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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불국사’ 주지 제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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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시인) 2016년 06월 412호
서울 서촌 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불국사.
그곳에서부터 제정 스님의 걸음을 따르니 얼마 걷지 않아 수성계곡에 닿는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계곡 물소리가 청량하니 깊은 산중인 것만 같다. 계곡을 지나자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석굴암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엔 황매도 피고 철쭉도 피고 산복숭아도 손톱만 한 열매를 맺었다.

“석굴암은 천 년 이상 됐을 것으로 봐요. 주춧돌로 사용됐을 돌이나 구들장이나 기와가 바닥에 묻혀 있는 걸 보면, 예전엔 꽤 규모가 있는 사찰이었어요. 그 모습을 조금씩 복원하려고 합니다.”

석굴암은 불국사의 암자다. 지금은 바위 법당과 산신각 정도가 남아 있지만,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의 바위굴 속에 부처님은 오늘도 앉아 계시다. 그런 불국사와 석굴암은 최근 20년 동안 재가자에 의해 관리되었다. 3년 전에 제정 스님이 이곳에 와서야 그것을 되찾았고 그 형태 또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사대문 안에 이렇게 도심과도 자연과도 가까운 절이 많지 않아요. 요즘 서촌을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불국사를 문화센터로 만들어서 누구든 와서 차도 마시고 쉬었다 가게 하려고 해요. 마을과 어울리는 사찰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 땅이 품은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헤아리는 제정 스님의 바람이다.

제정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월명암 등의 선방에서 정진한 수좌이며 미국과 미얀마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인총림 율원을 마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미술사학과에서 불교미술을 공부했다. 현재는 종회의원이며 종로구 문화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4년엔 3년간 금강산에 머물며 신계사 복원 불사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신계사 복원 불사는 불교 성지를 복원하는 것, 끊어진 역사를 복원하는 것, 분단된 국토를 이어주는 것,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었어요.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질 만큼 보람된 일이었지요.”

그곳에 있는 동안 서해교전이 벌어지고 북한의 핵실험도 있었지만, 그 난관 속에서도 작업은 쉼 없이 계속됐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곳은 불교 성지였으나 북한사람들에게는 유적지일 뿐이었다. 그러니 함께 땀 흘리며 일을 하면서도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어느 날 보니 이북 돈으로 불전이 놓여 있더라고요. 차마 말은 못 해도 신심이 있는 거죠.”

신계사 복원 불사는 그저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정 스님이 불교미술을 공부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선조들이 물려주신 굉장한 유무형의 문화재가 있는데 우린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무언지도 모르고 관리도 소홀히 하고 있어요.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서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지요. 절에 사는 스님들도 석탑이나 주련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고 체득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스님의 바람이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에는 불교뿐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음악, 의학까지 담겨 있어요. 그런 기록 문화가 없었다면 우리 역사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았겠지요. 선조들의 그런 피땀 어린 신심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린 얼마나 메말랐겠어요.”

제정 스님은 스님들이 최소한 자신이 사는 절에 대해서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누가 그것에 관해 물으면 답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문화는 친구를 만든다고 하죠. 문화재에 담긴 내용을 얘기해주면 불자들은 단번에 빠져들어요. 일주문에 적힌 글자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절에 다니다가 이제야 알게 됐으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리고 타 종교인들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러면서 점점 불교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마당까지 제 발로 찾아온 이들을 그냥 흘려보낼 게 아니라 다음에 또 찾아올 수 있도록, 찾아와서 고민을 덜고 갈 수 있도록, 그렇게 그들의 가슴에 부처님의 종자를 심어서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그들의 귀의처가 도량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절에 사는 스님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겠나 하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부처님 법으로써 인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제정 스님도 그렇게 출가했다. 대학 1학년 무렵, 군에서 나온 형이 책을 한 권 들고 왔는데 그게 불교성전이었다.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아 그 내용에 빠져들었다. 거칠고 누런 종이에 세로쓰기로 된 그 책 한 권이, 세속적인 삶을 살던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어머니 따라 절에 가면 울긋불긋 무섭고 나물비빔밥이나 먹는 줄 알았지, 불교에 대해서 누가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데 책 안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자기가 서 있는 자리까지도 집착이 되면 파버리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절에 오게 됐다. 그래서 제정 스님은 포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한다. 그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스님은 세속에서 살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스님은 미국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신다. 미국에서 어느 숙소에 들어갔는데, 보통은 서랍 안에 바이블만 있기 마련인데 영어로 된 불경이 함께 놓여 있었다. 놀라웠다. 그래서 스님은 그 책에 적힌 주소를 찾아갔다. 그곳은 기계 부품을 파는 회사였는데 사장이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그의 방엔 불경이 가득 쌓여 있었다. 미국의 동부에서부터 서부까지 호텔과 모텔에 그 책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회사의 수익금을 오로지 전법을 위해서 쓰고 있었다. 그 대단한 일을 그 한 사람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정 스님은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불경을 사서 많은 이들에게 나눠준다. 불국사와 석굴암 마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행군하느라 산길을 지나는 군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서양의 지식인들이 불교에 어떻게 심취하게 되었겠어요. 우리가 포교당 짓고 들어오라고 한 거 아니잖아요. 다 책을 보면서 자기 고민을 해결하게 된 거예요. 내가 책을 보고 그랬듯이.”

사바세계에 부처님 말씀을 널리 널리 전해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붙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취업도 못 하고, 결혼과 출산도 포기한 채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 그래서 한강 다리 위에 서야 하는 이들에게 불교가 자비의 등불을 비춰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불교는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팔만대장경 안에 인류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 다 담겨 있어요. 그걸 사회적으로 활용해야지요. 중생들을 어루만져 줘야지요.”

지금 당장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달려가지는 못하지만, 도량에 찾아온 사람의 손은 잡아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절망에 빠져 전국을 헤매다가 도량에 찾아들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을 그냥 떠나보낸 건 아닌가, 밥 한 끼라도 먹여서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 사람이 기운을 낸다면 한목숨을 그리고 한 가정을 살리는 게 아닌가. 제정 스님이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석굴암 바위 위에 앉아 말씀하신다.

“잠이 안 옵니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산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석굴암 마당에 하나둘 찾아든다. 스님은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석굴암의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넨다.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제자에게 첫 설법을 하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