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아 검사, 그리고 마음의 기형
“여보, 염주 챙겼어요?” 외출 때마다 남편이 착용하는 염주를 내가 나서서 챙겼다. 그날은 산부인과에 기형아 검사가 있던 날. 배 속 아이가 염주 때문에 후다닥 변화해서 초 건강 상태로 진입할 거라 믿은 걸까? 예민해진 이유를 대자면 30대, 이 한창인 나이에 참 낯선 단어 ‘고령 임신!’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임신부의 나이가 만 35세 이상이면 고령 임신이다. 내 인생의 적당한 시기에 내 인연 만나 결혼해 아이를 가졌을 뿐인데 세계보건기구가 나더러 고령 임신부란다. 게다가 기형아 출산 확률까지 높다고 해서 애꿎은 염주만 움켜쥐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받은 기형아 검사는 임신부 혈액에서 검출되는 태아의 DNA를 통해 염색체 이상 여부를 진단하는 것으로 결과확인은 2주 후란다.
① 인생 보이스 피싱 대처방안: 현재의 나 붙들기
“여보, 어젯밤 꿈에 누가 우리 아이에게 해코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권법으로 다 물리쳤어요.” “나도 어제 꿈꿨어! 검은 정장을 쫙 빼입은 사람들이 으리으리한 차를 타고 와서는 우리 아이를 보겠다는 거야.” 검사 다음 날부터 시작된, 해몽도 안 되는 꿈 얘기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별의별 꿈만 꾼 게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살던 과거의 작은 잘못까지 떠올라 새삼스레 참회까지 하였다. 이 기형아 검사라는 게 오만했던 내 삶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하고 겸손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망상이 생겼다. “여보, 우리에게 잘못된 아이가 오면 어쩌죠?” “뭐 때문에?” “고령 임신부에게 기형아 출산 확률이 높다잖아요.” “확률은 확률일 뿐이야. 삼업관리 잘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면 돼.” 그러고 보니 기형아 선별검사일 뿐인데도 나는 벌써 기형아 확진을 받은 것처럼 조바심을 냈다. 《상윳따 니까야》의 〈숲 경〉에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는 자, 이미 지나간 것 두고 슬퍼하는 자, 어리석은 그들은 시들어 가나니 푸른 갈대 잘려서 시들어 가듯.”(각묵 스님 옮김)이라고 나와 있다. 동경이든 두려움이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몰입은 현재의 나를 갉아먹는다. 현재의 나를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면 요즘 흔히들 당한다는 그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처럼 마음의 기형인 후회와 두려움이란 놈에게 인생의 순간순간을 사기당하고 만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를 붙들고 무엇을 하면 되는가?
② 최고금리 인생보험: 선업 쌓기
“여보, 기형아 검사는 왜 하는 걸까요? 병원에서 하라니까 하고는 왔는데...” “찾아보니까 준비를 위한 것이네. 태아에게 이상이 발견되면 부모는 마음의 준비, 병원은 출산 전후의 치료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결국 건강한 출산을 위해서지.” 그런 이유라면 이 검사, 받을 만하다. 그런데 기형아 검사결과로 인생의 희로애락이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지막에 가장 행복한 이는 어떤 상황에도 선업을 쌓아간 사람 아닐까? 하나씩 짚어보자. ㉠ 아이가 기형아라면 앞으로의 밝고 긍정적인 삶을 위해 참회와 선업 쌓기가 필요하다. ㉡ 아이가 기형아가 아니어도 과거에 지었던 업의 결과로 장애는 언제든 올 수 있기에 대비책으로 참회와 선업 쌓기가 필요하다.
모든 행위는 씨앗처럼 잠재된다. 조건이 갖춰져 적절한 때가 되면 행위(업)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업의 영향력,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지만 의지와 원력을 통해 어느 정도 바꿀 수는 있다. 《담마빠다》에 “저지른 악행이 선행으로 덮이는 이, 그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춘다.”(게송 173, 김서리 옮김)라는 내용처럼, 진심으로 참회하고 끊임없이 선행을 쌓는다면 새 희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유난스러웠던 2주가 지났고 기형아 검사결과는 저위험군이라고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장애는 언제든 올 수 있고, 세상에는 선천적인 기형보다 더 심각한 마음의 기형이 많다. 이 마음의 기형에 대비해 최고 혜택의 인생보험과도 같은 참회와 선업 쌓기는 앞으로도 쭉~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초음파 검사, 그리고 숨은아기찾기
① 환영(幻影) 1
정기검진 날, ‘또 숨은그림찾기 하러 가네? 오늘은 아이 얼굴 볼 수 있겠지?’ 잔뜩 기대하고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데 어~ 얼굴이 보인다!
실루엣만 상상해오던 아이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기대보다 예쁘지 않다. 그리고 임신주수에 비해 머리는 크고 다리는 짧다. 주변 사람들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니 아무도 예쁘단 말을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했던 한 가지는 내가 봐도 그 초음파 사진 속 아이는 예쁘지 않은데 다들 날 닮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울한 2주일이 지났다.
② 환영 2
다시 정기검진 날. 아이 건강을 체크하러 간다지만 나는 아이 얼굴만 궁금했다. 아, 또 얼굴이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아이처럼 잘생긴 얼굴이 출현했다. ‘이제야 사진이 제대로 나왔네’라며 진료실을 나와 남편과 얼마나 싱글거렸는지 모른다. 날 닮은 구석은 없지만 다들 잘생겼다고 한다.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책상을 정리하다 이전 진료 때 받은 초음파 사진을 발견했다. 내가 부정하려 했던 그 얼굴 사진. 설마 제대로 찍힌 사진이 이 사진이면 어떡하나? 참, 모른다는 것, 미지에 싸여 있는 것에는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한다. 초음파도 다 환영에 불과한데 말이다.
③ 찾았다!
또다시 정기검진 날. ‘오늘 보게 되는 얼굴이 진짜일 거야’
라며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아이는 얼굴을 파묻고 보여주지 않았다. 숨은 그림 속으로 더 깊이 숨어버렸다. ‘예쁘다 예쁘지 않다 날 닮았다 널 닮았다’라는 모성을 가장해 요동치던 분별심(分別心)이 멈칫하였다. 애꿎은 산부인과 주치의 탓을 하며 축 늘어져 있는데 갑자기 배 속이 꿀렁거린다. 아, 태동이다! 아이가 태동으로 말을 걸어왔다. “엄마! 나 여기 있는데 왜 자꾸 다른 데서 날 찾아요?”라고. 숨지도 않고 늘 나와 함께 있던 아이를 병원 초음파 기계 화면에서 찾아 헤맸구나. 화면 속 아이 얼굴에 집착하고 남들의 반응에 울고 웃으며 흔들리던 어리석은 나를 아이가 태동으로 일깨워 주었다. 《디가 니까야》의 〈범망경〉 내용 일부를 요약하면, “비방에 자극받아 분노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장애가 되며, 칭송에 자극받아 즐거워하거나 기뻐하는 것도 장애가 된다.”(각묵 스님 옮김)이다. 바깥으로 나있는 눈도 귀도 닫고 이제 배 속 아이에게 귀 기울여야겠다.
아이를 불러보는 첫 말
환영에 집착했던 몇 주간의 방황을 끝내고 내 몸속 ‘진짜’ 아이에게 내 마음이 돌아왔다. ‘나 여기 있어요!’라고 내게 먼저 몸으로 말을 걸어주었던 아이, 그 아이를 이제 내가 불러보고 싶다. “여보, 우리 아이에게 태명을 지어줄까요?” 임신 직후 태몽을 꾸었던 남편의 꿈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태명을 지었다. 나와 남편이 아이를 불러보는 첫 말, “○○야~” 이제 아이는 막연함 속에서 찾아야 하는 숨은 그림이 아닌, 묵직해져 가는 배만큼이나 우리에게 ‘존재’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
창밖 하늘 구름에 실은 ‘널 닮고 날 닮고 예쁘고 안 예쁜’ 아이 얼굴을 살며시 지우고 두 손으로 배를 감싼다. 쫙 편 내 양손보다 커져 버린 배에 대고 남편이 가만가만 속삭인다. “○○야~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건강하게 자라주렴.” 소곤소곤 전해지는 이 간절한 속삭임이 빛처럼 반짝대며 배 주변을 감싸고 기차는 빛으로 난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