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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칠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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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글씨를 찾아서 - 조수현 1996년 03월 169호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지리산의 반야봉 남쪽 해발 팔백 미터쯤에 있는 칠불사는 칠불암이라고도 하고 칠불선이라고도 불리는 수선 도량이다. 창건 이후 칠불사는 참선 납자들의 도량으로 많은 고승대덕들이 주석하였다. 1568년 임진왜란으로 퇴락된 가람이 서산대사와 부휴대사에 의해 중수되었고, 1800년대에 보광전과 약사전 등 십여 통의 모든 건물이 실화로 전소되었으나 1830년 금담과 그 제자 대은 율사의 원력으로 완전 복구되어 동국 제일선원으로서의 위풍을 떨쳤다. 또한 1907년 토비의 난으로 승려들이 흩어졌다가 1910년에 다시 선사를 크게 열었는데 1948년 여순 반란 사건과 1951년 지리산 전투 등의 계속된 참화로 대가람이 모두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재건되지 못한 채로 있다가, 지금 칠불사의 주지로 계시는 통광通光스님이 1964년에 행각 다니던 길에 우연히 이 곳을 지나다가 성스러운 천년 고찰이 잿더미에 묻혀 있음을 보고 통탄해 마지않아 사찰 복원의 서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다 산죽과 억새풀로 초막을 짓고서 문수보살 천일기도를 시작으로 십수 년 동안 수행 정진하다가 마침내 문수보살의 가피력으로 복원 불사를 추진하였다. 이에 1978년에 문수전을 시작으로 대웅전, 열선당, 요사채를 잇달아 복원하고, 1983년에는 지방문화재 144호인 아자방과 함께 보설루, 종각, 주지실, 채공실 등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에는 마지막으로 일주문을 세움으로써 무려 십팔 년에 걸친 그 오랜 대작불사를 원만히 회향하였다. 칠불사는 지리산 높은 산자락에 안온하게 안겨 있는데 시야가 툭 트인 앞 경관은 끝도 없이 첩첩한 산 능선이 아래로 이어져 있어 깊은 산 속에 고요하면서도 기운 두렷하게 앉은 모습이 선원으로서 맞춤하다. 이십여 년에 걸친 불사로 이루어낸 도량의 모습도 아담한 대로 세련되고 정갈하기만 하다.

이곳의 현액과 주련들은 현존하는 서예 대가인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님의 필치로 만들어졌는데 과연 대가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이 곳 지리산 화개면 일대는,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차(茶)나무가 재배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아마도 그런 인연에서 일게다. 조선시대에 차로도 이름이 높던 초의 선사의 업적을 기리고 다선일여의 풍류를 후손에게 전하고자 염원하는 뜻에서, 칠불사 초입에는 \"초의선사다선탑비\"가 단아한 국한문 서체로 세워져 있다. 칠불사의 현액들을 보자면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한 현액을 위시하여 \"아자방亞字房\"과 \"원음각圓音閣\", \"열선당說禪堂\"의 현액들은 다같이 예서풍인데 그 호방하고 훤칠한 기풍이 일품이다. 그런가 하면, \"대웅전大雄殿\"과 더불어 \"문수전文殊殿\", \"보설루普說樓\"는 북위풍으로서 해서체의 웅강한 멋이 돋보인다. 한편, 이 곳의 주련 글씨들은 수십 줄이 넘는데 모두가 예서와 행초서로서 일필휘지하는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명작들이다. 다만 도량은 새로이 복건하였으되 이름하여 천 고찰인 점을 생각할 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작지 않은 한 사찰의 현판과 주련이 오직 한 사람만의 필치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필치에 따라 여기에 몇 점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