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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 달간의 여행 - ‘몸의 변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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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일여(生死一如) – 생(生) - 김서리 2016년 05월 411호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우리 열차는 ‘입덧’역을 기점으로 한동안 울렁거림과 메스꺼움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오니 ① ‘입덧이다’ 알아차리기 ② ‘누구에게나 있다’ 인식하기 ③ 나만의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 찾기- 지침을 통해 본 구간을 “‘생명을 움 틔우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주의 깊게 안내방송을 듣던 남편은 최근 내가 즐기게 된 귤을 까서 내게 건넨다. 오물오물 귤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온통 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빛깔들은 다 끌어올려 흩뿌려놓은 이 봄을 보니 작년 봄, 결혼을 앞두고 있던 화사한 신부가 떠오른다. 기억 저편에 생기 넘치던 내 모습. 한참을 미소 지으며 창밖 먼 산에 그려보고 있는데, 기차가 터널로 들어가 바깥이 어두워지자 창에 지금의 내 모습이 비친다. 앗!

행복한 트러블(Trouble)

① 몸의 변화 인식

오늘은 강의가 있는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씻고 긴 머리를 말리고 가볍게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뭔가 모르게 칙칙해 보인다. 안경을 끼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입 주변엔 좁쌀여드름이 오돌토돌 올라와 있고, 찰랑거리던 머릿결은 어느새 푸석한 빗자루가 되어있었으며, 늘 할랑했던 꽃무늬 원피스는 꽉 끼었다. ‘내가 세탁을 잘 못 했나?’ 허리가 굵어진 건 아닐 거라며 괜히 원피스 안에 붙은 ‘세탁 시 주의사항’을 허겁지겁 찾아본다. 그러다가 며칠 전 지인이 “서리 씨, 요즘 얼굴이 왜 그리 건조하고 퀭해 보이지?”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 내 몸이 변하고 있구나….’

아기를 갖게 됐다는 설렘이나 기쁨도 잠시. 입덧에 이어 몸의 변화와 못생겨짐…. 예상이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피부와 머리카락, 허리의 변화만 있으면 다행이었을 거다. 밤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려 낮잠만 늘고 밤낮없이 온갖 꿈을 꾸다 보니 하루 중 그 어느 때도 가뿐하거나 상쾌하지가 않다. 어쩌다가 내 몸이 내 몸 같지도, 내 맘 같지도 않게 되었을까? 그건 내 몸이, 씨앗 담은 밭처럼, 생명을 품은 환경이 되어서이다. ‘임신 중 여드름은 프로게스테론과 프로락틴 등의 호르몬이 피지선과 피지 분비량을 증가시켜서이고, 피부 건조증은 태아에게 공급되는 혈액량이 증가하면서 피부의 수분을 빼앗겨 나타나는 현상이다’라는 내용은 임신 관련 매체에 쏟아져 나온다. 이런 의학정보를 잠시 덮어두고 내 몸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② 몸에 대한 이해

‘작은 씨앗이 껍질과 땅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우듯, 내 뱃속 작은 생명도 한 존재로서 스스로 커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을 거야.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땅의 온갖 에너지를 흡수하듯, 아이도 엄마의 온갖 물질에너지를 끌어 쓰고 있겠지. 그래, 물질에너지!’ 《맛지마 니까야》의 〈코끼리 발자취에 비유한 큰 경〉에 보면, 몸(물질의 무더기)은 땅의 요소(地), 물의 요소(水), 불의 요소(火), 바람의 요소(風), 이렇게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땅의 요소: 머리카락, 몸털, 손톱, 이빨, 피부, 고기, 근육, 뼈, 골수, 신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폐, 창자, 장간막, 위장, 똥, 그리고 기타의 각각 거칠고 견고한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모든 것.
㉡ 물의 요소: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임파액, 침, 점액, 관절액, 오줌, 그리고 기타의 각각 액체나 액체적인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모든 것.
㉢ 불의 요소: 열을 내거나 노쇠하거나 화를 내거나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완전히 소화시키는 것, 그리고 기타의 각각 열 및 열에 관계된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모든 것.
㉣ 바람의 요소: 상방으로 부는 바람, 하방으로 부는 바람, 창자에 부는 바람, 위에 부는 바람, 사지로 부는 바람, 날숨, 들숨, 그리고 기타의 각각 기체나 기체적인 것, 그것에서 파생된 모든 것.

③ 몸의 변화에 대한 이해

뱃속 아이는 엄마로부터 이 땅·물·불·바람(地水和風)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면서 점점 성장하는 것이니 엄마가 감당하고 있는 이 트러블(Trouble)은 기꺼이 맞이해야 하는 손님이다.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로 아이의 머리카락, 손발톱, 피부, 뼈, 피, 심지어 호흡까지 만들어진다. 내 몸으로 오던 영양이나 산소는 내 뱃속 아이에게 나뉘고 있고 아이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내게 왔으니 내가 변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온 우주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땅·물·불·바람 에너지를 내가 품은 아이에게 온전히 줄 수 있다는 것, 축복이다. 이렇게 ‘① 몸의 변화 인식 ② 몸에 대한 이해 ③ 몸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니 더 건강한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남편도 임신 중

① 임신부(姙娠夫) 자처하기

“오늘 우리 외식할까?” 강의를 다녀온 그 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의 반가운 문자를 받고 나가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남편이 나를 화장품 가게로 데려가더니 대뜸 말한다. “‘아내 기분전환 프로젝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음에 드는 립스틱 골라봐~” 아침에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나를 또 저만치서 바라봤다는 남편. 오늘 하루, 내가 뱃속 아이를 온전히 담았듯, 남편은 그가 그려낸 마음 한 폭에 나를 온전히 담았나 보다. 그리고 그는 임신부(妊娠夫)가 되기를 자처했다. 일반적으로 임신부는 원래 아이를 밴 여자나 아내로 한자 부(婦)를 쓰는데, 임신부(姙娠夫)는 남자 또는 남편 부(夫)를 넣어 우리가 만든 말이다. 남편은 스스로 임신부(姙娠夫)가 되어 그의 마음에 나와 내 뱃속 아이를 담겠다고 한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건, 그의 상태와 마음을 잘 살펴 ‘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기쁘게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디가니까야》의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도리를 다섯 가지 말하고 있는데, ‘
㉠존중하고 ㉡ 멸시하지 않고 ㉢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 권한을 부여하고 ㉤ 장신구를 제공한다.’이다. 이 항목 하나하나가 거창하거나 사치스러울 필요는 없다. ‘비록 내가 서툴러도 당신 마음을 잘 헤아려 보려고 해요’라는 남편의 마음이 전해진다면 아내는 이미 존중받고 있고, 부부간의 신의가 지켜지고 있으며, 소중한 권한과 장신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의 명품 화장품 가게가 아닌 경주 시내 작은 화장품 가게에서 립스틱 하나하나 바른 내
모습을 봐주며 ‘이것이 더 어울려~ 저것이 더 산뜻하네’라고 말해주는 남편, 그로 인해 우리의 오늘은 ‘행복’ 색으로 칠해지고 있다.

② 일상에 바람(wish) 넣기

임신 여행에서 아내가 몸으로 임신부(姙娠婦)가 되듯 남편이 마음으로 임신부(姙娠夫)가 되기를 자처했다면 함께 하게 될 일들은 분명 특별한 일상을 만들 수 있다. 어떻게? 행하는 모든 일에 아이에 대한 고운 바람을 넣으면 된다. 예를 들어, ㉠ 아침마다 사과를 예쁘게 깎으면서 ‘우리 아이도 사과처럼 예쁘기를….’, ㉡ 아내와 함께 일출을 보면서 ‘우리 아이도 해처럼 밝은 아이가 되기를….’, ㉢ 아내와 함께 장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좋은 음식으로 건강하기를….’이라고 크고 작은 행위 하나하나에 염원을 실어보자. 비록 내 아이를 위한다는 사심(私心)이 들어가긴 했지만 ‘생명’을 위하는 바람이 깃들어있는 이 일상의 결은 자비심 가득한 수행자의 섬세하고 행복한 일상의 결과 살짝 닮아있는 것도 같다. 《숫따니빠따》에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게송 262, 법정 스님 옮김)’라고 나와 있다. 아내와 함께 뱃속 생명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 행복이다!

유리창에 비친 푸석한 내 얼굴.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봄이 보이자 남편이 창문 너머에 펼쳐진 봄빛 한 줌 따다가 내게 곱게 뿌려준다. 어느새 내 입술에도, 내 볼에도, 그리고 내 뱃속 아이의 세상에도 화사한 꽃이 피어난다. 나는 아이를 품고, 남편은 나를 품으며 이렇게 우리는 행복한 ‘몸의 변화’역을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