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시사아속공동체에 이어 세계적인 수행공동체 미얀마 마하시명상센터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마하시명상센터 주지스님의 열반으로, 타국인의 수행 입소를 당분간 제한하는 방침이 정해져 아쉽게도 미얀마 탐방을 미루게 되었다. 함께 동참하고자 마음을 내주셨던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함께 전한다. 그래서 이번 호와 다음 호에는 두 차례에 걸쳐 대만의 사부대중공동체 불광산사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사전에 서울 불광산사 통해 탐방에 관한 목적을 소개하고, 요청을 드리니 인터뷰 예약부터 사찰 내 숙소 제공과 한국어 통역까지 제공해주셨다. 대만 불광산사는 해인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카오슝 공항에 도착하니 불광산사의 불광회 조끼를 입은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우리는 그와 함께 잠시 혜호스님을 기다렸다. 한국인이시며 12세에 대만 불광산사로 출가하신 혜호스님은 한국에서 열린 국제불교박람회에 참가하셨다가 대만으로 돌아오는 중이셨다.
불광산사는 1967년 개산종장 성운대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인재가 배출되면서 현대화, 생활화, 대중화, 인간화, 국제화의 이념으로 전 세계에 200여 개의 도량을 건립하고 ‘부처님 말씀이고, 사람들이 원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청정한’ 인간불교를 전 세계에 널리 펼쳐 대만 최대의 불교도량이자 세계가 공인하는 불교성지가 되었다. 1991년 성운대사는 대만에 재가신도들로 조직한 국제불광회를 결성하고 다음해인 1992년 미국 LA에서 국제불광회 세계총회를 창립했다. 승속사부대중이 함께 홍법하는 인간불교를 전면적으로 펼침으로써 그 영향을 더욱 깊고 넓게 퍼지도록 만들었다.
불광산 총본산은 올해로 개산 50주년이 된다. 현재 이곳에는 1200여 대중이 함께 생활하며 모든 이에게 믿음과 환희, 희망을 주고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도풍을 따른다. 성운대사께서 제창하신 ‘좋은 일을 하자, 좋은 말을 하자, 좋은 마음을 갖자’는 삼호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재 불광산사는 국내와 해외, 문화와 교육, 자선과 수행,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인간불교 이념을 실천하는 불교 교단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묵을 숙소 마죽원에서는 지객 스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간단한 안내와 함께 내일 아침 예불시간과 오전 미팅시간을 알려주셨다. 예불 참석을 위해 대웅전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오전 5시 40분. 불광산사는 본원과 세계 각 분원에서 5시 50분에 아침 예불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현대인의 하루 일과를 아침 예불로 시작할 수 있게 배려한 불교 현대화의 한 사례다. 해가 어스름하게 질 무렵 간단히 짐을 풀고 사찰 경내를 돌아보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안팎이 고요해졌다.
다음 날 새벽이 밝아오기 전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대웅보전으로 향했다. 가사와 장삼을 멋지게 차려입은 한국인 스님들이 줄지어 법당을 향하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 새 소리만이 요란했다. 불광산사의 대웅보전은 참으로 웅장하고 장엄하다. 여기저기에서 예불 참석을 위해 스님과 재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은 승속을 막론하고 오계를 수지하면 가사장삼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예불은 한편의 공연과 같았다. 운율이 있는 염불, 다양한 악기의 활용, 법당 조명의 변화까지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대웅보전 내부 커다란 부처님 세 분과 벽면 가득 예술적인 모습으로 조성된 원불과 조명에서는 장엄함과 감동을 넘은 환희가 절로 넘쳤다. 새벽 예불을 마친 후 곧바로 아침 발우 공양이 이어졌다. 우리 일행도 발우 공양에 참석했다. 약 4천 명이 동시에 공양할 수 있는 곳인 운거루에 불광산사의 사부대중이 차례대로 들어가는데, 무리 지은 외국인 스님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불광산사 주지스님을 중앙 단상에 모시고 사부대중들이 모여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발우공양을 한다. 공양을 마치고 사부대중이 각자 소임지로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불광산사는 대중들이 절에 와서 그들의 근기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뿐 아니라 실제적인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스님들의 안내로 가장 먼저 수행센터에 방문했다. 복혜가원, 사경당, 선정법당, 정업림은 각종 수행을 할 수 있으며, 사회 기풍을 바로잡고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곳이다. 옥불루에는 정업림이라는 염불수행을 하는 법당이 있고 여래전에는 선정법당이 그리고 대중들이 묵으며 정진하는 숙박시설 등이 있다. 선정법당은 400여 명이 참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전통총림 선방의 기풍과 품격이 느껴지면서도 현대화된 시설이다. 내부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우리나라 선방과는 다르게 중앙에 삼보(부처님, 경전, 조사)를 모시고 사방으로 서로 마주보며 앉도록 자리 배치했으며 의자 위에 방석을 두었다. 수행중 하루 2차례 차가 제공되는데 방석 밑에서 찻잔을 올려놓는 길쭉한 받침대가 들어 있다. 참선실에는 다인용 침대가 놓인 숙소도 있다.
사경당은 대웅보전 서쪽 건물 2층에 있는데, 사경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벼루와 먹, 붓과 종이를 항상 준비해두고, 80여 명이 동시에 사경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사찰 내 서점인 문교광장에도 사경체험대를 준비해 누구나 자연스레 사경 수행에 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장려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불광산사는 대중을 위한 각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과거 스님들이 머물며 수행했던
공간이자 신도들에게는 예불의 공간이던 사찰을 대중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바꾸고, 각종 편의시설을 설비해 편리함을 주고 있었다. 이는 불광신사가 심리적 위안이 필요했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된 비결이다. 감동 받은 대중들은 이후 불광산사에 남아 신도, 공덕주, 자원봉사에서 나아가 포교에 앞장서는 비구, 비구니 스님으로 남아 물질과 인적 방면의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에 안내를 받은 곳은 불광연미술관 총관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성운대사의 개산 연기와 업적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 받았다. 성운대사는 1949년 장개석 정부가 대만으로 쫓길 때 함께 대만으로 건너와 1953년 이란 뇌음사 염불회 강사를 맡으며 불교 최초의 합창단을 결성하고, 찬불가를 만들어 보급했으며, 대만불교 최초의 유치원과 아동반을 설립, 운영했다. 가정방문 축원, 연등 행렬, 대만 순회 포교활동, 라디오방송 포교 등 독특한 포교방식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54년에는 소설 <옥림국사>를, 1955년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전기>를 출판했고, 이는 연극과 영화로도 각색돼 큰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성운대사는 1950년대부터 이미 라디오, 출판, 방송 등 매체를 잘 활용했으며 텔레비전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불법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967년 불광산사를 창건한 성운대사는 ‘문화로 불법을 널리 펼치고, 교육으로 인재를 키우고, 자선으로 사회 복지하며, 대중 수행으로 인심을 정화한다’는 4대 종지로 불법을 널리 펼치고자 힘썼다. 성운대사는 약 60년의 세월 동안 ‘불법의 생활화, 생활의 불법화’를 힘껏 창도했다. 입세간 즐거운 불교, 사부대중이 공유하는 불교, 하나로 평등한 불교, 대중을 두루 이롭게 하는 불교를 전 세계 오대주에 널리 퍼졌다. 성운대사의 이러한 4대 종지와 인간불교 이념을 탐방기간 내내 불광산사의 스님과 재가자들의 만남과 사찰 내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진한 감동과 환희심으로 다가오는 대목이었다. 대만 불광산사의 탐방소식은 다음호에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