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마음을 치유하는세파에 찌들어 적잖이 산만해지고 둔감해진 우리의 세포를 깨우는 일은 아무래도 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찾아 떠나고 유기농 음식물을 찾는가 하면 또 어떤 그 무엇을 원한다. 그 무엇이 청아한 오르골 소리라면 어떨까.
위키백과에 오르골은 음악상자(音樂箱子), 뮤직박스(Music Box), 자명금(自鳴琴)이라 하며 음악을 자동으로 연주하는 기계라고 나와 있다. 오르골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오르간을 뜻하는 독일어 ‘Orgel’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표현이라고 하는데 이런 긴 설명보다는 한 번이라도 그 소리를 접해 볼 일이다. 황영옥 대표는 보석상자 크기만 한 오르골의 태엽을 감아 테이블에 올리면서 말했다.
“귀를 대고 소리와 진동을 느껴보세요. 오르골은 태엽형식이라 전자파가 없습니다. 3.75Hz의 초저주파에서 10만2천Hz의 초고주파까지 모두 담겨있는 것이 특징이죠. 오르골 소리는 뇌관을 자극해 좋은 기운을 생성시키므로 우울증이나 불면증, 두통, 패닉 장애 등을 치료하는 데 이용됩니다.”
진동을 느껴보라는 말에 냉큼 테이블에 팔과 귀를 갖다 댔다. 부드럽게 전해지는 떨림과 울림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Liszt La Campanella)를 재해석하게 했다. 좋은 음식이 몸에 좋듯이 좋은 소리는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는 아름다운 소리 오르골에 매혹된 황영옥 대표. 그녀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앤티크 가구와 세라믹을 수집해온 컬렉터다.
“20년 전쯤 런던에서 처음 만난 오르골에 반해 1982년 도쿄에 오르골 갤러리 토닌을 오픈했습니다. 2010년에 삼성동에 한국지사를 열고 지금 한남동에 사옥을 마련했죠. 그동안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의정부 법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오르골 콘서트와 미혼모 대상 오르골 치유프로그램은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콘서트는 오르골 특성 때문에 무진동 차량을 동원해야 하는 힘듦이 있지만, 앞으로
아름다운 오르골 소리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오르골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웃에게 위로와 치유의 에너지를 전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그이의 말이 너무도 반갑다. 그래서 다음 오르골 콘서트는 사찰에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급히 제안해 보았다. 선선히 그러마 하는 황 대표를 부처님이 보셨다면 선재, 선재라 하시지 않았을까. 황영옥 대표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신행을 보고 자라며 불자가 되었고 불교여성개발원의 제5차 여성 불자 108인에 선정되었다.
“제 어머니는 말씀이 별로 없었어요. 집에 스님들께서 오셔도 때 되면 공양만 올리고 무심하셨는데 그것이 스님들을 편안하게 하셨나 봐요. 6남매 키우면서 야단을 치거나 명령을 하신 적 없이 그저 좋은 말만 하셨지요. 또 경봉 스님 유발상좌인 오빠 따라 통도사 극락암에 가서 차와 과자를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제게는 아직도 그냥 좋은 통도사입니다.”
사업가로 통 큰 컬렉터인 그녀도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여전히 눈가가 붉어지는 50대 중반의 여인이다.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있는 황 대표는 모전여전일까? 자식 교육에 아주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다. 강요나 집착이 아닌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유학을 원하면 유학을 하게 했고 일을 갖고자 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부모는 안내자 역할이면 충분하단다. 같이 오르골 테라피스트 자격을 취득하고 갤러리 운영을 하는 딸과 엄마의 모습이 살갑다. 황영옥 대표는 20대부터 인연이 있어 일본에 머물렀지만, 한국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2010년 한국에 진출해서 일본을 오가며 살아가는 황영옥 대표의 일상은 치열하다. 인생이란 방어전을 그저 맨손으로 치러 내야 하는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든 누군들 쉬웠겠냐만 이국에서는 그 강도가 더 높았으리. 그런데도 신행생활을 놓지 않으니 그녀의 나날이 아름답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세수하고 천수경 독송과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을 합니다. 그리고 오르골 명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지요. 짬이 날 때면 봉정암을 가는데 사리탑의 새벽하늘 아시죠. 천 배를 끝내고 쳐다보는 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말을 아끼는 그녀 마음결을 어찌 아니 모르랴. 봉정을 참배한 사람이라면 사리탑 위로 보이던 박명의 새벽하늘 빛깔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새벽빛을 공유할 사람을 만나면 기꺼이 도반이 된다. 며칠 전에는 하안거 중인 봉암사 선방에 대중 공양을 다녀왔다는데 그것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제가 요리교실도 운영하는데 마침 6명이 불자 회원이었어요. 서울에서 재료를 모두 준비해 그들과 봉암사로 갔습니다. 제 딸도 함께였는데요. 1박2일 하면서 단백질 메뉴를 중심으로 일본식 사찰요리를 100인분 만들었어요. 테이블 세팅도 근사하게 하고 싶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주변의 피어난 꽃으로 소박하게 했습니다. 스님들께서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제가 더 행복했습니다.”
잿빛 승복의 수행자 100명이 들꽃과 일본식 사찰음식으로 세팅 된 공양 자리에 앉은 모습! 상상 불가이면서 또한 상상 가능한 자리다. 얼굴 가득 충만한 황영옥 대표. 불자여서 참 행복하고 고마운 시간이었겠다.
“사실은요. 정말 감사한 일은 새벽예불 끝나고 법당에 저 혼자 있을 때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겁니다. 산사의 새벽 법당은 고요와 적막과 평화와 장엄과 그 모든 것이 다 함께라고 생각해요. 그 법당이 제 차지였으니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 알 만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데가 많았지만 불자로서 일치하는 지점에서 시선을 마주한 것이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황 대표에게 일본 불자들의 신행생활을 물어봤다.
“일본의 사찰은 불자들이 다가서기에 문턱이 꽤 높습니다. 법당에도 함부로 못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제게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일본에 한국식 전통사찰을 지어 원하는 사람 모두 예불도 할 수 있고 천도재도 모시고 법회도 하고 싶어요.”
딸과 함께 오르골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담가 역할도 하고 있는 황 대표의 마음이 읽힌다. 갤러리 토닌에 전시된 오르골은 스위스 루즈사와 미국 포터사가 만든 명품들이다. 만들어진지 100년이 넘는 앤티크 오르골은 물론이고 최신작이며 전 세계에 두 점뿐인 오르골 ‘크리스털 트윈’ 등을 갖추고 있으니 이곳을 방문하면 눈과 귀가 복된 경험을 할 수 있다. 1898년 제작된 업라아트형 오르골의 오묘한 음색을 들으며 3층에 오르면 오르골 명상을 위한 테라피룸과 다기능 공간이 자리한다. 황영옥 대표의 사적 공간이면서 열린 공간이다. 한 사람의 공간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은 그 곳은 방문자의 정서적 욕망이 충족될 만한 공간이었다. 차 한 잔과 다식이 놓인 쟁반에서 사람을 귀히 대접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갤러리를 떠나왔다. 돌아 나오는 골목길에 능소화 가지가 넌출 거린다. 오늘의 무더위와 내일의 신선함 사이에 여름이라고도 가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계절 9월이다. 이제 곧 가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