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다 이번 호에 소개할 곳은 스리랑카 사르보다야 불교공동체이다. 내가 속한 곳의 사찰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부대중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다.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함께 살면서 스님들은 법을 전해주고 불자들은 삼보에 귀의하며 삼보를 옹호하는 삶을 사는 마을, 도움이 필요한 노스님을 준비된 재가불자(포교사나 노인요양보호사)가 일대일로 돌보는 마을, 함께 일하고 수행하고 공양하는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마을을 꿈꿨다.
이제 가을이 되면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함께 살게 될 행복한 마을 조성 공사가 시작된다. 이러한 불사를 앞둔 터라 이번 탐방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리가 꿈꾸어왔던 사부대중공동체의 모습이 이번 여정에서 그대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일행을 만난 건 인천공항에서였다. 70대 노스님부터 20대의 젊은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했으며 이들은 모녀지간, 모자지간, 불법 인연 등으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자마자 인솔자인 《해인》 편집국장 은산 스님께서 불자님 두 분(이분들은 포교사이다)에게 노스님을 부탁하셨고, 그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탐방에 함께한 인연들도 현의식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이상의 인연으로 모인 듯한 느낌이었다. 시작부터 뭔지 모를 감동과 설렘이 일어났다.
늦은 밤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 콜롬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이다. 스리랑카는 인도 남부에 인접한 인도양에 떠 있는 섬이다. 부처님이 세 번 다녀가셨다는 곳이고 초기불교 유적지와 부처님 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콜롬보 시내 호텔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난 후 끝없이 펼쳐진 인도양을 잠시 구경하며 밤새 달려온 비행의 여독을 풀었다. 우리의 일행을 반겨주는지 하늘엔 무지개까지 떴다.
첫날 일정은 콜롬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모로투와에 위치한 사르보다야 운동 본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사르보다야 본부에는 일요일임에도 우리를 안내하러 국제부 디렉터인 반둘라 씨가 나와 계셨다. 본부 안의 여기저기에 구호물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얼마 전 스리랑카에 내린 폭우로 산사태가 크게 발생하여 많은 이재민이 생겼다. 이들을 돕기 위해 모은 물품을 분류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국제본부 미팅룸에서 사르보다야 운동의 창시자인 아리 박사님을 만났다. 백발의 박사님은 연로하심에도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내주셨다. A.T. 아리야라트네 박사님은 불교 운동가이자 지역주의 운동가다. 막사이사이상, 간디평화상, 험프리상 등 세계적인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스리랑카의 가난과 민족분규, 종교분쟁, 개발과 환경보존, 전통의 회복과 자치능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 주도의 개발운동체인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운동을 펼치고 계신다.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사람의 깨달음’을 뜻한다. 이 운동은 불교와 간디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발전된 운동이다. 아리야 박사님이 콜롬보의 불교대학인 나란다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1958년, 학생들과 함께 슈라마다나 캠프를 만들어 가난한 마을을 도우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목표는 ‘굶주림 없고 빈부 격차 없는 평등한 공동체’이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유치원 교육, 평화, 성 이슈, 종교, 마을금고, 환경보호 프로젝트와 같은 광범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현재 스리랑카 농촌에는 약 30,000여 개의 마을이 있으며, 그 가운데 약 15,000여 마을이 이 사르보다야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는 현재 NGO(비정부 기구)로 법인 등록되어 있으며 2015년 기준으로 하여 국내에 26개의 지부와 296개의 지역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매년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사르보다야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반둘라 씨의 환영 인사 후 우리는 사르보다야의 방식대로 2분간 자비 명상을 했다. 이어 해인사 편집국장 스님께서 “물질문명이 발달했지만 많은 문제가 있다. 이 문제들의 해결 방법을 불교적 관점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 당시에도 그러했듯 사부대중공동체가 답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시스템이 잘 실현되고 있는 모범 사례를 찾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라고 방문 이유를 설명하셨다.
우리의 방문 목적을 들으신 후 아리 박사님은 “사르보다야 운동은 자발적, 비정부적, 비영리, 비종파적, 비정치적 개발 운동이다. 즉 불교인이 아니어도 참가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우리의 시작은 부처님 말씀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조그만 곤충, 동물, 새들을 도와주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셨다. 덧붙여 “사르보다야 운동에서처럼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나는 모든 것을 여기 사르보다야에 내놓았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사르보다야 마을 사람들이 잘사는 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다. 지금 세상이 물질문명화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집착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한계를 긋는 자제력이 필요하다.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수행을 해야 한다. 불자는 탐욕, 진심, 어리석은 마음을 뛰어넘기 위해서 다른 이를 돕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지난 60여 년 동안 스리랑카 마을의 3분의 1이 참여하는 공동체 운동으로 성장하였다. 이미 서구에서 20여 년 전부터 주목을 받은 이 운동의 실천 덕목은 불교의 ‘팔정도’이다. 팔정도를 통해 바른 직업을 갖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갈등을 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팔정도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자비 명상을 한다. 사르보다야 운동 중 하나로 자비 명상 프로젝트가 있다. 자비 명상은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나중에는 10만 명까지 모여 집단 자비 명상을 하게 됐다. 1983년부터 2009년까지 30년 동안 이어진 스리랑카 내전을 종결시킨 것도 집단 자비 명상의 결과라고 믿는다.
처음엔 적었던 그룹이 어떻게 커다란 규모로 증가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박사님께서는 “명상을 통해 탐, 진, 치가 사라지고, 이처럼 좋은 것이 쌓여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명상 하면 그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집단 자비 명상하는 날에는 군인들이 살생을 안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즉석에서 명상 지도를 해주셨다.
스리랑카 수재로 인해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내주신 아리 박사님께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또, 지구촌 가족의 마음으로 스리랑카 이재민을 돕기 위한 성금을 사르보다야 본부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