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처음 만난 날은 3년 전, 금정산이 가을빛으로 물들 즈음이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스님은 화엄경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루시고 드디어 여래(如來) 응공(應供) 불(佛) 세존(世尊)이 되시어 그 자리에 앉으신 채로 21일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80권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으로 남김없이 설파(說破)하셨으니, 이것이 화엄경(華嚴經)이며 가르침의 첫 출발입니다.”
실차난타 번역본인 80권 화엄경은 7처(處:경을 설한 장소) 9회(會:경을 설하는 모임) 39품으로 구성되어 있다며, 팔만대장경과 똑같이 80권으로 책을 출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담앤북스 출판사와 함께하자고 하셨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대작불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무비 스님의 대작불사에 동참한다는 것은 환희로운 일이었지만, 10여 년에 걸친 오랜 기간을 꾸준하게 정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굳은 신심과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저의 불연(佛緣)은 불교종립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히 가입한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30여 년 전이라 불교문서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월간 《해인》에 연재되었던 호계삼소, 말사순례, 부처님 말씀 등은 저의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스님들의 세상을 향한 쓴소리는 당시 상황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월간 《해인》으로 인해 각별한 인연을 맺은 스님이 계십니다. 당시 《해인》에 연재되던 ‘삭발하는 날’의 저자 현진 스님입니다. 요즘은 사찰마다 템플스테이를 비롯해 여러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절집 생활과 선방 정진을 경험해 볼 기회가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수행자의 일상을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삭발하는 날’에는 젊은 구도자의 수행, 일상의 번민과 갈등 등이 녹아 있었고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불교출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현진 스님은 제가 불교출판을 하는 데 큰 정신적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월간 《해인》은 제가 불교 출판을 시작한 동기가 되었으며, 그 인연의 씨앗이 잘 자라 오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을 출판할 수 있는 인연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무비 스님께서는 30년 전부터 준비해 온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을 4년 전부터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집필 시작 후에는 외부 출입을 자제하고, 수많은 법문과 원고 청탁도 응하지 않으시며 범어사 화엄전에서 화엄경 불사에만 매진하고 계십니다.
많은 스님께서 도량을 정비하고, 사찰 건립 불사에 매진하듯 이 또한 소중한 불사라고 생각하시며 하나하나 주춧돌을 쌓아 올리고 계십니다.
일찍이 신라의 원효 스님이 세존의 마음을 이어받아 천성산 화엄벌에서 화엄경을 강설하여 일천 성인을 배출하였으며, 또 의상 스님은 중국의 지엄 스님 문하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전국에 화엄십찰(華嚴十刹)을 건립하고 모든 국민에게 화엄경을 가르쳐 화엄 사상으로 국민의 정신을 개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화엄경이 한국 불교의 토대를 튼튼히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80권 중 40권이 발행되었습니다. 새로운 책이 발행되어 범어사 화엄전에 도착하면 무비 스님께서는 부처님 전에 화엄경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향을 피운 후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과 함께 삼배의 예를 올리고 서문을 낭독하십니다. 스님께서 화엄경 한 권 한 권마다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지 알기에 그 성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면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무비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주인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습니다. 천지만물 모두가 세상의 주인입니다. 사람은 사람, 동물은 동물, 식물은 식물, 광물은 광물, 어느 것 하나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닌 존재가 없습니다. 하늘은 하늘, 구름은 구름, 산은 산, 물은 물, 그 또한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주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은 무한히 풍요롭고 생활은 한없이 편리해졌으나 마음은 더욱 허기져서 세상은 온통 어두운 소식만 전하고, 생각들은 온갖 이해와 이념으로 갈등으로 치열하게 하루의 삶이 가시밭길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인불사상(人佛思想)’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무비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 말고 다른 부처가 있는가?’라고요.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존귀하고 소중하기에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고 보호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화엄경이 인간 존중 사상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선근회향(善根廻向)’. 좋은 인연으로 시작된 화엄경 대작불사가 원만하게 회향 되기 위해서는 오로지 지극한 신심과 정성이 있어야 함을 알기에 무비 스님의 원력에 식지 않는 열정으로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