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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열 달간의 여행 - ‘만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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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일여(生死一如) – 생(生) - 김서리 2016년 10월 416호
“여보, 우리 기차가 곧 산을 오를 건가 봐요.” “응~ 만삭역이 저 산 중턱에 있대. 이제 연료를 가득 채워야겠지?”
우리는 기차 안에 몽글몽글 퍼져있는 사랑 온기를 따다 바구니에 담는다. 이전 역에서 담아 온 배려 온기도 담는다. 곧 기차 연료 주입구가 열려 온기를 부어 넣었더니 산 어귀에서 주춤거리던 우리 기차가 레일을 힘껏 밟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경사는 점점 심해지는데 삐뚤빼뚤한 레일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덜컹거린다. 불편하고 힘들어 호흡까지 가빠지니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말한다. “여보, 살짝 눈 감고 상상해봐. 예쁜 나비들이 꽃바람을 끌어와 목화솜보다 가벼운 우리 기차를 밀어주고 있다고.” 어느새 나는 감은 눈으로 나비들을 한 마리, 두 마리 떠올리고 있었다.

만삭의 기록

어둠이 깊어 어스름한 빛도 없는 새벽녘, 또 배가 뭉쳤다.
아이가 머무르는 곳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배가 딱딱해지는 것을 배 뭉침이라고 하는데 요즘 들어 배 뭉침이 잦다. 소파에 옆으로 누운 채 천천히 심호흡하다 보니 배가 풀린다. 배가 편안해지니 이제 화장실도 가고 싶고 물도 마시고 싶다. 몸을 일으킬 때 배에 힘을 줄 수도 없고 손목으로 몸을 버틸 수가 없으니 주먹을 쥔 상태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킨다. 바닥에 발을 디뎌보니 발바닥이 둥둥 떠 있는 듯 발이 부어있다.

천장을 보고 바로 누우면 남산만 한 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 옆으로 누워 잔지 두 달째, 이불을 겹겹이 깔아도 바닥 잠은 편치 않아 거실 소파에서 자기 시작한 지는 한 달째다. 나를 위해 거실 바닥에서 자는 남편을 혹시라도 밟을까 봐 부은 발로 바닥을 더듬어 내 걸을 자리를 확인하고 일어난다. 순간 현기증이 나서 잠시 서 있다가 화장실에 다녀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소파에 누우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바로 누워 편하게 한번 자봤으면….”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날 밤 예약해둔 밥솥이 명랑한 목소리로 잠을 깨운다.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체중 재기. 하룻밤 새 200g이 늘었다. 만삭이 돼갈수록 남편보다 더 먹는다. 살면서 또 언제 이렇게 먹는 것이 즐거울까 싶어 요즘 참 야무지게 먹는다. 그런데 커다란 배 때문에 식탁은 멀고 음식은 잘도 떨어지는데 다행히 배에 떨어져 주워 먹기 좋다. 설거지는 주로 남편이 하지만 물컵이라도 씻으려고 싱크대 앞에 서면 다리가 저리고 배가 닿아 물에 젖기 일쑤다. 배는 끝 간 데 없이 불룩해져 근래 들어 내 발을 본 적이 없고, 허리를 숙여야 할 수 있는 발톱 깎기와 머리 감기는 미루고 미루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귀엽고 신기했던 태동이 이젠 ‘위협’ 수준이다. 아이의 뼈가 커지고 단단해져서 좁은 배 속을 휘젓다가 명치나 갈비뼈를 칠 때면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다.

서 있으니 다리가 저리고 발바닥이 아파서 앉아본다. 구부정하게 앉으면 배에 무리가 가서 꼿꼿하게 앉아본다. 꼿꼿하게 앉으니 이내 호흡이 힘들고 허리가 아파서 누워본다. 반듯하게 누울 수 없어 옆으로 눕는데 베개를 아무리 바꿔도 어깻죽지 저리고 목 뻐근한 건 흔한 일이다. 그래서 결론은 ‘뭘 해도 힘들고 어떻게 해도 불편하다’이다.

만삭의 수행

① ‘원래 불편한 것이구나’ 이해하기

소파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며 남편이 묻는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당신이 편해질까?” 엄살 피울 여력도 없는 나는 답한다. “만삭은 원래 불편한 건가 봐요.” 뭘 해도 힘들고 어떻게 해도 불편하다. 갈수록 육체가 힘들고 불편하다는 건 아이가 이 배 속 세상을 충분히 누리며 자라고 있다는 것이고 내 배는 만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다가 이제 태어날 준비를 마쳐가는 생명을 품고 있으니 편할 리가 없다.

② 몸의 불편한 느낌에 매이지 않기

‘만삭은 원래 불편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힘든 순간마다 알아차려 마음에까지 괴로운 느낌을 가져가선 안 된다. 《상윳따 니까야》의 〈화살경〉에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 느낌만을 경험할 뿐이며 결코 정신적인 느낌은 겪지 않는다.”(각묵 스님 옮김)라고 나와 있다. 만삭의 육체 때문에 괴로운 느낌을 받으면 그것만 경험해야지, 그것에 매이면 안 된다. 만삭의 불편함은 내가 서원하여 얻은, 달가운 몸의 괴로움일 뿐이다.

③ 웃을 일 만들기

여느 아침처럼 체중을 재는데 헉, 20kg이 늘어서 잠이 확 깼다. 다시 보니 체중계 뒤쪽에 남편 발이 있다. 둘 다 까르르 웃는데 아이가 폭풍 태동을 한다. “여보~ 이거 봐요!” 배표면 위로 뭐가 쑥쑥 올라온다. “카메라! 카메라!” 그 순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허둥지둥 찾아 녹화 버튼을 누르면 아이가 조용하다. 또 까르르 웃다가 남편이 내 배를 보며 “나 몰래 언제 먹으려고 여기다가 숨겨뒀어?”라기에 봤더니 옷에 말라비틀어진 밥알이 다소곳이 붙어있다. “아, 들켰네? 혼자 먹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우리는 또 웃는다. 몸도 호흡도 여전히 힘들지만 만삭의 삶이 따뜻한 건 때때마다 마음 돌려 웃게 되는 ‘특별한 상황’이 있고, ‘도반’이 있고, ‘새
생명’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④ 아이 떠올리며 염원하기

순간순간을 마음 돌려 웃을 일을 만들다 보면 아이를 불러볼 여유가 생긴다. “..아, 잘 있니?
좁은 엄마 배 속에서 힘들겠구나”라며 배를 천천히 쓰다듬고 눈을 감으니 옆에서 남편이 말한다. “여보, 배 속 아이를 마음으로 그려봐. 불편하게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편안하게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마음에 떠올리는 거지.” 남편의 말을 따라 관상(觀想)을 했더니 엄마 배 속 세상을 마음껏 즐기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고 어느덧 내 호흡도 편안해졌다. “아이가 머무는 곳 어디든 밝고 편안하기를….”이라는 염원을 담아 아이를 떠올려 보자. 아이는 고른 호흡과 평온한 마음을 엄마에게 선사하는 것으로 화답할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만삭이 주는 육체적 괴로움의 느낌은 ‘원래 불편한 것이구나’라고 안다면, 힘든 순간마다 잘 알아차려 몸의 불편한 느낌에 매이지 않게 되고 오히려 마음 돌려 웃을 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아이를 떠올리며 염원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귀한 시간을 아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임신은 참, 수행거리 천지다.

“당신이 임신 중이었을 때 마음이 참 곱고 예뻤어.” 언니가 임신했을 때 형부가 했다던 말이다. 아마도 많은 여성이 임신을 하면 착해지지 않을까? 그것이 태교 때문이든, 기력을 양껏 쓸 수 없기 때문이든 상관없이 적어도 내게는 임신이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수행거리를 찾았으니 말이다. 내 최고의 도반인 남편과 나는 요즘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우리가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작은 점에서 시작해 이제는 잠든 나를 깨울 만큼 부쩍 자란 배 속 아이가 내 속에 머무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아름이나 되는 배가 마치 활짝 핀 꽃 같다. 꽃은 만개하면 꽃대에서 떨어져 나가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아이가 피운 꽃은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지. 오늘도 이 꽃 한 아름 안고 거실 소파에 모로 누워 깊고 편안한 잠을 청해본다.

호흡이 편안해져 가만히 눈을 뜨니 어느 틈에 벌써 산 중턱에 이르렀다. 차창 밖으로 우리의 여행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원’부터 ‘임신 확인’역, ‘입덧’역, ‘몸의 변화’역, ‘산부인과’역, ‘태동’길, ‘성별’터널, ‘배려’역, 그리고 지금 지나고 있는 ‘만삭’역까지. 안쓰러운 마음에 기차에 손을 대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조금만 더 힘내자.” 기차가 울퉁불퉁한 레일 위를 천천히 달리며 산 중턱을 넘으니, 바람결이 사뭇 다르고 맡아보지 못했던 풀냄새가 난다. 우리 기차는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 마리를 따라 낯선 곳에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