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는 모습이 앳되나 걸음도 말씨도 단아한 고우 스님. 다음 달에 스님은 종교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난다. 그 작은 걸음을 저 큰 대륙에 내디뎌 길을 활짝 열겠단다. 스님은 올해 초 강원을 졸업하고 어디로 걸음을 옮길지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학부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제가 스님이지만 목적은 불교가 아니거든요.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의 길을 찾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요.”
불교에만 몰입되어 편파적인 생각을 하거나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고우 스님의 중심 생각에서 멀어지는 것. 그래서 스님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폭넓은 공부를 하고 싶다.
“내공을 키워야 해요. 일단은 공부를 많이 하고 싶고 그 과정의 시작이 유학이에요. 도전하고 싶어요.”
유학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른 스님들도 고우 스님에게 힘을 주었다. 불교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해라, 널 믿으니 너도 너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그 든든한 믿음이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내 주었다. 고우 스님이 출가할 때 속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고우 스님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출가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 파티 속에서 웃으며 출가했다. 스님에게 있어 출가는 이별도 슬픔도 아쉬움도 아니었다. 큰 공부를 하러 떠나는 한 소녀의 환희에 찬 첫걸음이었다. 모두가 응원해 주었고 가장 큰 힘을 줬던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진정한 행복을 찾고 세상에 회향하라고, 자유의 길을 걸으라고.”
부모님은 독실한 불자였고 그래서 고우 스님은 어려서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매주 일요일 법회에 나갔다. 평일엔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주말이면 절에서 위안을 받았다.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가치관을 얻게 된 것도 어린이 법회에서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다.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할 때 어머니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용해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랬더니 굉장히 평화적인 결론이 나더라고요. 불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교리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부처님의 생애를 읽게 됐는데 가슴 속에 확 다가왔어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다가 낯선 이들이 있는 낯선 곳에 가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그 환경에서 열심히 살다 보니 법고를 치는 것도 염불하는 것도 마치 전생에 했던 일인 것만 같고 둘러보니 전생에 머물던 곳만 같았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최근에 속가 어머니께 들은 얘기인데, 뱃속에 저를 가지셨을 때 이 아이가 출가했으면 좋겠다고 발원을 하셨대요. 놀랍고 감사했어요.”
남겨두고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는지 여쭈니 스님은 맑은 얼굴로 답한다. 어려서부터 항상함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런 감정은 없었다고. 다만 혹시라도 마음에 걸림이 생길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출가해야겠다며 걸음을 조금 재촉했다고. 아직도 12월의 그날이 생생하다고.
“출가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면 할수록 이만한 공부가 없는 것 같아요.”
내원사에서 행자 생활을 했다. 그때가 아니면 전통 사찰 생활을 못 해볼 것 같아서 은사 스님께 청했던 이유다. 빨래나 청소는 물론 과일도 한 번 깎아본 적 없는 고우 스님에게 있어선 모든 게 어렵고 힘겨웠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달이 뜨면 그렇게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게 주체가 안 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른 스님을 찾아가 말씀드리니 마당으로 나와 보라고 하셨다. 밤하늘에 별만 가득한 캄캄한 절 마당에서 그 어른 스님은 어린 고우 스님의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주셨다. 사회 경험이 없던 스님에게 있어 행자 생활은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단다.
행자 생활을 마치고는 청암사 승가대학에 들어갔다. 도시에서 자랐기에 일반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강원에 들어가면 전통이라는 틀에 갇히지는 않을까, 넓은 사고를 하지 못하고 고집스러워지지는 않을까, 초심과는 다르게 안주하는 것은 아닐까, 작은 그릇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은사 스님께선 일반 대학에선 언제든 공부할 수 있으니 오히려 초심일 때 전통 강원에서 공부하길 원하셨다. 그렇게 강원에서 공부하며 모든 건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사회에선 멋있고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지만 강원에서 그럴 수가 없어요.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니 가면이 벗겨지는 거죠. 그러면서 화를 내는 나도 속이 좁은 나도 보게 돼요.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 굉장히 커져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고 공부죠.”
대중과 화합하는 법도 배웠다. 강원에 있으면 스님들이 예민해져서 서로 부딪치곤 하는데, 그 안에서 서로가 깎였다. 탁마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 강원에 갈 땐 무얼 공부하고 무얼 성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거 다 지워버렸어요.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저 대중 속에서 뚜벅뚜벅 걷는 그 자체가 공부더라고요.”
강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종단에서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조계종 학인 염불 시연 대회’를 열었다. 고우 스님은 ‘2600년 전 부처님과 21세기 우리들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염불을 창작했다. 부처님의 말씀은 전통 염불로, 현시대 우리의 대사는 랩으로 가사를 쓰고 목탁, 북, 징으로 리듬을 만들어 염불했고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외국어 스피치 대회’가 열렸는데, 다른 스님들은 외국어로 법문하는 게 전부였다. 고우 스님은 쇼핑호스트가 되어 ‘비타민 H3’를 판매하는 스피치를 했다. ‘비타민 H3’는 힐링(Healing), 호프(Hope), 해피니스(Happiness)를 조합한 알약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스님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저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소통하고 싶어요. 수행이 어렵고 멀리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무모해 보일지 몰라도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간다는 스님에게 주위의 걱정 어린 말들도 많다. 하지만 발원하고 순수하게 매달려 열정을 다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수행자로서 중심 잘 잡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뿐이에요. 이제 시작입니다.”
고우 스님의 바람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그 방법을 모색하고 나누고 실천하는 것, 열심히 공부해서 그것을 돕는 것. 그것이 고우 스님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일이다.
“큰마음 그릇을 만들고 싶어요. 깨지면 붙이고 꿰매고 또 조금씩 더 늘리는 과정이에요. 수행을 통해 큰 그릇이 되고 싶고, 그 그릇으로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요.”
고우 스님이 출가할 때 어린이 법회의 법사 스님께서 편지 한 장을 주셨단다.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다. ‘고우 스님의 가사 자락이 온 우주를 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