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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길,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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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당 바람결 - 영덕 1996년 03월 169호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길이 있고 길마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지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길은 흙길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흙빛이 곱고 끝이 보이지 않는 굽어진 길을 보면, 차에서 내려서 걸어보고 싶다. 바쁜 일로 그냥 지나치게 되면 아쉬워서 다시 한번 와야지 하면 그 곳 이름을 마음에 담아 두고는 한다. 언젠가 기차를 타고 가다 경기도 근처 어느 곳에서 키 큰 미루나무 가 서 있는 둑길을 보았다. 한편으로 물을 거느리고 한편으로는 구불어진 논두렁을 낀 그 길은 마주 보이는 산기슭으로 살짝 숨어 있었다. 특별한 볼일이 없어 다시 가보지 못하였지만 늦가을 해거름 무렵 아직 남아 있는 몇 개의 앞사귀를 흔들며 서 있는 나무와 유난히 하얗게 보이던 그 길의 영상이 여운을 남긴다.
평평하게 난 곧은 길보다는 모롱이가 있는 길이 좋다. 숨은 듯 돌아서면 다시 이어지는 길은 아무리 먼길이라도 지루하지 않다. 공부하러 도회지로 나가는 아들을 배웅하며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어느 어머니의 모습이 보일 것 같고, 앞산 모롱이를 돌아 기다리는 사람이 올 것 같아 온종일 일손을 잡지 못하고 먼 눈길을 보내는 산골 처녀를 만날 것도 같고, 막다른 구비를 쓱 돌아서면 낯익은 얼굴이 네게로 걸어 올 것도 같고…, 희로애락에 흔들리며 사는 평범한 삶의 모습들이 그 길 위에 어려 있기에 나는 모퉁이 진 길이 좋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이 넓고 꽃나무가 많았는데 봄이면 촉촉한 흙을 밀치고 뾰족히 고개를 내미는 화초와 나무의 꽃눈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늘 나의 관심을 끌던 것은 흙의 향기와 빛깔이었다. 흙빛은 늘 같아 보이지만 철마다 달랐다. 봄 흙은 물기를 흠뻑 머금고 곰삭여진 거름들이 풋풋한 흙내음으로 피어오르고, 어떠한 씨를 뿌려도 충분히 키워낼 수 있는 땅심(地氣)을 품고 있었다. 해마다 할아버지께서는 땅이 풀리기 전 쇠망치를 들고 마당을 고르셨다. 긴 겨울을 나며 튀어나온 돌들을 땅속 깊이 다져 넣고 손수 흙을 져다 마당을 돋구며 무너진 화단 뚝을 세웠다. 우리 집 마당은 둥글고 아주 평평하였고 흙색이 고왔다. 가을걷이를 염두에 두고 낱알에 돌지 않도록 하려는 농부의 첫 농사일이었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지순한 자연인을 보았고 집안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여름날 보얗게 마르고 다져진 마당을 보면서 일없이 대빗자루를 찾아 비질을 하고는 하였다. 보드라운 흙 위에 가지런히 쓸린 자국을 돌아보면 슬몃 웃음이 피었다. 고요한 달밤에 대그림자 빈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는다는 선시禪詩를 만난 것은 훨씬 더 자란 뒤지만, 그 때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이러한 고요가 자라고 있었음을 뒷날 알았다. 소나기가 지나간 날에는 울 밑에 나뭇가지를 주어 흙 위에 낙서를 하였다. 좋아하는 친구 이름도 써 보고, 이 다음에 되고 싶은 모습도 그려보고, 시도 써 보고……. 지금도 내가 유난히 흙에 애착을 갖는 것은 어린 시절과 기억과 뿌린 만큼 거둔다는 흙의 진실이 향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몇몇 산길과 들길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흙길이지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보물이 모두 담겨져 있다. 그 길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보았고 밤길을 가도 발에 걸리는 돌멩이가 어디쯤 있는지 안다. 봄아지랑이 속에 감추어진 진흙 구덩이를 알고 제비꽃과 노란 애기똥풀이 어디에 제일 많이 피는지도 안다. 한여름 무성한 생명의 소리와 안개비 오는 날 산비탈에서 두런거리던 파란 달개비꽃 무덤을 알고 상수리 나무 밑에 숨겨진 샘물도 안다. 푸른 뱀(靑蛇)이 껍질을 벗는 바위굴과 팔색조가 깃들어 사는 참나무도 아는데 마음이 울적할 때나 공부가 잘 안 될 때 고무신을 찾아 신고 훌쩍 산길로 내닫는다. 말 없이도 교감이 되는 그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맑게 개여 있고 하늘이 푸른 날에는 노래도 곧잘 부른다. 그 흙길도 지금쯤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나는 바람결에 낯이 익다는 듯 살갑게 흔들려 오던 산죽 잎새에 오늘은 하얗게 눈이 앉았다. 희고 푸른 것의 순결한 조화가 강렬하게 밀려오는 순간이다. 늦은 오후 소나무 숲 속의 눈 내리는 적막을 아는가. 소리는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점점이 나무하는 흰 꽃잎 속으로 돌개바람같이 빨려드는 고요. 무엇이 살아 있고, 무엇이 죽어 있는가. 모두 살아 있고 모두 죽어 있는 이 지점. 하얗게 눈 내리는 천지를 안고 산길을 간다. 더 많은 눈이 쌓여도 길을 잃지 않을 만큼에서 발길을 돌리지만 백척간두진일보의 그 벼랑 끝으로 사정없이 자신을 후려쳐 내몰고 싶은 것은 아직 살아 있고 그리고 내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역동적인 자세로 본분새의 중심축을 단단히 거머쥐고 한바탕 주기 살기의 겨루기를 치르지 않고 선 풀리지 않을 속이다. 출가는 도피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고 하였다. 대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중생의 몸으로 부처가 되겠다는 착상부터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 길에 그 이상의 무엇이 어려움이 될 수 있겠는가. 자유를 얻는 데는 무수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내 대신 정신의 자유를 찾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 떠나는 내면의 길이기에 사무쳐오는 고독은 철저하게 혼자 설 수 있을 때만이 승가 속에서 더불어 살 수 있으리라.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여야 하리라 부처도, 조사도.

티끌 세상을 벗어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니 신명을 바쳐서 한바탕 수행 정진하라 한번 찬기운이 뼈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