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경찰청장 허영범(許英範) 치안감. 이 사람의 명함에는 캐리커처와 함께 ‘안전한 대구, 사랑받는 대구 경찰, ok! 0犯’이라 적혀있다. 그의 이름 뒤에 한자를 표기한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뭘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겠으나 ‘0犯’을 다시 풀어본다. ‘범죄 제로’이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대구지방경찰청 홈페이지 내부망에는 또 다른 ‘OK! 영범’이 있다. 경찰관들이 말 못하는 애로사항을 익명으로 상담하는 코너로 만족도가 높단다. 내부 만족이 시민 만족이라고 직원들이 OK! 할 때까지 해결해 달라고 직원들이 허 청장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고 “어린 시절에는 차범근 경기를 보면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아마 또래들이 비슷한 꿈을 꾸었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영향으로 일찍이 진로를 정했지요. 경찰행정학과 4학년 때 합격하여 연수를 받고 졸업과 거의 동시에 시작했으니 31년이 되었네요.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저의 직업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담담하게 전하는 그에게서 유전자처럼 새겨진 경찰공무원의 자세와 신앙의 표정이 보인다. 제복이 부여하는 준엄함도 있으리라.
“유니폼의 위력은 엄청나지요. 정의로움의 버팀목이며, 한 인간을 경찰의 사명감으로 무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어깨에 달린 무궁화가 별처럼 빛나는 그에게 지금 이 시각 노량진 고시촌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청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주문했다.
“요즘 우리 경찰이 인기죠. 그래서 훌륭한 인재들이 높은 경쟁률로 6수, 7수를 하면서까지 매우 어렵게 입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해서 의지를 가지고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멋진 제복을 입을 수 있을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저와 같이 근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뜨거워진 눈빛의 허 청장에게 진정 그 일이 할 만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나를 다스리며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일’이므로 대한민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한 멋진 직업이라 힘주어 말한다. 스스로 행복해야 타인을, 그리고 사회를 위한 비전(Vision)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기는 대목이다. 경찰청 치안감은 꽤 높은 직책이다.
그는 처음 경찰이 되었을 때 오늘의 모습을 상상했을까?
“저는 후배들에게 늘 말합니다. 목표를 높이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꼭 어느 자리까지 올라가겠다는 목표를 세우진 않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저의 치안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위치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들추기에는 노루 꼬리처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자신감 또는 경찰로서의 자부심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가 살아오면서 가장 가치를 두는 일은 무엇일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입니다. 저는 가정이 평온해야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고 그래야 사회도 밝아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출근하기 전 어머니와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껏 제가 무탈하게 경찰관으로 봉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도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경찰 동료라 말하는 그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수사부서에서 일하면서 도난 문화재 환수를 비롯해 문화재 도난 예방을 위한 조계종과 경찰청, 문화재청의 업무협약 체결에도 크게 기여한 허영범 대구경찰청장은 2016불자대상을 수상했다. 경찰생활 이후 초파일 당일에 사찰을 찾은 유일한 하루가 금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아내를 동반한 불자대상수상 자리였으니 그의 평생 옆 지기에게도 특별한 날이었다. 허 청장의 하루는 새벽 5시 기도와 108배로 시작한다. 새벽 비상이나 그 밖의 이유로 절하는 시간을 놓치면 출근 이후 집무실 방석에서 대신하는 그. 108배로 남편을 향한 대가 없는 따스한 눈빛과 조용한 응원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의 아내. 아름다운 부창부수다. 금강경 제18분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잡을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잡을 수 없으니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삶의 지침이란다. 그의 불교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다.
“어릴 때 부모님 손 잡고 인근 사찰을 찾았었고 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불교에 심취했습니다. 그러니 경찰불자회 활동은 당연한 수순이었지요. 2013년 9월부터 대한민국경찰불자회장 소임을 맡고 있는데 지난 8월에는 은해사에서 창립 15주년 기념법회를 가졌습니다.
경찰불자회는 부처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수행하는 모임입니다. 특히 재직 중인 대구경찰청 법당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언제 누구라도 부처님 앞에서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답니다.”
불자라면 누구라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언제라도 찾고 싶은 사찰이 한 군데쯤은 있기 마련이다.
“제가 봉정과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봉정암 관할 인제경찰서로 두 번 발령받았습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약 사오십 번 봉정암을 찾았을 겁니다. 백담사에서 봉정까지 4시간 전후해서 걷는 산길이 제게는 구도의 길, 수행의 길입니다. 그 10.7km가 오르기 힘들다고 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사계절 모두 제 마음속에 들어있습니다. 봉정 밤하늘을 아시죠?”
이쯤에서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사진을 한 장 들고 왔다. 사리탑 위로 쏟아질 듯 가득한 별 사진을 함께 보니 발끝과 어깨 위에 올라앉은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봉정암 별빛에 가슴 뛰었던 불자로서의 동질감이리라. 바쁘고 바쁜 생활이지만 얼마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마치 준비한 답변처럼 템플스테이라고 말한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올가을 가야산 홍류동이 이름값을 할 때쯤 붉게 물든 단풍길 따라 해인사 찾기를 권하며 넌지시 물었다. 불자대상 상금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불철주야 고생하는 우리 대구경찰 식구들에게 밥을 한 끼 샀습니다. 대구경찰청에는 골든벨이 있어요. 직원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주인공이 종을 울리며 밥을 사고 축하와 덕담을 받는 전통이죠. 저도 불자대상 받으며 골든벨을 울리고 또 대한민국경찰불자회에 특별회비를
찬조했습니다. 회원들의 신행과 봉사활동에 사용되었을 겁니다.”
허영범 청장은 영화 <베테랑>을 함께 보며 애환을 나누고 <귀향>을 감상하며 조국을 다시금 생각했다는 대구경찰청 식구들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총총히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에서 푸르고 굳건한 나무 모습을 본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코 박고 있던 컴퓨터에서 눈을 떼니 가을 하늘이 싱싱하다.
갓 따온 사과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