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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자재身心自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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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원 - 수월 권상호 2016년 11월 417호
신심자재身心自在

古德云(고덕운)
덕이 높으신 옛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竹影掃階塵不動(죽영소계진부동)
대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조차 일지 않고
月輪穿沼水無痕(월륜천소수무흔)
둥근 달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 흔적이 없구나.
吾儒云(오유운)
우리 유학자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水流任急境常靜(수류임급경상정)
물의 흐름이 급해도 그 주변은 항상 고요하고
花落雖頻意自閑(화락수빈의자한)
꽃이 자주 떨어질지언정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구나.
人常持此意(인상지차의)
사람이 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以應事接物(이응사접물)
일에 응하고 사물을 접한다면
身心何等自在(신심하등자재)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이 글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절대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셀 수 있는 돈은 돈다운 돈이 아님을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위는 지위다운 지위가 아님을 비유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글귀로 신심자재(身心自在)가 키워드이다. ‘신심의 절대 자유’를, ‘몸과 마음에 거리낌이 없음’을, ‘일체의 속박이나 장애 없이 몸은 편안하고 마음은 뜻 가는 대로 버려둠’을 노래한 것이다. 인위(人爲)가 아닌 자연(自然), 투쟁(鬪爭)이 아닌 화평(和平)을 ‘대와 먼지, 달과 연못, 물과 환경, 꽃과 마음’을 통하여 음악적으로 읊고 있다.

두 쌍의 대구(對句)가 모두 ‘움직임 가운데 어떠한 고요함이 있다’는 뜻의 ‘동중정(動中靜)’
을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동중정(動中靜)’은 ‘정중동(靜中動)’이라 해도 무관하다.

산을 오름에, 정상에서 한 키만 부족해도 한쪽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방(四方)과 다른 정상은 정상에서만 볼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 덕행이 높은 옛 승려를 고덕(古德)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고덕이 유가(儒家)의 선비를 시로써 만났지만, ‘신심자재(身心自在)’의 깨달음으로 서로 통하고 있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쓰는 일’과 ‘둥근 달빛이 연못의 물을 뚫는 일’, ‘물의 흐름이 급함’과 ‘꽃이 자주 떨어지는 일’은 ‘동(動)’이다. ‘쓸어도 먼지 일어나지 않음’과 ‘뚫어도 흔적
없음’, ‘경계의 고요함’과 ‘마음의 한가로움’은 ‘정(靜)’이다. 유유자적(悠悠自適)도 있고 유유자재(悠悠自在)도 있다. 소요자적(逍.自適)도 있고 소요자재(逍.自在)도 있다. 아무런 구속을 당하지 않고 마음껏 즐기며 나아가는 ‘자적(自適)’은 동(動)의 극치이고, 원래 있었고 저절로 있던 그 자리 ‘자재(自在)’는 정(靜)의 극치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달을 보든 손가락을 보든 아무런 시비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