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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신명 나는 국악인 남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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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People - 최현태(울산mbc 전 아나운서 2016년 07월 413호
TV에서 만나온 두루마기 차림의 남상일이 아니었다. 남원의 서남대학교 강의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온 그는 하얀색 셔츠와 스니커즈가 단정한 젊은 남자였다. 무대 밖의 남상일이다. 원하지 않아도 사방에서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들어오는 가요들 틈에서 국악계의 아이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가 2016년 ‘불자대상’을 수상했다. 그가 불자대상을 받음으로 인해 불자임을 알았다는 주변인도 있기에 그와 부처님의 인연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죠. 방학 때 소리 공부하러 산에 갔는데 인근에 완주 위봉사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절집을 드나들었고 어느 날 스님께서 공양 시간에 초대를 하셨어요. 이후로 예불에 동참하는데 스님들의 염불 소리와 가사, 장삼에 꽂혔지요. 그 인연을 시작으로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으로부터 일륜(一輪)이라는 법명을 받고 정식 불자가 되었습니다. 모나지 말고 둥근 수레바퀴처럼 살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독경 소리 가득한 새벽 법당처럼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주는 장소도 쉽지 않으리. 그의 팔뚝에 연비 자국이 오롯하다. 지난 사월 초파일 남상일은 조계사에서 불자대상을 받고 그 자리에서 소리공연을 했다. 즐거운 북적거림이 가득한 부처님 오신 날, 그는 청계사와 길상사까지 돌며 산사음악회를 했으니 삼사순례를 한 셈이다.

“제가 사찰에서의 공연이 참 많습니다. 공연장이 사찰이니 저로서는 엄청나게 복 받은 거지요. 다른 이들은 일부러 짬 내서 부처님 뵈러 가지만 저는 일도 하고 참배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많은 보살님이 기뻐하고 열광해주시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사실 산사음악회에서 소리하는 것은 저에게 힐링이에요. 특히나 어머님이 저와 함께 절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세요.”

사실 그의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다가 불교로 개종한 케이스다. 그것도 해인사와 인연이라니 흥미롭다.

“2008년 해인사 비로자나데이 페스티벌에 초대되었어요. 아버님의 병이 위중할 때라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가서 공연이 끝난 다음 청백당에 하루를 묵었습니다. 식사를 통 못하시던 아버님이 해인사에서는 공양을 맛나게 드시고 새벽 예불까지 보셨어요. 그리고 일주일 만에 세상 뜨셨는데 어머니를 설득해서 49재를 모셨습니다. 1재, 2재 그리고 마지막 7재까지 어머니는 아마타불 사불을 하시고 저는 금강경 사경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을 보내고 어머니는 불법에 귀의하신 거지요. 저로서는 잊지 못할 사찰을 꼽으라면 당연히 해인사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아들이 불자가 되고 부처님을 모시고 싶다는 청을 기꺼이 들어준 어머니의 넉넉한 품을 말하는 그의 마음 또한 푸근하다. 국악계의 싸이라 불리며 국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그의 소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태어나서 제가 그렇게 울었대요. 병원에 데려가고 무당한테도 물어보고, 온갖 처방을 써봤지만 무효였대요. 그런데 어느 날 조상현 명창 소리에 울음을 뚝 그치더랍니다. 세 살 때부터 조 명창의 소리를 듣고 따라 하기를 반복했고, 이를 녹음한 테이프를 아버님이 선생님께 보내면서 공부가 시작된 거지요. 어찌 보면 소리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봐야죠.”
전주예고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한 그의 각종 수상경력은 화려하다. 1988년 제1회 전국어린이판소리경연대회 장원을 시작으로 열 줄도 넘으니 생략해야 할 것 같다. 국립창극단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한 남상일은 창극 ‘춘향’의 이몽룡 역, ‘청’의 심봉사 역, ‘적벽’의 조조 역 등 남자 소리꾼으로는 드물게 전통 판소리 5바탕 창극의 주역으로써 활동했고, 지금은 서남대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우리 소리에 바친 시간이 보배로웠다. 국악에 입문한 젊은 친구들에게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선 실력이죠. 실력을 쌓은 다음 나는 프로고, 예술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다만 자만심은 경계해야겠지요. 그다음은 긴장하지 말고 즐기라고 하는데요, 예술은 기술과 달라서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목소리를 물려받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난 데다 시절 인연이 있어 지금의 제가 있는 거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명창 안숙선 선생께 사사한 인연으로 최근에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사제간의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꿈꾼다.

“염불 CD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어요. 대학원에서 어장 동희 스님께 범패를 배웠어요. 무용과 찾아가서 나비춤과 바라춤도 배웠던 걸 보면 작법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외워온 천수경 반야심경과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에 국악기 살짝 입혀 녹음하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하지 않았던 답변이다. 언젠가 절집에 울려 퍼질 그의 염불앨범이 기다려진다. 불자대상 수상자에게 주어진 상금 1,000만 원 전액을 기부한 남상일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는 불법은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제가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급한 일이 없었어요. 굉장히 낙천적이에요. 지금까지 크게 어려운 일이야 없었지만 크고 작은 고비 때마다 마음을 다스린 것이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제게 온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고 그것에 대한 결과는 겸허히 받습니다.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은 없습디다.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요. 그러니 또 감사할 일이 다가오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건넬 때 그의 눈빛은 무재칠시(無財七施) 가운데 안시(眼施 온화한 눈길이며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면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하는 것)를 닮아 있었다. 무대에서 소리하며 객석으로 보내는 눈빛도 그러하리. 우리 시대의 광대 소리꾼 남상일은 불교방송을 비롯한 각종 TV와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까지 섭렵하고 있다. 사랑 받는 젊은 국악인으로 사명감과 책임감도 있을 터이다.

“TV 출연은 조심스럽습니다. 공연은 나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모이기 때문에 무슨 행동을 해도 호응이 좋습니다. 하지만 방송은 다르죠. 가끔 의도하지 않은 것이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으니 절제가 참 중요하더군요. 하지만 우리의 전통소리를 알릴 소중한 기회이니 기쁘고 감사히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악인 남상일은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주문에 ‘신명!’이라고 정리해주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소리도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그리고 ‘흥부가’ 중에서 ‘박 타는 대목’ 같은 신나고 즐거운 소리다. 긍정의 유전자 가득한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부모님과 일, 그리고 사람들이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있고, 소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그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인연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그의 설명에 무릎을 치고 싶다. 어쩌면 세상 만물의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거 아닐까. 긴 이야기 끝에 그가 미소 짓는다. 그 미소 속 에너지가 남상일을 신명 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