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일까, 딸일까
“왜 자꾸 뒤로 힐끔 돌아봐?” “사과가 나를 부르네요. 히힛~” 내게 과일 매장은 북적대는 마트에서 휙 지나가던 매장 중 하나였는데 임신 중기부터는 출동 1순위 매장이 되었다. 특히 신맛의 과일을 싫어해 사과나 귤을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임신 이후로 배 속에서 “사과 내놔!”라고 난리를 쳐서 남편이 농장까지 찾아다니며 박스째로 사다 날라야 했다. 음, 그러고 보니 식성에 변화가 생기긴 했다. 시장이 코앞인데도 장 보러 가는 건 가물에 콩 나듯 했는데 시장 칼국수가 어찌나 당기던지 칼국수 값 3,500원만 들고 시장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말한다. “딸인가 봐!”
‘왜? 왜 딸이지? 분명 태몽은 아들이었는데…’ 꿈이야 남편이 꾼 것이지만 식성의 변화는 아이를 배고 있는 내가 겪는 것이라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재미로 보는 태아 성별 구별법’이 많이도 나와 있었다.
‘재미로 한번 봐볼까?’ 배 모양이 펑퍼짐하고 쳐지면 아들, 예쁘게 볼록하고 위로 올라붙으면 딸. 얼굴이 푸석거리고 살이 내리면 아들, 뽀얗게 피고 살이 찌면 딸. 입덧이 가볍게 넘어가고 고기, 얼큰한 찌개, 국이 생각나면 아들, 밥보다는 과일과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면 딸. 태동이
힘차고 전체적이면 아들, 배 이곳저곳 부분적으로 놀면 딸이란다.
‘나는 어땠지? 배 모양은 봐도 잘 모르겠고, 얼굴은? 그래, 얼굴은 분명 푸석거리고 핼쑥해졌지? 아들이네! 입덧은 남들에 비해 가벼웠지? 아들이네. 그런데 요즘 왜 밥은 입에도 안 대고 사과와 칼국수가 당기지? 딸인가?’ 아들로 향해 가던 확률이 식성에서 턱 막혔다. 재미로 본
태아 성별 구별법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고 심각해져 가던 때에 친정엄마가 나를 임신하셨을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약한 비위 때문인지 고기를 즐기지 않았던 친정엄마는 평소 고깃집에 가더라도 밑반찬에 밥만 드시곤 했다는데 나를 임신하고는 처음으로 고기 생각이 간절했단다. 그래서 자주, 그것도 혼자 식당에 가서 고기를 참 맛있고 배부르게 드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가게에 가끔 들렸다던 소위, 점쟁이 아주머니가 “아들이네!”라고 하셨단다. 그즈음이 태동이 한창일 때였는데 살금살금 움직이던 언니 때와는 달리 힘차게 팡팡 차는 바람에 엄마가 깜짝깜짝 놀라곤 해서 부모님은 “아들 맞네!”라며 출산 때까지 신이 났더란다. 그해 겨울, 나는 태어났고 난 사내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임신 중 고기가 당기거나 태동이 힘차다고 꼭 아들인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과일과 밀가루 음식이 당긴다고 꼭 딸인 것도 아니라는 것!
‘후유, 다행이다’라고 안심을 하려는데 문득 ‘딸이 아닌 게 왜 나에게 다행이지?’라는 생각이 들어 멈칫했다.
‘기왕이면’이라는 사다리
① 기왕이면 아들?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남편과 말없이 나와 몇 발자국 더 걷다가 서로 마주 보았다. 남편이 한껏 웃으며 말한다. “딸이네!” “네, 딸이네요… 왜 딸이죠? 왜…” 내 표정을 살피던 남편은 경주의 관광지인 보문단지에 나를 데려가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차도 사주었다. 그렇게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남편은 다시 사무실로 갔고 나 혼자 집에 있게 되었는데, 그제야 나는 이불 위에 폭삭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엄마, 나 딸 가졌대.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 왜 그럴까?” 퇴근한 남편에게도, 시부모님께도, 친구에게도 물었다. 오히려 축하만 받고 딸의 장점을 구구절절 들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울었을까? 친정엄마가 나를 임신하셨을 때의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아들 낳을 거란 기대에 난로와 담요까지 사서 병원으로 온 아버지, 나를 보고 얼마나 실망하셨는지 첫 병원식도 못 먹은 엄마를 데리고 퇴원하셨단다. 물론 나도 엄마 품에 안긴 채. 아버지는 보름 가까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셨고 엄마는 서러워서 눈이 붓도록 펑펑 우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 일이 가족모임에서 웃고 넘길 에피소드가 되었고 나는 사랑
듬뿍 받는 막내딸로 살고 있지만, 난 늘 ‘내게 딸이 생긴다면 아낌없이 사랑해줘야지’라며 다짐, 또 다짐하곤 했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밝고 건강한 아이가 오기를 서원합니다”라고 맑게 건져 올린 임신 전 우리의 첫 서원에 내 바람의 돌을 더 쌓아 올려 밝고 건강할 뿐만 아니라 기왕이면 지혜롭고 또 기왕이면 예쁘고 또 기왕이면 복되고 원만한 아이기를 원하게 되었다. ‘기왕이면’이라는 끝 간데없는 사다리는 또 ‘기왕이면 아들’로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딸이든 아들이든 많이 낳아 장성할 때까지 길러 보기나 했다면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과 장단을 알아 나름의 사정으로 딸 임신을 슬퍼했겠지만 고작 배 속 아이 몇 개월 품어봤으면서 뭘 안다고 눈물이 났을까?
이 눈물은 《상윳따 니까야》의 〈초전법륜경〉에 나오는 괴로움의 여러 가지 종류 중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求不得苦)’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들을 원했는가?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하루 이틀 사흘. 답은 바로 명예욕! 내 명예욕을 채우지 못한 서운함 때문이었다. 요즘에 누가 아들, 아들 하느냐고 말들 하지만 그래도 아들 가진 엄마로 대우받고 싶었던 삐뚤어진 내 첫 번째 욕심, 그리고 손녀 손주 구별해서 며느리를 차별할 시댁도 아니지만 시댁에 해드려야 할 숙제를 빨리 해치우고 싶었던 어리석은 내 두 번째 욕심, 고작 그거였다. 참 별거 없는 욕심에 눈물을 쏟았던 거다. 어차피 욕심이 없을 수 없다면 그래, 기왕이면 좀 멋진 욕심을 내보자!
② 기왕이면 계행(戒行)
《상윳따 니까야》의 〈원인경〉에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여인의 힘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아름다움의 힘, 재물의 힘, 친지의 힘, 아들의 힘, 계행의 힘이다. 비구들이여, 여인은 아름다움의 힘과 재물의 힘과 친지의 힘과 아들의 힘을 원인으로 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인은 계행의 힘을 원인으로 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난다.”(각묵 스님 옮김)라고 나와 있다. 여인의 힘 가운데 아들의 힘도
크지만 계를 잘 지키고 선업을 짓는 계행의 힘만 못하다.
그 계행의 힘은 세간의 자잘한 대우를 받는 것을 넘어 천상에 태어나도록 이끄는 큰 힘이다. ‘기왕이면’이라는 사다리로 아들딸 구별하는 곳으로 오르지 않고 계행을 잘 갖추는 삶으로 발심하여 올라가는 것, 멋지지 않은가.
내 눈물의 이유를 찾다가 욕심을 채우지 못한 내 서운함을 보았고 그 욕심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으며 욕심 아닌 ‘계행을 잘 갖춘 삶’이라는 바른 발심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내 마음을 관찰하고 다스리는 동안 무심했던 내 딸아이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준다. 《상윳따 니까야》의 〈증장경〉에 “여기서 믿음과 계가 증장하고 통찰지와 보시와 배움이 증장하는, 이와 같은 계행을 갖춘 청신녀들은 바로 여기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얻으리.”(각묵 스님 옮김) 경전을 덮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내 딸, ○○야~ 엄마와 함께 계행 갖추기 놀이하면서 이 세상 살아가자꾸나!”.
‘기왕이면 파랑터널!’이라는 집착을 내려놓으니 여행의 첫 순간이 떠오른다. 기차표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차를 기다리던 두 사람, 지금은 셋이 되어 여기까지 신나게 달려왔으니 어느 터널을 지나든 그저 감사한 일. 남편이 내 눈물을 닦으며 창밖을 보라고 손짓한다. 그제야 아이가 만든 풍광이 눈에 들어와 창문을 여니 저 멀리 사과나무에서 사과 향이 바람 타고 들어온다. 이제 저 사과나무 옆에 땅을 일구고 계행(戒行)나무 씨앗을 심어야겠다. 정성스레 가꾸어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 계행 열매가 열리면 우리 가정에도 계행 향 가득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