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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정원의 풀 뽑는 심리상담사 효록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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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시인) 2016년 08월 414호
효록 스님의 법명 앞엔 ‘즐거운 정원사’란 말이 붙어 있다. 스님의 명함 그 어디에도 ‘스님’
이란 말 없고 사찰 이름도 없으니, 이분은 누구신가, 이 정원사는 왜 이리 즐거운가 궁금해진다. 초록이 짙은 잔디밭에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자니 효록 스님이 화들짝 웃으며 답하신다.

“난 마음 정원에서 풀 뽑는 사람이에요.”

동국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스님은 계절 학기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참이었다. 상담심리학 중에서도 자아초월상담학을 전공한 스님은 강의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찾아오는 이들과 기꺼이 마주한다.

“저를 찾아오는 스님들, 재가자들, 학생들, 그리고 타 종교인들과도 마주 앉아 상담을 해요. 그렇게 해서 그들이 치유되면 정말 행복해요.”

스님은 출가 전에 해인사 팔만대장경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러고는 출가했는데, 스님들을 모시고 살며 이런저런 모습을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출가하고 보니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행자 생활을 하고 계를 받고 강원 생활을 하면서, 출가 이전에는 만나보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안에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불교 공부를 하면 모든 게 순화되고 정화되고 아름다워진다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그러자니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오해와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구나 싶어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동국대학교에 들어갔다. 선학과에 입학해 불교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그때 나이가 서른넷이었다. 이십 대 학생들 사이에서 공부해야 하는 만학도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그런 만학도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게 바로 집단상담이었다.

“대인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대에게 접근하는 방식부터 시작해 말하는 것과 사소한 태도와 자세까지 아주 세세한 것들을 알게 됐어요. 놀라웠죠. 승가 공동체 안에서는 그냥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미술 치료도 경험했다.

“화엄경을 보면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고 하지요. 그림을 그리면 내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요.”

스님은 학교 공부를 하면서 3년간 미술 치료 공부를 병행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을 보게 됐다. 과거의 자신을 만남으로써, 왜 지금 이런 행동을 하며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됐다. 불신과 불안 속에서 힘들어했던 자신이 이해가 됐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만나고 껴안으면서 치유가 됐다. 그걸 받침으로 성장했다.

“누구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린 시절에 처한 환경 속에서 상처를 받고 그때 미해결된 문제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무의식 속에 응어리져 있다가 어른이 된 지금도 표출되는 것이죠. ‘무의식’ 속에서 즉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실수하는 거예요.”

‘무의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타인의 말과 행동이 들여다보이고, 왜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럼으로써 상대를 미워하지 않게 됐다. 석사 과정의 방향을 고민하던 효록 스님은 불교상담학 쪽으로 흔쾌히 걸음을 옮겼고 자아초월상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효록 스님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담을 통해 많은 이들을 치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님들과 불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심리학 교육을 해서 상담사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상담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만큼 내담자를 상담해 줄 수 있기에 스님은 우선 많은 이들을 치유하고 싶다.

“스님들도 아픔이 많아요. 그런데 승복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당신의 아픈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요. 승복이란 가면 뒤로 숨어버리죠. 과거를 들춰내는 것 자체를 수행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러나 그것은 수행의 문제가 아니에요.”

대인 관계 속에서 마찰이 생기면 스님들은 그 자리를 떠난다. 선방으로 가거나 유학을 떠난다. 그 방식으로 수행하겠다는 의지이나 그것은 사실 회피에 가깝다. 집을 옮긴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전통적인 불교 수행 방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불교가 핵심적인 답은 갖고 있어요. 그런데 왜 이런 감정이 일어나고 어떻게 이것을 풀어가야 하는지 설명하는 건 서구의 심리치료가 훨씬 잘해요.”

많은 스님이 불교만 수승하다고 생각해서 심리치료를 가벼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전통 방식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데, 효록 스님은 스님들이 거기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냉장고나 세탁기나 전기 없이도 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편리하고 유용한 게 있는데 왜 외면하고 안 쓰겠어요. 현대의 심리상담이란 게 마치 그와 같이 효율적이고 편리해요.”

스님을 찾아오는 이들이 털어놓는 대부분의 고민은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이 다르고 근기가 다르다.
그런데 대부분 스님의 답은 한결같다. ‘네 탓이다, 그러니 기도해라, 절해라.’ 그리고 자기 방식대로 얘기하고 명령하거나 지시하거나 훈계한다. 상담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알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지도 안다.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불교에 심리치료의 유용한 점을 도입하면 대기 설법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우리가 안고 사는 일상적 괴로움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란다.

서양에는 불교를 바탕으로 하는 심리 치료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 치료사가 불교 공부를 하거나 수행을 통해, 자기가 익힌 것으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와 불교를 접목한 것이다. 그것이 불교심리학이다. 서양에선 이것이 생활에서 많은 부분 활용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새가 두 날개가 필요하듯이 한쪽엔 심리치료 그리고 다른 한쪽엔 불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마치 지혜와 자비라는 두 날개처럼.”

효록 스님은 심리상담 센터를 설립하고 싶다. 심리상담을 통해서 포교하고 싶다. 일반적인 포교당을 차린 다른 스님들에 비하면 시간 대비 적은 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깊게 연을 맺으며 불자가 아닌 이들도 찾아올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효록 스님은 그렇게 지내왔다.

“우선 스님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님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버려본 사람들이에요. 많은 행자를 만나보면, 출가할 때 이미 많은 상처를 갖고 있어요. 그것을 치유하고 또 그들이 그것을 통해 중생을 치유한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효록 스님은 종단 차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원이나 강원에서 이것을 커리큘럼이나 프로그램으로 활용한다면 불교가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물론 북소리도 종소리도 목탁소리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 소리를 듣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고 그에 적절한 스님의 대응이 있을 때, 내면에서 통찰하고 치유가 되지 않겠어요?”

상처를 가진 이들을 끊임없이 북돋워 스스로를 보게 하고 스스로 힘을 키워가도록, 그렇게 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게 효록 스님의 바람이다.
그것이 스님이 지향하는 불교다. 그것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