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노크해보다
“여보, 뭔가 느껴졌어!” 수시로 내 배에 귀를 대가며 온갖 배 속 소리를 탐구하던 남편의 말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음, 그건 아기가 한 게 아니라 제 가스예요. 헤헤~” 커진 배가 장을 압박하다 보니 자주 꾸르륵거렸다. 이 ‘꾸르륵’이 아이의 움직임이기를 매번 바라던 남편이 어느 날, “여보, 뭔가 또 꿀~렁했어.” “저도 느꼈어요!” 이번엔 가스도, 침 삼킨 것도 아니다. 태동이 시작된 걸까? 태명을 지은 후부터는 마치 배에 아이 눈코입이라도 달린 것처럼 배에 노크하며 말을 걸기 시작한다.
“똑똑, ○○야~ 아빠야. (잠시 후) 어? 방금 움직였던 거 ○○였어? 아닌가?” 그렇게 남편의 활발한 배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내 배에 귀를 갖다 댈 수 없는 나는 배 느낌에 집중해보았다. 그런데 영 소식이 없다.
“뭔가 미끄러지는 것 같거나 뽀글뽀글 물방울이 올라오는 것 같음.” 책에서 말하는 첫 태동 느낌이다. 모르고 지나가지 않도록 메모지에 써서 냉장고 문에 붙였다. 수시로 해보는 인터넷 검색도 ‘태동 느낌’이고, 몇 번이고 돌려보기를 하는 다큐멘터리도 임신 태동 부분이다. 심지어 ‘대승불교의 태동’, ‘봄의 태동’ 등 책이나 뉴스에 나오는 태동이란 단어에도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쫑긋해졌다. 배에 손을 대고 “○○야~” 부르며 아이의 세상에 노크해보지만 신나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임신 6개월째 되던 어느 날,
부쩍 심해진 요통으로 잠시 누워 호흡하는데 뭔가가 배 속에서 ‘꿀~렁’ 한다. 긴가민가하고 조용히 기다렸더니 다시 ‘꿀~렁’한다. 수없이 두드린 노크에 이제야 화답하듯 인기척을 내주는 아이. 드디어 태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팡팡, 노크해오다
① 관찰하기: ‘네가 노크할 때 난 뭘 했지?’
“여보, 오늘은 ○○와 자주 만났어?” “오늘 강의할 때 미동도 없던 걸요. 강의 때는 매번 그러네요.” “산소가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 당신은 말을 빨리하고 숨을 잘 안 쉰다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다음 강의 때는 호흡하면서 말을 천천히 했더니 아이가 노는 게 느껴졌다. 아이의 침묵도 “엄마, 나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 일
이후로 ‘관찰하기’를 시작했다. 깨어있으면서 태동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살피는 것이다. 태동 요것, 몸 관찰 수행하기 딱 좋은 거로구나! 남산만 한 배로 108배 절 수행을 하겠는가, 호흡도 가쁜데 염불 수행을 하겠는가. ‘관찰하기’는 지금 내 몸과 마음의 상태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수행거리 중 최고였다.
관찰하기를 시작한 다음 날, 아프다고 느낄 정도로 아이가 심하게 꿈틀대기에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살피니 강의 준비한답시고 자판 두드리는 손가락 빼고는 몇 시간 째 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나 불편해요. 기지개 좀 켜게 해주세요”라는 아이의 신호였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다 되어 내가 허기질 때쯤 아이의 움직임도 빨라졌는데 “나 배고파요”라는 신호이다. 그러다가 식사 시간을 넘겨 배가 비어있을 때는 아이도 조용하다. 살기 위해 에너지를 아끼려는지 미동도 없는 아이에게 혼잣말을 해본다. ‘너도 사람이구나…’
② 지침 만들기: ‘엄마·아빠가 이렇게 할게.’
이렇게 평소와 다른 태동 때는 ‘뭔가 불편해서 노크했구나’라며 내 상태를 살펴봤으니 이제 행동지침을 만들어보자. ㉠엄마가 말을 빨리해서 숨이 차니까 힘들었구나. 말할 때 호흡을 고르고 말할게. ㉡장시간 한 자세로 있어서 불편했구나. 30분마다 틈틈이 자세를 바꿀게. ㉢공복 때 너도 배고팠구나. 항상 제때에 식사할게. 아빠는 우리의 간식거리를 늘 사다 주실 거야. ㉣식사 시간을 넘겨 엄마가 허기지니까 너도 축 늘어져서 조용했구나. 제때에 식사할 수 있도록 밥과 국은 미리 해놓을게. ㉤자다가 자세를 급하게 바꿔서 놀랬구나. 자세를 바꿀 땐 아빠 도움을 받아 천천히 움직일게.
그리고 매 태동 때 공통 지침은 ‘호흡하기’이다. 배가 불러올수록 태동도 심해지고 호흡도 가빠지기 때문에 이 들숨 날숨 호흡 때마다 《맛지마 니까야》의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 경〉의 내용을 새긴다.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대림 스님 옮김)
이렇게 ‘태동 한 번에 들숨 날숨으로 마음 챙기기’를 잊지 않고 해서 아이와도 소통하고 수행도 놓치지 말자.
③ 모르는 것 물을 곳 알아두기
아이의 노크가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남편이 한참 아이와 만나고 있는데 배 속에서 뭔가 콩, 콩, 콩 뛰기 시작했다. “어, 이건 뭐지?” “심장박동 같기도 하고 발차기 같기도 하고요.” “심장박동이라기엔 느리고 발차기라기엔 너무 규칙적인데.” 잔뜩 겁먹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 묘한 진동은 바로 아이의 딸꾹질이었다. 폐호흡 연습 중이란다. “배 속 아이도 딸꾹질한다고?” 우리는 키득거리며 다시 배에 집중해본다. “정말 ‘딸꾹딸꾹’하는 거 같아! 우리 아기,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네?”
하마터면 잔뜩 겁먹고 밤샐 뻔했는데 경험자들의 기록에서 답을 찾았다. 임신출산 관련 사이트에는 당장 물을 데가 없어 마음 급한 임산부들의 절박한 질문과 이미 같은 걸 겪었던 아이 엄마들의 정보, 공감, 위로, 경험담 등이 구구절절 댓글로 달려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심각한 문제인지 흔히들 겪는 일반적인 것인지의 판단이 가능할 정도다. 모를 땐 물어야 하고, 바로바로 물을 곳도 있어야 한다. 그게 응급의료상담 119이든, 친정엄마든,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든 말이다. 《숫따니빠따》에도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배움이 깊은 사람에게서 듣지도 않는다면, 스스로도 모르고 의문도 풀 수 없다. 그가 어찌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게송 320, 법정 스님 옮김)라고 나와 있다. 새로운 것 투성이인 임신 여행, 모르는 것을 24시간 언제든 물을 수 있는 곳을 알아두자.
④ 배 속 아이와 추억 만들기
“방금 요렇게 움직인 거 ○○이, 너 맞지? 엄마 배 속에서 잘 놀았어? 발차기도 많이 하고? 아빠 목소리 들려? 아빠는 오늘 뭐 했냐면…” 아침저녁으로 내 배는 방문객 맞이로 바쁘다. 방문객은 딱 한 사람, 남편이다. 아이가 배 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지 내 명치도 차고 오른쪽 배도 꾹 누르고 배꼽 주변에서 놀기도 한다. 신이 난 남편은 매일 밤 “나는 부처님을 사랑해~”라고 시작되는 찬불 동요를 “나는 ○○를 사랑해~”로 가사를 바꾸어 불러준다. 그러다 태동이라도 있으면 “아빠 목소리 기억하는구나!”라며 즐거워한다. 아이가 그냥 움직였는지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였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 하지만 ‘내 목소리를 기억해줬으면, 내 노래를 기억해줬으면…’하는 우리의 바람은 아이의 마음자리에 언젠가는 가 닿을 것이고 우리의 마음 밭에도 추억의 씨앗으로 심어질 것이다.
기차가 철컥철컥 롤러코스터 레일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거죠? 짜릿하겠다!” “당신 들숨 날숨 하는 거 잊지 마! 힘들 땐 꼭 호흡해야 해.” 살짝살짝 꿀렁대는 구간도 넘고 예상 못 했던 딸꾹 구간도 지나 이제 롤러코스터 꼭대기 구간! 하늘 향해 뻗어있던 레일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순간, 기차는 공기를 세차게 가로지르며 360도로 쌩쌩 돌아간다. ‘길게 들이쉰다. 길게 내쉰다. 후~후~’하고 호흡을 마음에 새기니 기차는 다시 편안한 빛 길로 들어왔다. 엄마의 숨으로 빛 길이 열렸고 아빠의 노래로 빛 길이 춤춘다. 이렇게 기차는 종착역까지 이어진 태동길을 꿀렁꿀렁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