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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라면 모연을 어떻게 하셨을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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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불교 - 김재춘 2016년 08월 414호
부처님이라면 모연을 어떻게 하셨을까 (5)

기복적 모연과 보시 문화가 남아 있는 한국 불교의 현실에서 부처님의 법을 따르면서도 쓸 만큼의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그동안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와 모연의 참 의미를 살펴보았고, 구체적으로 모연하는 방법들도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는 실제적인 권유 방법을 전하고자 한다.

1. 권유는 적당하고 적절해야 한다.

거문고가 너무 세게 당겨지지도 너무 약하게 당겨지지도 않아야 좋은 소리를 낸다는 비유로 중도의 도를 깨닫게 하셨던 부처님처럼 모연을 할 때도 적절하고 적당히 준비하고 행해야 성공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들이 있다.

권유자

권유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모연액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보시자에게 영향력을 끼쳐 기부활동에 이를 수 있도록 독려, 권유하는 ‘적절한 영향력자 확보’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모연의 초기 기획단계에서 좋은 권유자를 어떻게 얼마나 확보하고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타 종교에서는 성직자(목사, 신부)만큼의 권유력(勸誘力)을 가진 사람을 활용한 모금이 많다. 유명 연예인을 동원하기도 하고, CCM(현대적 기독교 성가:Contemporary Christian Music) 가수들이 그 역할을 맡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스님의 지위를 대신할 만큼 강력한 권유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요한 권유자 그룹이랄 수 있는 이사회나 후원회를 구성할 때도 본인이 얼마나 기부할 수 있느냐보다는 특정 기부대상자들에게 적절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가를 따지는 것이 정석이다.

대상자와 명분·방식·모연액·시기

당연하게도 사람은 다르다. 같은 사업이나 프로그램, 불사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반응하는 명분과 좋아하는 시기, 선호하는 방식(모연 아이디어), 낼 수 있는 돈이 전부 다르다. 때문에 모연의 대상을 먼저 선정하고 철저한 분석을 통해 그들에게 ‘맞춤형 권유’가 가능해야 한다.

불사 모연에서도 어떤 이들은 건축의 의미와 가치에 반응하기도 하지만 스님과의 관계 때문에 보시를 결정하기도 하고, 불사 공덕의 가르침에 마음을 더 쓰기도 한다.(명분)

특정액을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귀찮다는 이유와 가시적으로 보인다는 장점으로 일시 기부를 좋아하는 이도 있다.(방식)

보시자의 현황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시기에 방문하고 기분이 상하거나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의 금액을 요청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라서 하나의 ‘도(道)’에 비견되기도 한다.(시기, 모연액)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모연의 방법을 선택하고 구사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대중들의 근기에 맞춰서 설법하시고 깨달음에 이끄셨던 것처럼 대상에 맞춘 지혜와 철저한 준비가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2. 권유의 본질은 경청(듣는 것)이다.

전법의 본질이 ‘말함’에 있지 않고 ‘실천’과 그에 따른 ‘감화’에 있듯 모연 역시 듣는 귀가 있어야 성공의 가능성이 커진다. 모금가를 외국에서는 ‘드림 브로커(Dream Broker, 기부자의 마음과 사용처를 연결해주는 사람이라는 뜻)’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기부자들은 모두 ‘이랬으면 한다’라든가 ‘이런 것이 좋다’라는 마음이 있다. 이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불사의 어떤 특성과 연결하여 얘기할 수 있다. 즉, 신도들이 우리 사찰이 지역에서 상당한 위상과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서 이번 불사가 그 꿈을 이룰 계기임을 강조할 수 있다.
잘 듣는 과정에서 보시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어떻게 해주면 시주를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고, 이것이 모연 권유의 주요한 힌트가 된다. 이래서 모금 계에서는 ‘달변의 푼돈, 경청의 목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3. 권유는 주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괜찮다.

모연에 대한 대단히 잘못된 인식 중의 하나는 사찰에 필요한 자금이나 물품을 ‘받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호에서도 밝혔듯 모연은 철저히 주는 행위이다.
보시는 부처님께서 수행의 기본이라 하셨고, 모든 천신과 세속에서도 칭송하는 선한 일이며, 개인의 원인과 환경의 조건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모연은 바로 이런 중요한 일을 할 ‘기회를 주는’ 행위이다. 모연에 대해 ‘주는 행위’라고 믿고 실천할 때 비로소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우리가 다른 이에게 불사에 동참해달라고 선뜻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밑바탕에 ‘내가 받는 것, 부탁하는 것’이라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모연을 보시자에게 큰 공덕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찌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있겠는가. 본인이 맛본 법의 희열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할 때 남에게 권유하기가 쉽고 진심이 담길 수 있다.

나는 좋은 기회를 그분께 제공했으니 내 할 일은 다 한 것이고, 그것을 받아서 자신의 선업으로 쌓을지 말지는 그분의 인생인 것이다. 나는 다만 기회를 드릴 뿐이고 다음의 일은 그의
인연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낼 때 모연에 대한 두려움은 사그라든다. 모연 과정이 수행이라고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