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도 악함도 생각하지 말라혜능 대사 이야기 (2)
그와 같은 일이 있고 난 다음 날이었다. 홍인 대사가 몸소 방앗간으로 와서 말하였다.
“쌀은 다 찧었느냐?”
“이미 찧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아직 키질을 못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홍인 대사는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치고 말없이 나가셨다. 혜능이 그 뜻을 알고 삼경에 오조 스님을 찾아뵙고 예배하니, 홍인 대사는 둘레를 병풍으로 가리고 금강경을 설법하였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쓸지니라” 하는 구절에 이르자 혜능은 크게 깨닫고 말씀드렸다.
“어찌 제 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겠습니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겠습니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어찌 성품이 만법(萬法)을 냄을 알았겠습니까?”
“본 성품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유익함이 없고, 제 성품을 알면 곧 이것이 대장부요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며 부처이니라.”
이 말씀과 함께 홍인 대사는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온 가사와 발우를 전하였다.
“이제 너는 육조가 되었다. 법을 잘 받들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라. 달마 대사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믿음이 없었으므로 가사와 발우를 전하여 믿음의 표시로 삼았느니라.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믿음에는 관심이 없고 가사와 발우만을 탐하니, 이후로는 전하지 말도록 하여라. 나쁜 무리가 너를 해칠지도 모른다.”
깊은 밤에 홍인 대사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육조 혜능은 강가에 이르러 남쪽으로 가는 배를 탔다. 홍인 대사가 배웅 나와 손수 노를 저어 강을 건네주려고 하자, 혜능이 말하였다.
“스님, 노는 제가 젓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앉아 계십시오.”
“아니다. 내가 너를 건네주리라.”
“아닙니다. 제가 아는 바가 없을 때는 스님께서 건네주셔야 하지만, 알고 난 지금은 제 힘으로 건너는 것이 옳습니다. \'건너다\'라는 말은 하나이오나 그 쓰임은 다른가 합니다.”
“참으로 그렇다. 앞으로 불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일어나리라. 나는 삼 년이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너는 되도록 남방으로 가거라. 그리고 때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 불법을 일으키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
혜능은 홍인 대사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계속 남쪽으로 향하여 갔다. 법을 전한 홍인 대사는 며칠이 지나도록 설법을 하지 않았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대중들이 물었다.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으신지요?”
“아니다. 다만 의발이 남쪽으로 갔을 뿐이다.”
이 말을 들은 대중들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혜능에게 전해진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고 수백 명이 쫓아갔다. 특히 이들 가운데 출가하기 전에 장군의 지위에 있었던 혜명이란 스님이 남보다 더 빠르게 혜능을 쫓아갔다. 바로 뒤까지 쫓아온 혜명을 본 혜능은 가사와 발우를 큰 바위 위에 올려놓고 말하였다.
“가사와 발우는 믿음을 표시한 것인데, 어찌 힘으로 다투려 하느냐?”
이렇게 말한 혜능은 숲으로 몸을 숨겼다. 혜명이 달려들어 가사와 발우를 가져가려고 하였으나, 가사와 발우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혜명은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어 혜능이 숨은 숲을 향하여 소리쳤다.
“행자여, 나는 법을 듣기 위하여 온 것이지 가사와 발우를 얻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닙니다.”
혜능이 숲에서 나오자, 혜명은 예배하며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그대가 이미 법을 위하여 왔다면, 모든 번뇌와 망상을 다 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내 그대를 위하여 설 하니라. 착함도 생각하지 않고 악함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이러한 때, 어떤 것이 그대의 참된 면목인고?”
혜명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환희에 넘쳐 말하였다.
“제가 그동안 오조 문하에 있었으나 실로 제 본래 성품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가르침을 받으니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느껴 아는 것과 같나이다. 행자께서는 이제 저의 스승이십니다.”
그 뒤 혜능은 조계산 보림사(寶林寺)를 개원하고, 온 중국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다. 그리하여 중국의 선종은 육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크게 꽃피게 되었다. 혜능 대사가 도를 깨우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이야기는 선(禪)의 골수를 드러내 보이는 이야기로, 구도자의 기상과 하심(下心)과 인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