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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 공간으로서의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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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Idris Kabir syed 1996년 03월 169호
나는 스물네 살의 젊은이로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준비하던 중에 여자 친구인 Lara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을 선택한 것은 이론 대신 세상의 지식과 산 경험들을 직접 체험하고 한국의 역사, 특히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난 곳은 미국이지만 아시아는 내게 아주 특별한 친밀감을 준다. 부모님은 인도 출신이고 외가는 힌두, 본가는 회교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어떤 종교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랐다. 하지만 정신적인 것, 믿음 등의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늘 가지면서 어떠한 편견도 없이 문화, 종교 등을 골고루 알려고 애썼다. 결굴, 이런 관심들은 필연적으로 석가모니의 자비로 이끌어지게 되었고, 깊이 매료되었다.
내가 처음 해인사에 관해 알게 된 것은 「Tricycle」이라는 미국의 불교 잡지에서였다. 물론 그 전에 구산스님의 책에서 해인사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정말로 해인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Tricycle」의 사설에 쓰여진 팔만대장경을 읽고서이다.(1995년, 여름 Robert young의 사설)
광주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보통 문화적 충격이란 자기가 살아온 것과 다르고 생소한 새로운 문화를 발견했을 때의 이질감을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문화적 충격이었던 그 생소함은 내가 살아왔던 미국 사회와 같음이었다. 곧 자본주의의 탐욕이 빚어낸 물질적 풍요로 인한 가치 혼란, 성의 문란, 즉흥적인 유행, 쏟아지는 차들과 무질서였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 올 때는 오랜 역사의 땅인 한국의 심오한 전통적 문화를 기대하면서 왔다. 그러나 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도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보존해야 할 그들 자신의 문화로부터 도망쳐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것만 모방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광주라는 낯선 환경과 학원 강사라는 새로운 직업에 얼마쯤 적응하게 된 어느 날 한 학생이 해인사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1995년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해인가족 모임이 그것이다. 드디어 나의 여자 친구인 Lara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기뻐했다.
처음 본 해인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도시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나는 온 마음으로 \'Reflection on a calm sea temple(海印)\'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곳에서 진정 한국의 전통적 미와 얼을 느꼈다.
우리를 안내한 학생은 스님들을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들어갔던 곳은 팔만대장경을 전산화하고 또 보존 연구하는 고려대장경 연구소였다. 방은 매우 단순하고 청결했으며 스테레오, 텔레비전, 비디오, 냉장고 따위가 있어 문명의 편리를 이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성안스님을 어렵게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4시에 해인가족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곳에는 이백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나와 나의 여자 친구 Lara는 그 곳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한국에서 만났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상냥했다. 어떤 남자는 영어를 말할 줄 몰랐지만 나에게 그가 직접 만든 물바가지(조롱박)를 선물로 주었다.
그 모임에 참석한 개개인적으로는 친절하지만 그러나 해인사를 비롯하여 한국의 유수한 사찰은 외국인을 위한 충실한 안내 자료는 고사하고 내국인과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에게조차 자세한 설명서 하나 없다. 외국인이 한국에 여행을 올 정도면 다른 데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적인 것을 많이 보고 싶은 것이다. 그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면 나는 불교라고 얘기한다. 기독교인들은 가는 곳마다 극성스럽게 자기 종교를 떠들어댄다. 그런 면에서도 한국 불교는 많은 장점을 안고 있다. 다른 종교처럼 역 광장, 고속버스 주차장, 전철 속에서 목청껏 떠들지 않아도 공기 좋고 물 맑은 산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공간과 시청각 자료를 확보해서 관람시켜도 큰 효과를 거두고 관광객들에게도 소비향락적 놀이에서 문화적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도 아직도 꿈틀거리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한국을 알려고 산 속의 절을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여러 국가의 언어로 번역된 프로그램, 책자들,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더 많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들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들을 재가 불자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된 예불이나 여러 가지 의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와 공간이 할애되어야 한다.
수행자들과 신도들이 합심하면 무슨 일이든 어렵지 않게 성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불교는 자생력을 시험받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사회의 어떤 조직과도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합리적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려면 불교계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양성되어야겠지만 각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추고 활동하고 있는 재가 신자들을 활용하는게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경주 고속철도 통과도 결과적인 산물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도 늘 관심을 두고 조계종의 매년 기획이나 정책도 이에 맞추어 추진하면 뒷북치는 일이 매우 적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불교계의 조직이 활성화되어 각 분야에서 적절한 인재가 배치되고 능동적인 체제가 이루어지면 지도자가 어느 종교를 갖든지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교리와 좋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불교를 따르는 종교가 없다. 문제는 사람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한국 속담을 들었다. 한국을 위해서도 불교는 활성화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세계화란 물질주의에 반한 이해의 하나로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해인사에서의 시간은 부처님에 대한 나의 경험, 삼보(Buddha:부처, Darma:말씀 경전, Sangha:승려와 재가 불자)에 대한 나의 믿음을 새롭게 해 주었다.
해인사에서 돌아온 지금도 나는 해인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 박창진 어린이는 한국의 불교에 관해 편지로 말해 주었고, 성안스님은 「수다라」라는 잡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결코 그 곳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애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한국 불교를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