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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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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상 목사님의 하화중생(下化衆生) - 유수상 목사님 2016년 08월 414호
고귀한 인간 생명이 여러 모양으로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온갖 사회적인 현상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훼손하고 생명을 물질의 부속품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입신양명 만을 추구하는 정치가 그렇습니다. 물질 만능의 경제가 그렇습니다. 삶을 도외시한 종교가 끊임없이 인간 정신을 멍들게 합니다. 인간의 생명 경시 현상은 여러 가지 병폐를 낳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사회 현상을 직시하면서 인간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사회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종교는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그때 인간은 새로운 생명의 기쁨을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함께 등산을 자주 다녔습니다. 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 바위와 나무와 물과 새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껏 심호흡하며 내 안 전부를 깨끗이 청소하고, 대신 맑고 신선한 것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허리 꺾인 산꽃나무, 껍질이 벗겨져 버린 나무들을 보면서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정갈한 숲의 품 안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세상의 소리, 인공의 소리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런 마음이다 보니 나무나 풀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산에 서식하는 동물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토지 작가 박경리가 전하는 생명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생명의 아픔>이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원주에서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았던 자연주의적인 이력이나, 소설 <토지>에서 보여준 토지와 인생의 관계 등을 볼 때 작가의 자연존중 사상이 남다릅니다. 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21세기까지, 대한민국의 성장사를 관통하며 살았기에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이 남다릅니다. 격동의 한국사를 몸소 체험하는 동안 보았던 물질 만능주의로 생명 경시 현상에 대해서도 염려하기에, 태고적 생명의 평등사상이 지금에도 유효함을 알리고 있기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만물은 평등하다는 생각, 모든 민족은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구에 널리 퍼질 때 파괴와 전쟁, 폭력은 사라지고 평화와 행복이 존재하리라는 긴 여운을 주는 이야깁니다. 박경리 작가는 노동과 글쓰기를 통해 삶의 균형을 이루며 살았고, 밭을 일구는 노동을 통해 불평등은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이기적인 산물임을 깨쳤습니다. 애초에 자연은 대붕(상상의 큰 새)이나 쥐벼룩이나 동등한 존재였고 공평한 존재였는데 인간의 이기적인 인본주의와 휴머니즘으로 인해 자연의 불평등은 물론 인간의 불평등까지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본주의에 반한 자연의 불평등이 본래의 자연인 것처럼 변질되어 왔음에 지극히 공감하게 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은 인본주의에서 생명평등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고 생명평등주의가 가치로 자리 잡는다면 현대의 자본주의나 탐욕주의에 의한 병폐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민족의 생명 공경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옛사람들은 꽃을 꺾기보다 자연의 것을 보고 감상하는 것을 즐겼기에 꽃꽂이나 화병을 가까이하지 않은 편이었답니다. 식물을 강제로 변형시키는 분재를 하지 않았지만 꽃의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려 했고 마당 장독대 곁에 언제나 분꽃이나 봉선화, 접시꽃이 피어나는 작은 화단을 만들고 꽃 그림이나 꽃 자수, 꽃 문살, 종이꽃 등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즐겼다니 조상들의 생명존중에 새삼 숙연해집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의 바탕에는 모든 생명은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평등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이라 해서 더 소중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모든 생물의 생명은 하나같이 소중함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과학이란 이름으로 사람 이외의 생명체를 함부로 다루기 시작했고, 문명개발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마음대로 이용하거나 소유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생태환경이 파괴되고 그 영향이 곧 우리에게 닥쳐오는 현실 앞에 아연해 하고 있습니다. 생명체를 지배하거나 소유해서는 대자연의 질서와 삶의 균형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음을 인간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것을 합리화시키거나 순리라고 강변합니다. 인간의 삶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생명존중의 사고(思考) 위에 바로 서 있을 때 비로소 참다운 삶으로의 목표와 유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생명존중은 생명 중심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생명 중심은 내 생명만이 아닌 모든 생명이어야 할 것입니다. 늘 나만 특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이기주의입니다. 그것이 욕심이요, 그 욕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엔 온갖 없어도 될 악함들이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들은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이 인간에게 유익하기도 하고, 더러 해로울 수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창조의 섭리 속에서는 그것들을 수용하는 공생공존의 순리를 무시할 순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비인간화나 동물적이 되는 것도 사실은 이렇게 인간이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 자연 위에 군림하려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요.
합법적이고 조직적으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하면 그것이 능력 있는 자, 승리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법칙을 자연에도 그대로 적용 시키려는 억지를 부립니다. 거대 권력이나 자본에 의한 무차별적인 지역개발사업으로 우리의 산과 강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경시되고 갈등과 불화가 팽배한 현대인들에게 모두 평등하게 공존 상생하는 연기론적 자각과 화엄회상 평화문화를 함께 가꾸어 나가자는 의식운동이 요청됩니다. 자본이 중심이 된 세상의 발전이 오히려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하고, 인간이 생태환경체계에서 조화롭게 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동업의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의지적 노력으로 기존의 병폐를 치유하고 개선하려는 주제적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탐욕과 무지로 말미암은 위험한 질주를 막고 차분히 마음을 맑혀 우리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진지하게 가다듬을 때입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평화가 충만한 본래의 완전한 인간성 회복과 건전한 생활을 위하여 때와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어느 상황에서나 자기 마음을 안정하고, 존재와 삶의 궁극적 물음인 참 생명과 평화 구현에 대한 화두를 통해 일상생활과 종교적 삶이 하나 되는 불이선 수행에 정진하여야 합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인간은 생명이 있음으로써 행복을 비롯하여 여러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부족, 지나친 경쟁 위주의 교육 등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생명 존중을 위한 핵심적 가치들을 구현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사회를 좀 더 평화롭고 조화롭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본래 한 생명임을 인식하며, 종교와 지역을 초월하고 남녀노소 등 신분의 차이를 넘어, 모두 한마음으로 연대하여 시대적 당위와 사명인 생명평화운동에 동참하여 아름답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