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 보살의 화현,포대 화상 이야기
포대 화상은 당 나라 명주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다. 스님은 뚱뚱한 몸집에 늘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녀서 포대(布袋)라고 불리었다. 그 자루 안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어 이웃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어주곤 하였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스님을 무척 좋아하였
다. 자루를 맨 스님만 나타나면 아이들은 스님의 등과 어깨에 가리지 않고 올라타며 기뻐했으며 스님 또한 그것을 좋아하였다. 스님은 자루에서 맛있는 것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함께 놀았다. 하루는 스님이 눈 속에 있다가 일어나는데 몸에 눈이 하나도 묻지 않아 사람
들이 신기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편, 스님은 마을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돈을 주면 반드시 되돌려 주었다.
포대 화상은 때때로 길흉을 예언하였는데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어도 스님이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나타나면 얼마 뒤에 비가 내렸다. 그리고 장마철이라 비가 계속 내리다가도 스님이 짚신을 신고 다니면 곧 비가 그치고 햇살이 밝게 비치곤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님의 행색으로 날씨를 짐작하였다고 한다. 포대 화상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는 대략 이쯤이다. 그러나 스님이 남긴 게송 몇 편을 통하여 그의 평생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다.
발우대 하나로 천 집의 밥을 빌며
외로운 몸이 되어 만 리를 떠도네.
아무도 푸르른 눈 아는 이 없어
흘러가는 흰 구름에 갈 길을 물어보네.
늠름하고 자재하여 하는 일 없으니
한가롭고 한가로 와 출가한 장부일세.
눈앞에 참된 도를 본다 하여도
털끝만큼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으리.
내가 가진 큰 자루 하나
텅 비어 어디에도 걸림이 없네.
펼치면 온 누리를 뒤덮다가도
거두면 그 자루 자취도 없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미륵의 참모습일세.
언제나 모두에게 보여주건만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네.
포대 화상은 네 번째의 게송을 마지막으로 입적하였는데 후량(後粱) 정명(貞明) 3년(917년)의 일이다. 그 뒤에도 다른 고을 사람들이 여전히 지팡이에 자루를 매달고 다니는 포대 화상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한 스님의 형상을 많은 사람이 그림으로 그려 모셨는데,
지금도 중국의 악림사(嶽林寺) 동당(東堂)에는 그의 온몸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포대 화상을 미륵보살의 화현이라고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