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스님은 마침 며칠 전에 있던 2급 승가고시의 수석 합격을 들은 참이었다. 상냥하고 단정한 말새를 지닌 스님은 겸손히 주변의 축하와 격려를 받는다. 그 모습이 미쁘시니 승려로서 다부지게 걸어온 길이 짐작되는 바다. 스님은 현재 조계종 계율과 불교 윤리 분야의 교육 아사리로 있다. 그리고 불교방송 BBS 라디오 ‘좋은 아침 원영입니다’와 TV 프로그램 ‘선물’을 진행하고 있는데, 참 많은 이들이 스님의 강의와 방송을 좋아한다. “제가 매사에 열정적이기도 하고 어떤 일을 하든 유용하게 하려고 해요.”
원영 스님은 열일곱 살에 절에 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출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엔 선방에 다녔고 그 후엔 일본 하나조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외국에서 계율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스님이다.
“구족계를 받을 때 ‘계를 잘 지키겠느냐’고 물어요. 그러면 ‘지키겠습니다’라고 답을 하는데, 마음속에서 이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계율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제대로 알아야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일본어도 모르는 한국의 앳된 승려가 먼 타지에서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것이 등불이 되어 주었다. 스님이 다닌 학교는 세계적인 불교 석학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계율 공부를 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이었다.
“계율 공부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꺼리거나 재미없게 여기는데, 저는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어요. 계율은 스님들의 생활 문제, 삶의 문제에요. 그러니 내 문제를 그 율에 빗대어 볼 수 있거든요.”
과거의 율장엔 현대 한국 사회에 맞지 않은 것들이 더러 있다. 그것은 많은 승려가 인지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사문화된 것도 있다. 그러나 원영 스님은 율장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초월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율은 승가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계율을 지키지 않고 막행막식을 하는 스님에게 누가 보시를 하겠어요. 공양을 받으려면 존경을 받아야 하는데 존경을 받으려면 스님들의 행실이 바르고 분명해야지요. 계율을 지키는 것은 승가를 위해서 불교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에요.”
원영 스님은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에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율을 무겁고 고리타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계율을 크게 확대해 보면 그것이 바로 불교 윤리이고 자비행이기 때문이다.
“계율을 지키는 게 바로 불교 윤리의 사회적 실천이에요. 낙태 문제, 존엄사 문제, 복지
문제, 모두 불교 윤리 안에 있어요. 우리 불교는 수행 측면을 강조했기 때문에 대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덜 뒀던 것 같아요. 스님들이 윤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시대에 맞는 구호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원영 스님은 한 사람의 승려로 살아가며 수행도 필요하지만 자비행도 적절하고 조화롭게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비루한 삶을 사는데, 승려가 수행만 하는 건 자비심이 없는 거로 생각해요. 수행도 하면서 자비 실천도 하는 게 최상이겠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지켜야 하는데 그걸 가능케 하는 게 계율이에요.”
원영 스님은 출가할 때 은사 스님이 하신 말씀을 가슴에 늘 담아두고 산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나의 이름 듣는 이는 삼악도의 괴로움 여의고,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나의 형상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소서.
“저는 이 승복이 나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보호복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처럼 우리의 행실이나 언행은 우리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죠. 특히 스님들에게 있어서는 외부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것.”
원영 스님은 동국대와 중앙승가대학을 비롯한 많은 승가대학에서 계율 강의를 해왔다. 비구니가 비구에게 율을 강의한다는 건 우리나라에서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원영 스님은 율을 새로운 방식으로 강의했다. 율을 내 문제화시켜 토론하는 유용한 강의를 해나갔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스님에게 강의를 청했다. 스님은 학인 스님들이 감동을 받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스스로를 대면해야 해요. 솔직해지는 것이지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자신의 한계점을 파악해야 해요.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억누르고 억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바위로 풀을 눌러 놓는 것일 뿐이지 풀을 죽이는 게 아니에요. 때때로 적당히 자신에게 너그러울 줄 알아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어요. 이 승복이 자유로우려면 이 옷을 벗는 게 아니라 자신을 잘 다스려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
방송, 책, 칼럼 등을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원영 스님에게 사람들은 친근하게 다가간다. 청년 멘토링 프로그램인 ‘청년출가학교’에서 젊은 청춘들의 인생을 상담해줄 땐 ‘마음 간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고 원영 스님이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힘내세요, 괜찮아요, 애쓰셨어요, 앞으로 잘 될 거예요. 예전엔 이런 말들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는데 제가 들어보니 오히려 눈물 나게 고맙고 위안이 되더라고요.”
새벽에 빌딩 청소를 마치고 계단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스님의 라디오를 듣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위안이라는 청소부, 목욕탕에서 손님의 때를 밀어주고 나와 밥 한 술 뜨며 스님 목소리를 들으면 피로가 다 가신다는 세신사, 지체장애인인 아들을 차에 태우고 매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게 너무 힘들지만 스님이 다독여줘서 힘을 낸다는 한 아이의 어머니. 그들의 문자를 받으며 스님은 그 문자의 여백에 숨은 감정들을 읽는다. 거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제 말 한 마디가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들은 힘을 얻어요. 자비라는 게 특별하고 거창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게 바로 자비의 실천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그들의 무릎에 힘을 줘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든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원영 스님의 앞으로의 길에 대해 은사 스님은 늘 말씀하신단다. 절을 운영하는 스님들은 많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널 종단에 받쳤다고 생각하니 불교 발전을 위해서 일해라. 원영 스님은 은사 스님의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방송이나 출판 그리고 강의를 꾸준히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종단 일에 도모하고 사회에 참여하며 폭넓게 활동해 나갈 생각이다. 예전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거절하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으나 이젠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원영 스님 스스로 해야 할 몫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 승가엔 비구니들이 양보하고 배려하고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란 사고가 은연중에 깔려 있어요. 그래서 비구니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그 밭을 갈아엎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더 많은 비구니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제가 그 밭갈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영 스님은 비구니가 가진 강점들을 살리고 싶단다. 자비 실천에 있어서도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가진 비구니들이 다가갈 수 있는 곳이 더 많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영 스님의 책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들》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지금이라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