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멈춰도 견딜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복지는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웃이 이웃을 돌보고 살피는 마을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가능하다. 마을의 완성이야말로 바로 복지의 궁극적 목표여야 한다. 국가를 보라. 절망이 끝이 없다. 도처에서 신음이 들린다. 정치권력을 통해 국가의 희망을 찾고자 하나, 미로처럼 얽힌 고차방정식을 풀 실력이 없다. 씨 뿌리는 노동 없이 풍요로운 수확만을 기대해온 후과다. 풀뿌리의 힘이 굳건하지 않고서야 어찌 위임과 대리의 정치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절망은 불가항력의 현실이나 그래도 어쩌랴. 다시 아래로 깊이 들어가 바닥을 지켜야 한다. 국가가 아닌 마을에서 자율, 자립, 자치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공동체. 그건 모든 마을주의자들의 오래된 이상이다. 한 사회의 성장과 성숙은 국가, 마을, 개인의 조화로운 관계 구축에서 비롯된다. ‘국가의 진보’, ‘마을의 완성’, ‘개인의 존엄’을 위한 강위원 대표가 섬기는 ‘여민동락 공동체(전남 영광군 묘량면 소재)’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은 더불어 여(與), 백성 민(民), 같을 동(同), 즐거울 락(樂)으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로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지역주민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정신을 담아 ‘여민동락 공동체’라 하였습니다. ‘여민동락 공동체’는 공동체의 한국적 모델 연구와 마을복지, 마을공동체의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농촌을 새롭게 살리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지역민들과 한 몸을 이루어 지역 일체형 공동체를 실천하는 중입니다.
여민동락 공동체는 처음부터 협동조합의 원칙과 취지에 맞게 설립됐고, 지금도 그 원칙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노동과 생산을 통하지 않은 외부의 기부와 후원은 그 십 분의 일을 쪼개, 더 가난하고 후미진 지역과 단체, 시설에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둘째, 국가의 보조금과 인건비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국가의 보조금과 인건비는 재정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을 완벽하게 이룬 뒤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규모의 감당 가능한 자금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셋째, 아이들을 도시로 유학 보내지 않습니다. 마을공동체 활동의 기본은 지역에 ‘사는’ 것이고, 동시에 지역사회의 작은 시골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교육과 문화를 살려야 온전히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넷째, 농촌주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밥을 먹으며 농부로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마을활동가 혹은 지역운동가라 자칭하면서 주민들 속에서 ‘헌신’만 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마을구성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농촌 르네상스를 이루어 땅을 지킨 농민들이 도시로 유배당하지 않고도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농촌, 복지와 교육을 충분히 누릴 수 있고 경제와 문화가 꽃피는 농촌의 가장자리에 ‘여민동락 공동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한 마을 공동체는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과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마을을 지키고 살리는 길은 끊어지고 단절된 관계를 이어주어 관계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 포용과 통합의 마을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주민이 주체적으로 건강한 마을을 만들고, 서로의 자원을 나누며 상호부조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생계를 조건 없이 보장하여 모든 개인이 건강한 시민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기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또 마을은 5천 년 역사를 이어왔으며 앞으로도 이어지는 역사이자 공간입니다. 우리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할 곳이기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살만한 곳으로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무형의 자원을 무한정 사용하기보다 보존하고 유지, 강화해야 합니다. 지나온 세대를 살피는 노인부양과 후세대를 키울 수 있는 보육과 교육의 시장화를 막고 공공성을 유지, 강화해야 합니다. 마을공동체 속에서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평생교육의 장을 살려야 하며 모든 주체가 참여하는 협동의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을은 세계를 향한 출발지입니다. 마을은 일상을 살아가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과학화, 세계화로 인하여 지구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마을을 지킴과 동시에 지구촌 사람들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지역의 불평등을 없애는 일과 더불어 나라 간의 불평등과 종속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한 평화공존의 대책도 필요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마을공동체는 나의 이기심과 너의 이기심이 만난 이익공동체가 아니라 필요와 열망으로 공동의 뜻을 세운 사람들의 결사체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목적은 사람을 중시하며 사람됨의 실현과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나눔에는 다툼이 없다. 우리는 물고 뜯고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서로 의지해 사랑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세상은 온통 싸우는 이야기뿐입니다. 이는 오롯이 소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유를 위한 다툼의 고상한 표현은 ‘경쟁’입니다. 항상 우리는 경쟁합니다. ‘무한경쟁 사회’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적, 취업, 업무, 승진, 전쟁 등 우리가 지향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경쟁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나눔에는 다툼이 없습니다. 서로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순위에 두려는 것에 다툼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우리의 삶에서 바쁜 생활에 지친다면 나눔은 더 없는 쉼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터전이 마을입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야말로 새로운 변화이자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