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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해 행복한 B 아저씨의 자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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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상 목사님의 하화중생(下化衆生) - 유수상 목사님 2016년 06월 412호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50년을 살아온 노총각 B 아저씨는 이제 읍에 방을 얻어 자취하십니다. 한 지붕 아래 열한 가구가 사는 집에 셋방을 얻었습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이웃해 있어 정겹습니다. 연세 지긋한 집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참 좋은 분들입니다.

아저씨가 도시에서 시골에 있는 장애인시설로 옮겨 올 때만 해도 자취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평생 복지시설에서 살았고, 일도 시설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시골의 시설로 이사 오고 두 달 만에 직장을 구했습니다.
젖소 농장에서 빈 사료 포대를 정리하는 일인데, 사장님이 삼십 분이면 할 일을 아저씨는
두 시간 혹은 종일 하셨습니다. 농장 일이 몸에 익고, 시설과 농장을 오가는 길이 눈에 익자 아저씨 생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을 몇 시에 마칠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에 맞게 일했습니다. 출근길에는 빵집에 들러 일하며 먹을 간식을 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일찍 일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습니다. 혼자 시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요령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즈음부터 아저씨는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농장 사장님 내외분과 아들, 시설 직원, 마을 이장님 등이 아저씨가 살 집을 구하려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해에는 집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좋은 분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아저씨 일에 관심 두고 도왔습니다.
집을 구해서 나가면 그분들과 이웃해서 살 테니 미리 인사드린 셈입니다. 집을 구하기 전에 사람을 얻었으니 큰일을 한 거죠. 이듬해도 부지런히 집을 알아봤습니다. 수소문하던 중, 예전에 시설 직원이 자취했던 곳에서 한 달만 살아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의 자취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저씨는 50년을 복지시설에서 살았습니다.
시설 밖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아저씨의 자취생활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혼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출근하고, 장보고, 영화 보러 다니고, 이웃에 대접하고 대접받는 모습을 보며 ‘혼자서 이토록 잘 사시는 분이란 말인가!’, ‘정말 우리가 알던 아저씨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공직에 있다가 퇴직한 집주인 내외는 아저씨 살림을 챙겨주십니다. 교회에서는 밥상을 선물했고, 주일마다 반찬을 챙겨줍니다. 목사님도 심방 오셨고, 틈틈이 들르겠다고 했습니다.

자취한 지 일 년 반이 지났습니다. 아저씨의 발목을 붙잡았던 ‘만에 하나 있을 사고’는 없었습니다. 다만, 아저씨 인생에 ‘지각’이란 단어가 끼어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에 다닙니다. 시설 안에 살 때는 시설 직원이 때 되면 알려주니 지각할 일이 없었습니다. 자취하니 상황이 달랐습니다. 늦잠 자서 지각하고, 일찍 일어나도 아침 해 먹는다고 지각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전화로 매일 깨웠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죠. 아저씨와 여러 방법을 의논한 끝에,
싱크대집 사장님께 부탁하자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아침저녁으로 봐 주겠노라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덕분에 지각하는 날이 확 줄었습니다. 겨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출근 버스 놓칠까 달리고 또 달리는 출근길. 장애인의 출근을 지원하는 어느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장애인의 출근길’이 이러하다 했습니다. 여느 사람에게는 평범한 출근길도, 아침저녁으로 맞는 익숙한 풍경도, 시설에 살면 꿈꾸어야 할 것이 된답니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너무 늦게 잠들면 안 되고, 너무 늦도록 자면 안 되는 긴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래야, 아저씨의 인생입니다. 비로소 꿈꾸던 출근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자취 후 아저씨는 참 많이 변했습니다. 시설에 살 때 아저씨는 오전만 일하면 되는데 일하는 속도가 더디고, 온종일 농장에 있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자취 초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오전만 일하면 된다고 아무리 알려드려도 점심까지 싸 가서 종일 농장에 있습니다. 그게 편하신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발하고 장 보느라 일찍 퇴근하는 날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했죠. 그런데 필요에 따라 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게 반가웠습니다. 또, 시설에 살 때는 가끔 해 넘어가고 막차 시간 지나도 안 오실 때가 있어서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취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귀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집에 오는 시간이 일정합니다. 저녁 6시 전에는 반드시 집에 옵니다. 자취하면서 변수가 생긴 겁니다. 시설 안에 살 때는 언제든지 저녁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손수 밥을 해 먹어야 하니 저녁 준비할 시간에는 집에 가야 했던 겁니다. 대신 저녁 먹고 볼일 보러 갑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불안했습니다. 밥은 잘 챙겨 드실까, 길을 잃지는 않을까, 가스레인지를 잘못 사용해서 사고는 나지 않을까, 이웃에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문단속은 잘하고 다니실까, 주인이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 수시로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하루 몇 번이나 통화했고, 통화가 안 되면 집에 찾아가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저씨 집까지 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떠올랐고, 통화도 안 되고 집에도 안 계시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그러나 반백 년 시설에서 사셨던 분이 반년도 안 되어서 평생 자취하던 사람처럼 잘 사시니 걱정이 줄었습니다. 이는 아저씨를 돕는 둘레 사람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아저씨께서 지각하면 농장 사장님께서 직접 연락하고, 연락이 닿지 않으면 시설 직원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합니다. 아저씨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웃이 연락해서 알려줍니다. 집에 뭐가 고장 나고 어떤 조치를 해야 하면 집주인이 나서서 해결합니다. 매일 살펴봐 주시는 싱크대집 사장님은 정말 든든합니다. 이런 이웃이 있어, 이런 이웃과 함께 사시니, 이제는 마음이 매우 편해졌습니다.

아저씨께서 자취하는 한 염려와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염려와 불안을 시설을 통해 최소화하려는 만큼 아저씨의 삶도 최소화해야 했습니다. 아저씨의 삶은 제약적일 뻔 했습니다. 자취하는 한, 아저씨도 이웃도 사회도 시설도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염려와 불안이 아저씨의 삶을 살게 한다는 걸 모두가 배웠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요. 사람 냄새 나는 삶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