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방법, 어떤 게 덜 아플까?
거실 창이 남쪽으로 나 있어 종일 볕이 드는 데도 소파에 남산만 한 배를 잘도 뉘어 쿨쿨
자다가 깼다. 멍하게 주위를 살피다가 내 눈길이 한 권의 책에 닿자마자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그 책은 임신·출산·육아에 관련된 책인데, 출산 편을 펴보지도 못하고 그 전 페이지만 만지작거리다가 잠들었었다. 임신 초기, 우연히 펼친 출산 과정의 사진과 내용에 기겁해 여태껏 보지 않았는데 출산이 코앞, 이제 올 것이 왔다. 심호흡을 하고 침을 꼴딱 삼키고는 출산 편 첫 페이지를 펼쳐 ‘엄마’라면 다 겪었을, 내겐 아직 생소한 과정을 오후 내내 살펴봤다.
“여보, 어떤 게 덜 아플까요? 자연분만이랑 제왕절개 중에? 다 무서워요”라며 막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내가 둘 다 겪어봤으면 말해주겠는데…”라며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출산 경험담을 내게 읽어주기 시작한다. 얼마나 세세하게 감정을 실어 써놓았던지 겪어보지 않고도 팍팍 와 닿았다. 책 속 출산 진행 과정이 의료진 중심이라면 엄마들의 경험담은 엄마 중심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지인들에게 더 솔직하게 들어보자 싶어 애기 엄마들에게 연락했는데 꼭 어제 출산한 사람들처럼 열심히 얘기해주었다. 놀랐던 건, 수많은 산모들이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선택을 해서 그 강을 건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었는데도 찾고 있던 답은 없었다.
자연분만을 했던 사람 중 어떤 사람은 “꼭 자연분만 해요! 왜냐하면…”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연분만은 절대 하지 마요. 내가 해봤더니…”라고 했다. 제왕절개를 했던 사람 중 누구는 “제왕절개가 나아요. 왜냐하면…”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제왕절개 하지 마요. 내가 제왕절개 해봤더니…”라고 했다. 저마다의 이유가 너무나 타당해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말에서 내린 결론은 “출산방법에 따라 장단점이 있고, 출산의 고통이나 후유증, 회복력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 그래서 “어떤 게 덜 아플까?”에 대한 답은 “어떤 것도 신체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결국 둘 다 아프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출산 정부지원비를 받을 카드사에서 출산선물세트를 보내왔다. 남편과 함께 상자를 열었는데 용도를 알 수 없는 많은 물건 가운데 우리 눈에 쏙 들어온 건 엄지손가락만 한 아기 양말이다. 아, 뭐랄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저 귀엽다는 느낌을 넘어 아련하고 여린 존재를 향한 감정이었다. 이런 게 보호 본능일까. 그 순간, 출산방법을 두고 고민하던 내가 부끄러워져 아이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너를 만나는 순간인데, 엄마는 좀 덜 아프고 덜 수고롭기만을 바라고 있었구나. 너는 온몸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겪을 텐데 나는 고작 내 배 아플 생각만 하고 있었네.’ 그러자 태동이 살짝 느껴졌고 남편과 나는 출산에 대해 내 건강 상태에 맞게 인연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셋을 위한 낯선 준비
“자리 날 거니까 걱정 마. 아기 나오는 날이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뭘.” 산후조리원에 예약이 찼다고 했더니 유부녀 친구들이 해준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리원에서 연락이 와서, 출산 후 입원실에서 조리하다가 조리원에 자리가 나면 옮겨갈 수 있단다. 그리고 지금부터 출산 준비물을 챙겨놓으란다. 이 출산 준비물 목록에는 산모용 준비물이 대부분이지만 신생아용 준비물도 있다. 참 낯설다. 출산이 내겐 임신 기간의 끝이지만, 아이에겐 삶의 시작이란 이치를 나는 이제야 실감하게 된다.
주말 오전, 또 낮잠을 자다 깼는데 남편이 거실장 위에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상자에 넣고 있다.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깼네? 청소하기 쉽도록 딱 필요한 거만 두고 다 정리하고 있어. ..가 태어나 집에 왔을 때 집이 깔끔하면 좋잖아.” 결혼할 때 썼던 소품들과 작은 장식품들이 상자로 들어갔다. 오로지 둘이었던 ‘우리’를 정리하고 셋이 될 ‘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딩동” 초인종 소리가 났다. 택배다! 육아용품 쪽 일을 하는 남편 친척 형님께서 물건을 한 아름 보내주셨고 친정 언니는 조카가 쓰던 물건을 보내왔다. 휑했던 다용도실이 꽉꽉 들어찼고 물건들이 어찌나 알록달록한지 무채색의 집안에 꽃피고 봄이 온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많은 물건을 한 달 후쯤 부턴 쓰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용도도 사용법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체온은 언제 재고 목욕은 어떻게 시키는지, 수유는 어떻게 하고 젖병은 어떻게 삶는지, 기저귀는 어떻게 갈고 속싸개는 뭐에 쓰는지…. 아는 게 없다. 흔히 말하는 “닥치면 다 한다”라는 말, 믿어도 될까?
많은 여성이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다는 사실에 두려웠지만, 그런데도 많은 여성이 낯선 것들을 다 겪으며 감당해왔다는 사실에 용기가 생긴다. 《상윳따 니까야》의 〈어머니 경〉에 “이 긴 (윤회의) 여정에서 전에 어머니가 되지 않았던 중생을 만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윤회기 때문이다.”(각묵 스님 옮김)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전생에 어머니였을 것이며 아버지, 형제, 자매, 아들, 딸이었을 것이다. 이번 생에선 누군가의 자매이고 딸일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곧 엄마가 된단다.
결혼 전에 나는 아기 엄마들을 마치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인종인 양 그들의 삶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 곧 그들이 될 나는 아직도 처녀 때 감성과 꿈을 간직한 채로 ‘엄마’라는 삶에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 ‘나’를 비워내야 ‘엄마’의 삶으로, ‘아빠’의 삶으로 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채우기 위해 비워 갔고 그 비운 자리에 셋을 위한, 낯설고도 신기한 채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롯이 둘일 때
“지금은 바닥에 등대고 바로 누워 자보는 게 소원이겠지만, 애 낳고 나면 쪽잠이라도 자보는 게 소원이야. 배 속에 있을 때가 좋은 거야. 지금을 즐겨.” 결혼 15년 차에 애 둘 키우는 친구의 말이다. 배 속에 있을 때가 좋은 거라고, 이 길을 가본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말해주고 있다. 그래, 맞다! 이렇게 오롯이 둘일 때가 또 언제 있을까.
“여보! 날도 좋은데 나갈까?”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아 몸이 무거운데도 남편을 따라나섰다. “벚꽃이 좀 폈을라나?”라며 경주 삼릉으로 향하는 남편.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벚꽃은 봉오리만 탱글탱글하게 올라와 있다. 아쉬운 마음에 벚꽃 길로 유명한 대릉원 길과 보문단지까지 가봤지만 벚꽃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미안해하는 남편을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하늘을 봐보란다. 쌍무지개다! 태양 위아래로 원을 그리며 감싸고 있었다. “우와! 우리 ..이 맞이하려고 하늘에서 축제가 열리나 봐요! 당신, 이렇게 멋있는 걸 보여주려고 벚꽃들 더러 나오지 말라 했군요! 하하~”
편안해 보이지만 온기로 꿈틀대는 오늘, 평온해 보이지만 설렘으로 가득 찬 우리, 이렇게 오늘을 붙들 듯 남편의 손을 붙들고 우리는 아이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기차 앞에서 길을 열어주던 나비가 잠시 보이지 않더니 저기 보이는 종착역에서 팔랑거리고 있다. 기찻길 좌우로 늘어선 벚꽃나무에는 꽃망울이 터질 준비를 하며 맺혀있고 종착역이 보이는 먼 하늘에는 태양을 보듬은 쌍무지개가 떠 있다. “여보! 종착역에서 보이던 나비가….” 남편의 말에 무지갯빛 쏟아지는 종착역을 보니 나비가 있던 자리에 아이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남편과 나는 그 실루엣에 눈을 떼지 못하고 서로 손을 꼭 잡았고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무지갯빛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