도 다 좋고, 해탈하시어 중생 구제에 나서시려는 높은 뜻은 지당하지만, 세상은 급하고 맹렬히 돌아간다. 사찰마다 그렇듯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정중히 예불 올리는 격식은 매우 중요한 의식이지만, 예불을 끝낸 신도들은 대체로 그냥 흩어지는데, 몰라도 한창 모르기 때문에, 무얼 물어볼 마음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초심 불자들이 불법에 눈이 밝아지기엔 긴 세월이 걸려야 하고, 그래서 선배들을 통하여 배우려 하지만 선배들 역시 부처님 뜻과는 거리가 잘 맞지 않는 신앙을 주로 하는 자들이고 보니, 배워도 어긋나기 일쑤다. 그래서 40대 후반기를 넘기는 신도들 사이에서는 10년을 헛 믿었느니, 20년을 헛 믿었느니, 또는 아직도 뭘 잘 모르고 믿고 있다느니 하는 이 푸념들을 종종 엿듣게 된다.
특히 방생 법회를 꼬집어 들추자면-방생! 그 얼마나 거룩한 자비인가-, 고작 미꾸라지 몇십 마리 살려주려고 차 한대에 18~20만원의 대절비를 낭비하며 적어도 세대에서 여섯대의 버스가 움직여야 하고, 그것도 먼 산 보고 물 보고 동서남북으로 절하고 나서 다 끝났다고 돌아올 땐, 큰 복이나 지은 것처럼, 스트레스가 어떻고 해방된 민족이 어떻고 하며 노래 부르고 엉덩이춤 추는 그 꼴이 참으로 수치스럽기만 한 우리 여성 불자들! 한사람 앞에 일만원씩이니 버스 다섯대면 이백만원이란 거금이 드는데, 그 돈을 미꾸라지 몇 마리에 날려 버리다니… 그러한 방생이라면 부처님은 결코 달가와하지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방생의 개념을, 미물에 그치지 말고, 좀더 큰 자비쪽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있어야 될 것이며, 그런 이끔을 우리가 모두 따를 때에야 비로소 불교의 면목이 설 것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수행 중이시라 그런지, 말이 적고 겸손만이 넘친다. 그것이 단순히 스스로를 낮추는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 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때로는 신도들의 기세를 건드리지 않으려 해서인지 되려 끌려다니며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포교스 님이 따로 있고, 법사스님이 따로 있고, 선사, 율사 각자 소임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법과 가까운 스님들께서 신도의 일상생활에 불교를 심고 불법을 가르침이 바람직한 일일 터인데, 그 점에 너무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뜻있는 신도들은 포교당이며 법회며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얻어 활용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분들은 한달에 겨우 한두 번 절에 찾아가 열심히 무언가를 벌기만 하다가 돌아온다. 이런식으로 언제 부처님 말씀을 전해 들을 것인가?
깨달음만이 부처님께 보은하는 최상의 길은 아닐 터이다. 혼자 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많은 중생을 데리고 가려면, 그만한 긴 세월과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며 어쩌면 그러다가는 영 득도를 못하고 말는지도 모르나, 바로 그 길이 자비의 보살행이 아닐까 싶다.
출가란 쉬운 것 같으면서도 꿈같이 아득한 길이다. 출가자란 출가 정신에 입각하여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살아 가는 존재이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수행 정진하여 해탈을 목표로 삼는 것이고, 중생에게 극락을 안겨 주려는 노력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우리 재가불자들은 그런 점을 마음에 깊이 새겨, 상-하, 노-소,비구 비구니를 막론하고 모든 스님들의 고귀한 정신을 우러러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면에서든, 신도들의 경거망동은 불교를 망치고 조사를 죽이고 스님을 욕보이는 결과만 초래할 테니, 삼가 조심하여 불교를 믿는 만큼 불교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해야 될 줄 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믿는 불교에서 배우는 불교로, 동시에 생활하며 실천하고 실천하며 생활하는 불교로 개선,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바람직한 현대인의 불교란 개인 차원에 머물던 기복을 사회로, 국가로, 나아가서는 세계로 돌려 세움이 옳을 성싶다. 기복이 신앙의 출발이라면 초심자는 어쩔 수 없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로 하겠지만, 대부분의 신도들이 오로지 구하고자 함네만 전전긍긍해 하거나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불교의 진실을 알려고는 하지 않는 것 같음이 안타깝다.
나와 나의 것만을 위하여 구하고자 함이 한없이 많은 사람에게 어찌 님에게 줄 것이 있을 것인가! 이 허욕의 술래잡기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진리는 변함이 없으나, 시대의 변천에따라 종교적 수준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불교가 타 종교와 특히 다른 점은 나와 남이 따로 없고 시작과 종말이 따로 없고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따로 없으며, 모든 상반되는 양 극은 둘이면서 또 둘이 아니라 한 데에 있다.
이 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이 아름다운지 흉칙스러운지 그 모양조차 알 수 없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때로는 형편없는 원시적인 방법도 동원하곤 한다. 이 모두는 분별에 치우친 거짓 마음이니, 여기에 놀아나는 종이 되지 말고, 어엿한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책으로 엮어 하루에 한권씩 읽는다 해도 18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팔만대장경도, 오로지 마음 하나를 밝히기 위한 부처님 말씀이라 하지 않는가.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이 시대에 개인의 기복에만 머물던 원시적인 신앙 방법은 불교의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될 뿐이다. 따라서 좀더 차원 높은 정신적 세계로 유도되어야 한다.
인간이 행복을 위하여 염원해 오던 물질의 풍요는 결국 물질만능 시대를 가져왔고, 그것은 정신을 꼭둑각시로 만들었다. 그로 말미암은 온갖 비정한 현상은 불신을 크게 초래하였고, 그 불신은 현대에 가장 흥행하는 믿음 아닌 믿음이 되고 말았다. 누구나 여기서 한번쯤 뉘우침이 있어야 할 줄 믿는다.
어느 스님이 한 신도의 자제를 위하여 대학 입시 기도를 드려 주었더니, 합격한 영광의 보은으로 제법 고가에 속하는 팔목 시계를 선물로 주더라는 것이다. 무소유자의 처지엔 걸맞지 않는 값진 귀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누더기 차림의 낯선 스님 한 분이 느닷없이 절방을 찾아들었다. 예불시간이 되어 그 스님만 남겨 둔 채 법당에 들었는데 목탁을 치며 열심히 독경을 하는 중에도 몹쓸 마음이 줄곧 누더기스님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서랍 위에 풀어 놓은 시계가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만 예불을 중단하고 방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얌전히 제자리에 놓인 시계는 자신을 치사한 버러지로 만들어,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한다. 그 스님은 그 일로 최상의 복이 무소유임을 절실히 실감한 이후로 시계는 남에게 주어 버렸고, 다시는 그런 고급품은 갖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적게 가진 자는 오나가나 자유롭고 마음이 평화롭다. 그러나 많이 가진 자가 가진 만큼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석가 세존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신 것이 무엇인가? 이상적인 낙이 아니던가.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은 바로 놓아버림인 것이다. 궁극에는 그 놓아버림마저 놓아 버릴 때 해탈의 경지가 열린다. 이것이 석존의 깨달음이고 불교의 목적이다.
그 목적을 달성키 위해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삼법인을 설하셨고, 생사윤회하는 미혹의 세계로써 영원불변의 실체가 없이 물(物)이든 심(心)이든 존재현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상하여 영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했다.
이러한 진리를 모르고 무명에 가린 채아(我)에 집착하게 되고, 탐•진•취 삼독이 생겨나며, 그로 얻은 쾌락은 천만 가지 고통을 지어내는 근본이라 한다 그런 고로 부처님께서는 고체, 집제, 멸제, 도제의 사성제를 설하시고,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을 행하도록 일렀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닦도록 가르쳤다.
마음이 일체 만법의 근본임을 알아야하고, 모든 행위가 인과법칙에 의한, 자인자과요 자업자득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이처럼 부처님은 모든 업을 인과응보의 필연적 연기설로 주장하셨다.
사물은 인연에 의하여 생멸하는 법으로 유와 무를 여의고 있다. 차별을 보는 것은 중생의 분별망상이다. 허공에 동과 서의 차별이 본래 없듯이, 모든 차별은 없는 것이나 중생이 만들어 불인 것이며, 그 실상은 말할 수도 보일 수도 없다고 한다. 지금도 지구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아가지만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듯이, 모든 실상은 무명에 가리워져 있다. 오로지 분별사량을 여의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알아 불이의 하나로 합일화함이 중도의 도리요 각의 경지다.
해탈이란 목표가 출가 스님들만의 것은 아니다. 해탈이란 말이 높게는 깨침의 경지를 뜻하지만, 낮게는 무엇에든 바뀌어 벗어난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 불자들은 먼저 작은 욕심이나마 그 집착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되겠다.
알고 짓는 업은 양심의 가책이 따르므로 고칠 가능성이 있지만, 모르고 짓는 업은 업이 업인 줄 모르고 끝없이 짓게 된다.
팔정도 중에서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면, 불교를 믿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다만 그렇지 못하므로 믿어야 하고 따라야 한다.
먼저 신앙심을 굳게 하고, 불법을 배워 익히고, 일상생활에 실천으로 옮겨 놓아야 함은 당연할 뿐더러, 익히다 보면 조금씩 실천도 가능하리라 본다.
불교 신앙이 현실을 기피하고 내세의 극락만을 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내세의 뜻이 오는 세상이라면, 죽어 다시 태어남도 내세고, 가까이는 생전에 남은 미래도 내세가 아닌가.
윤회사상에서는 사람은 삼계육도에서 생사를 끝없이 반복한다고 하며, 그가 지은 선업과 악업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육계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극락은 모든 일이 원만하고 즐거움이 풍족하여, 자유와 안락만이 있는 곳이라 하지만, 지옥은 그와 반대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믿을수 없는 영원한 신앙의 방편이라 돌릴지라도, 다른 한 면으로는, 극락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명에 허덕이고 악이 가득찬 곳이 바로 지옥이라 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진리를 깨달은 자의 경지가 극락이며 악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곧 극락이라 본다. 그렇다면 잠시도 미루지 말고 사후의 꿈을 앞당겨 오직 이 세계, 이 현실을 불국토의 낙원으로 이룩하자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이 갈고 닦아 개울처럼 흐르고 강물처럼 모여서 넓은 바다로 합류되었을 때, 성도 이름도 나와 남도 하나되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줄지도 늘지도 않으며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바다! 정녕 불국토의 바다가 되리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