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까스, 케이준샐러드, 볶음쌀국수, 콩고기버섯덮밥, 두부롤, 아보카도롤. 사찰음식을 기반으로 하는 채식요리전문점 ‘베지나랑’의 메뉴다. 보통은 스님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면 전통 사찰음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곳에선 좀 더 편안하고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음식들을 내어놓는다. 그러니 누구라도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의 편안한 음식이란 이야기다. ‘깨달음의 소리’란 의미를 가진 이곳에 들어서니 수인 스님이 함빡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채식이란 게 건강을 위해서 어쩌다가 한번 먹는 음식이 아니라 늘 즐겁고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좋겠어요. 굳이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음식, 먹은 후에도 결핍감이 없어서 다른 음식을 찾게 되지 않는 음식. 그래서 평생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수인 스님은 몸에 좋으면서 마음도 즐겁고 행복한 채식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식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물성이 아닌 식자재로도 충분히 보편적인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식당의 문이 열렸고 손님들은 그 음식을 맛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베지테리언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하나하나 물으니 어떤 식재료는 쓸 수 있고 어떤 식재료는 쓸 수 없는지 혼란스러웠다. 수인 스님은 ‘즐거운 채식’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하나하나 따지면서 밥을 먹는 그 마음은 편한가 싶더라고요. 그 마음엔 결핍이 없나 싶더라고요. 불교에서 말하는 채식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저는 베지테리언이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로서 채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철저히 율장에 의거한 음식을 만듭니다. 불교적인 채식인 것이지요.”
베지테리언 중에서도 비건들이 먹지 않는 우유와 꿀은 율장에서 보면 약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니 유청 단백질이 들어간 콩고기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수인 스님에게 있어서의 채식의 의미는 정립되었다.
수인 스님은 출가 전 스무 살 초반에 대만에서 6개월 동안 수행단체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저 절에선 나물만 먹는다고 알았던 스님은 그곳에서 다양하고도 맛있는 채식을 경험했다. 달걀 없이 만드는 햄버거와 케이크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채식을 하면 결핍이 있다는 건 그저 생각일 뿐이란 걸, 마음의 경계일 뿐이란 걸 알았다.
“대만 스님들은 굉장히 존경을 받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봤더니 계율을 철저히 지키더라고요. 행동거지가 계율에 어긋남이 없으니 청정한 그 상태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존재인 거예요. 그 행동의 첫 번째가 채식이었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꼭 해야 할 것으로 다가왔죠.”
출가 후 강원에 다니면서는 우엉으로 갈비를 만들고 채소로 햄버거도 만들고 스파게티도 만들었다. 곤약을 재료로 한 오징어링과 새우튀김과 채소어묵도 만들었다. 이삼 백여 명의 젊은 학인 스님들은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어른 스님들께는 혼이 났다. 수인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어른 스님들은 고기 맛을 심어준다고 나무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채식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던 것 같단다.
수인 스님은 강원을 졸업하고 기도를 하고 선방을 다니다가 ‘베지나랑’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식을 만들거나 식당을 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강원 졸업 후 가진 원력 하나 있었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바깥 경계 때문에 힘들지 않게, 어떤 걱정도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겠다는 원력을 가졌어요. 그게 베지나랑이랑 맞물리게 된 것이죠.”
수인 스님은 현재 거창의 ‘행복한 절’에 머물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법사 스님이었던 이곳의 주지 스님은 수인 스님을 출가의 길로 이끌기도 했고 현재 ‘베지나랑’의 문을 열게 해준 분이기도 하다.
“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자급자족 공동체인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신도의 보시 없이 절 스스로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의 첫걸음이
‘베지나랑’입니다.”
수행의 밑거름이 되는 맑은 음식을 제공해 수익을 얻고 그것으로 수행공동체가 돌아간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베지나랑’은 3년 전 거창을 시작으로 부산에 2호점이 생겨났다. 현재 부산에는 ‘나랑명상센터’가 함께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행복한 마을’에 입주해서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셰프들도 교육하고 있다.
“돈도 벌면서 수행도 할 수 있는 공동체인 거예요. 아무리 수행을 하더라도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하면 마음이 휩쓸리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베지나랑’에서 일을 하면 돈도 벌 수 있고 집도 해결되는 거죠. 그런 수행공동체 안에서 불교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가족이 함께 들어와서 살 수 있고요. 자신의 아이들만큼은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며 밖에서의 직장을 접고 다 같이 들어오신 분들도 있어요.”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틀에 묶이거나 고립되는 것이 아닌 자유롭고 편안한 공동체, 현실적인 행복을 꿈꾸는 공동체다. 그런 ‘행복한 마을’은 현재 거창과 부산에
터를 잡고 착공 예정에 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그 뜻과 규모를 넓혀갈 수 있기를 꿈꾼다.
수인 스님은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법사 스님이 건네주신 책을 보고, 이타심으로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그들을 위한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그 마음으로 출가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고 출가했던 스님에게 있어 ‘베지나랑’은 그야말로 수행의 장이란다.
“지금껏 스님 입네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아는 부처님 법은 내 인식에만 있던 거죠. 여기 있으면서 많이 깨졌어요.”
스님이 밥집을 한다는 의식을 스스로 깨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의식을 넘어서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이 수행인데, 그것을 넘지 못하다 보니 처음엔 손님을 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손님들이 화를 내거나 함부로 말하면 내가 스님인데 왜 저럴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절에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식당의 손님이었던 거죠. 그런데 난 내가 스님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예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그런 마음을 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인데. 결국 내 마음에서 발현된 것이었죠. 그렇게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감사하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돈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몸소 겪으니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도 커졌다. 이제 힘든 상황에 닥쳐도 이타심으로 헤쳐 나간다. 그러다 보니 식당을 한다고 걱정이 많던 은사 스님도 수인 스님을 조금씩 이해해주는 것 같단다.
“채식전문점이지만 제가 있다 보니 여기서 신행 상담도 하게 되고 손님이 신도가 되기도 해요. 수행도 안 된 저한테 와서 스님 얼굴만 봐도 좋다고 하고 ‘베지나랑’이 있어서 고맙다고 해요. 그러니 저는 한순간도 얼굴을 찡그리면 안 돼요.”
수인 스님은 이 모든 게 대중의 힘으로 흘러가는 것이란다. 대중의 필요로 인해 ‘베지나랑’이 문을 열었고 그곳의 식탁에 정갈한 음식이 차려지고 그곳을 찾는 손님들은 행복하게 그 음식을 먹고 또 그렇게 함께 공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수행공동체 ‘행복한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그래서 수인 스님은 오늘도 식당의 문이 열릴 때마다 기운차게 외친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뭘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