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며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은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한다.
이양하의 \'나무\'
어찌 화신花信의 설레임만큼이나 경배의 산을 오르는 이의 가슴에 배어드는 희열이 없겠는가. 땀방울을 훔칠 때쯤이면 어김없이 탑과 불상들이 골짜기마다 드러나고,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사람들의 성심을 읽을 참이면 어느 덧 금오산 중턱의 상선암에 오른다. 상선암은 삼릉에서 금오산을 향해 오르는 이들에게 한 모금의 감로수를 제공하는 암자로 불자가 아니더라도 꼭 다리품을 쉬어 가는 곳이다. 암자는 해방 뒤 박배월 스님이 지었는데 그 뒤 여러 산승을 거쳐 그의 아들 박태진이 지난해까지 머물다 지금은 곽해일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난봄 이틀을 암자에서 머물며 마애불상과 상선암이 바라보이는 바위산에서 꽃샘바람 속에 화첩을 펴고 먹을 갈았던 기억이 난다. 바라볼수록 상선암 마애대불은 위엄이 넘쳐나고 조형감이 새로운 것이 두상의 양각과 옷주름의 음각선이 대비 속의 조화로서 신라인의 솜씨와 불성을 가늠하게 하였다. 남산에서도 제1경을 다툰다는 이 곳의 선경仙境은 배리벌판이 바위산 너머로 아스라이 내려다보임으로 마치 천상에 떠 있는 듯한데 그 산을 넘어가는 새 떼를 바라보며 자연 속에 머물 수 있었던 내 삶의 아름다운 시간이 문득 그립다. 사흘 동안 산중에서 떠돌다 산을 내려가려고 상선암을 다시 찾아 목을 축이는데 뜨락의 붉은 살구꽃은 그새 하얗게 번졌다. 사람이 단지 느끼지 못할 뿐 꽃이 피듯 세월 또한 이처럼 다투어 흐르는가. 진달래 향기와 솔바람 속에서 영겁의 세월과 찰나의 순간을 이처럼 절감하기도 쉽지는 않을 성싶었다. 어쨌든지 이 경주 남산의 바람은 이 뒤로도 영겁의 시간으로 흘러야 할 바람일진대 요즘에 와서 찰나의 순간으로 머물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니……. 고속전철이 어디 어떻게 더 빨리 세월을 다투어 찰나의 착각과 부끄러움으로 남으려 하는지. 시비하는 사람들 남산에 올라 상선암에서 감로수를 마시고, 봄날 진달래와 솔바람 속에 선경을 바라보며 하룻밤만 묵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