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제기한 불교 재정사업을 위한 7가지 고민을 하나씩 살펴보자.
1. 재정사업은 왜 필요한가. 어디에 쓰려 하는가.
2. 수익사업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
3. 수익사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4. 어떤 수익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5. 불교의 수익사업,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6. 어떻게 하면 수익사업이 성공할 것인가.
7. 스님들의 참여와 역할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1. 재정사업은 왜 필요한가. 어디에 쓰려 하는가
분명 쓸 곳이 있으니 돈이 필요할 것이다. 사찰 및 교단 운영비 보충, 승려복지, 각종 대형 숙원사업의 진행 등이 현재 사찰이나 종단이 내세우는 이유이다. 개별 사찰의 경우 전법은 고사하고 운영 자체도 어려운 지경에 있는 곳도 있으니 ‘최소한의 운영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납득하고, 불교인들도 인정하는 돈의 쓰임 처는 과연 무엇일까.
사찰의 운영과 승려들의 생활, 불사와 전법 등은 승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너무나 당연히 재가 신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다. 이 돈이 부족하여 수익사업을 한다는 것은 쉽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 청정하고 소박하게 수행처를 끌어가는 문화가 퇴색하고 번듯하고 과시적인 사찰을 지향하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수행을 하기에는 충분하지만 폼을 내기에는 늘 부족하다. 이러한 실상을 알고 있는 구성원들은 ‘쓸데없는 곳에 쓰려고 돈 버는’ 수익사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위의 이유가 아니라면 재정이 어디에 필요한 것일까? 불교의 재정사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 중에는 ‘대중들이 합당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반대하는 사업을 하려고 보니 말이 적은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라는 이해도 있다. 심지어 선거를 위한 비자금 조성을 위한 사업이나 특정 스님의 뒷돈 만들기 사업 등에 관한 얘기도 나돈다. 이처럼 사용처에 대해 승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감과 합의가 없다면 수익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리 만무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불교에서는 불교 본래 가치와 관련된 것과 불교 문화적인 부분이 섞여 있다. 한국 승가는 부처님 법의 전수자이자 한국불교문화(전통문화)의 전수자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 중 불교 본래적 가치를 유지하고 확산하는 일에 필요한 자금을 수익사업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전통)불교문화적인 내용은 관련한 역사, 문화적 이해관계자(정부, 지자체 등)의 돈을 모으고 유지와 개선, 확산을 위해서 수익사업도 가능하다고 본다.
2. 수익사업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사업을 영위하다 보면 부득이하게 비불교적 결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혜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차라리 보시를 받았으면 더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수익사업 이외에 불교적 가치를 지키면서 안정적 수입을 창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불교국가였던 고려 시대에는 다양한 국가 지원금이 존재했다. 그래서 사찰은 엄청난 부자였고, 심지어 노비를 소유하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 불교가 개발한 신기한 재정 원천은 ‘문화재 관람료’일 것이다. 이 역시 불교가 ‘전통문화 전수자 겸 관리인’으로서의 역할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무수한 논란과 비난을 받고 있다.
어떤 일이 장벽에 부딪혔을 때 답을 찾기 위해서는 본질로, 기본으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할 때가 있다. 불교 재정의 본질이자 기본이자 처음은 ‘보시’이다. 불교 신도들은 타 종교보다 상대적으로 보시를 많이 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십일조는 그들의 재정 상태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불교에는 그러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승가의 유지를 위해서 내는 ‘삼보 수호비’와 같은 부분은 ‘중대한 의무’로 이해되어야 하고, ‘전법’을 위한 보시에 불교인이라면 자신의 수입 상당 부분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인식이 불교인들에게는 부족하다. 적극적인 보시 문화 창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사찰의 수입은 답보상태이면서 기껏 신도들이 복을 빌기 위해 내는 돈을 비법(非法)인 줄 알면서도 사찰 운영에 쓰고 있다.
재정확보를 위한 대안에서는 우선 보시 문화를 다시 되살리고 체계화해야 하며, 각 비용의 사용처 별로 수입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세간에서 ‘돈벌이한다’, ‘기복 장사한다’, ‘불합리하다’라고 비판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명해나가야 한다.
3. 수익사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영리 기업들과 달리 종교인 불교의 수익사업에 대한 정의나 이해가 달라야 한다. 당연히 목적이 아닌 수단이어야 하고, 수행의 한 방편이어야 한다.
많은 사업을 진행하는 대만 자재공덕회의 사업을 세속의 수익사업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의 사업은 수익이 목적이 아니고, ‘일(봉사)’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백장청규에 입각한 수행활동을 하는 것이 수익활동이고, 그 결과물이 돈이고, 그 돈은 다시 청정한 승가 운영과 전법에 사용되는 보조물이다. 이러면 사람들은 인정해준다. 청정한 도량을 따르려는 마음이 들고 당연히 기본적인 재정 원천인 보시도 늘어나게 된다. 불교계 TV, 라디오, 신문 등의 사업 역시 수익사업이지만 이것을 누구도 돈을 벌기 위해 세웠다고 보지 않는다. 목적이 ‘전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도 수익사업 비슷한 활동들이 있었다. 사찰이 있는 지역민들이 빈곤하여 받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스님들이 나서서 기반시설(항만, 도로 등)을 설치하고, 자치농장(각종 농산물 재배 및 가공)을 설립하고, 마을금고 등의 자생적 금융체계를 수립하며,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이 역시 법적으로는 수익사업이다. 하지만 그 목적 역시 불교 집안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 아니었고, 세속의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자비심으로 한 행동이었다. 당연히 사찰의 운영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은 마을 사람들의 보시로 이뤄진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 공동체인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공동체 역시 종교인이 창립자이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서너 명의 청년들과 전기·전자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을 자립시키고, 협동과 헌신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규모 면에서도 수십 조 원의 회사공동체가 되었으며 전 세계 협동조합 사람들의 모델이자 성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사례는 불교적 가치를 지키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목적이 먼저이고 돈이라는 것은 그 결과이자 성과일 뿐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불교의 수익사업에 대한 접근법이고 특징이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인식이 현실을 모르는 한심한 소리로 치부되고 있다. 당장 필요한 돈을 모으지 못하는데 이상적 소리만 하고 있다는 항의도 있다.
불교에서 모든 의사결정의 지침과 기준은 ‘부처님께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부처님께서는 뭐
라 하셨는가? 옛 승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였는가?’일 것이다. 승가의 살림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해서 돈을 벌라고 하신 부처님과 대승고덕의 말씀은 어디에도 없다. 돈을 목적으로 하고 싶으면 승가 밖에서 하면 될 일이다. 그러한 조급함으로 사업을 벌이면 사업 역시 될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