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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봐 준 사람을 다시 돌보는 것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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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상 목사님의 하화중생(下化衆生) - 유수상 목사님 2016년 05월 411호
빠른 노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 국내 총 치매 환자 수는 54만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50년에는 약 27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치매는 암보다 두려운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인지기능에 손상이 있을 뿐, 여전히 자신의 성격과 취향이 있고, 아름다운 추억의 단편들을 지니고 있으며 호불호가 있는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배려한다는 이유로 마냥 아이처럼 대해서는 안 되고, 어르신 자신의 일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나 가족의 대소사에 소외시키거나 없는 사람 취급을 해서도 안 됩니다. 어르신이 여전히 가족으로부터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으며, 가정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지인 가운데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을 미루고,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간 투병 중인 어머니를 모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녀가 어머니 모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노인복지 일을 하는 제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어머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동안 저를 키워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냥 모시고 싶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 그녀가 SNS에 올린 어머니 간병 일기 가운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2008.07.27
새벽에 집을 나서며 아픈 엄마를 두고
나오려니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몇 번을 전화하고 싶었지만 참다가
집에 오는 길에 전화하였더니
온종일 아무것도 못 드셨다 했습니다.
찹쌀로 쑨 삼계죽을 사고, 부드러운 복숭아와
포도 한 송이, 바나나 우유와 딸기 우유를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엄마는 눈으로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딸이라고 너무 고생시켜
어떻게 하냐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딸은 엄마에게 미안한 것만
끝도 없이 생각납니다. 오랜 병간호에 지쳐
때론 짐이 된다고 여기기도 했고,
엄마 때문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대부분의 재정이 엄마에게로 흘러갈 때.
또 날마다 피곤한데 언제나 쌓여만 있는
집안 살림을 볼 때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가 살아만 계신다면
좋겠습니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하늘 높은 성이 되었는데 미안한 맘 하나,
하나 허물고 그 자리에 사랑을 하나,
하나 올려갈 수 있도록
신이 기회를 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6. 03. 07
뇌의 이상인지, 치매의 증상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따금 엄마는 제 말을 믿지 않고,
의심하다 못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도록
저를 들들 볶을 때가 있습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는 문장을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병들을 가진
환자를 장기간 간병한다는 것은
그저 식사를 제공하고, 약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운동시키고,
기저귀를 갈아 채우는 정도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인생을 통째로 내려놓는 결단과 소명으로서의
헌신, 지극한 사랑으로도 견뎌지지 않는,
이겨낼 수 없는 무수한 사건과 병의 증상들,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환자와 함께
겪어내고 통과해 내야 합니다.
환자와 간병하는 자에게 ‘하루’란
24시간이 아니랍니다. 삼백년쯤 살아온 듯한
지난 삶을 아프게 되짚어 봅니다.
단 한 순간도 제힘으로 살아낸 시간이 없었음에도.
“오래 살았으니, 그만큼 견뎠으니
이제 그만 살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니 저희 엄마는 어떠시겠습니까.
제 어릴 적엔 엄마가 저에게
지금의 제가 하듯 그러셨겠지요.
엄마가 차려주신 식사가 기억은 전혀 안 나지만
엄마는 아마 그와 같은 사랑으로
저를 키우셨을 겁니다.

2016. 04. 12
엄마의 틀니를 닦아 큰 컵에 담고, 틀니 높이만큼
찬물을 담은 뒤, 온수를 1.5배 넣어 20초쯤
휘~휘~돌려 물 따라 버린 후 빠른 속도로
엄마에게 끼웁니다. 그래야 따듯한 온도의
틀니를 끼우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엄마 밥상(사각 큰 김치통^^)을 엄마 발 앞에 놓고,
앞치마를 두르게 한 후, 엄마의 국을 뜨끈하게
데우거나 끓여서 식지 않게 뚜껑 덮어
쟁반에 놓아 엄마의 김치통 밥상에 올려놓으면
엄마는 식사 기도를 하십니다. 기도하시는 동안
엄마의 쇠젓가락을 국 끓인 냄비에 담그던지,
주걱 넣은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담가서
엄마가 손으로 잡을 때 따뜻하도록 해놓습니다.
30초, 20초, 10초, 5초….
엄마의 반찬은 종류에 따라 전자레인지 돌리는
시간이 제각각 다릅니다. ‘전’이나 ‘조림’은
길게 돌려야 뜨끈히 데워지고 ‘겉절이’나 ‘무침’,
그리고 ‘샐러드’는 살짝 돌려야 물러지지 않습니다.
엄마의 기도가 끝날 무렵엔 적절한 시간으로
데워진 반찬들이 세팅되고, 기도가 끝나
눈을 뜨실 때 밥솥에서 바로 푼 김이 솔솔 나는
밥을 상에 놓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매끼 밥상은
한 번에 차려낸 것이 아니라 왔다갔다를
여러 차례 하여 ‘최상의 온도’로 코스요리처럼
드실 수 있게 합니다. 엄마가 드시기 시작하면
제 밥은 대충 차려 아무렇게나(?) 먹습니다.
제 어릴 적엔 엄마가 저에게
지금의 제가 하듯 그러셨겠지요.
엄마가 차려주신 식사가 기억은 전혀 안 나지만
엄마는 아마 그와 같은 사랑으로
저를 키우셨을 겁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진단 시점부터 주로 주부양자 한 분이 전적으로 돌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주부양자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부담을 본인이 견딜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혼자 짊어지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혼자서 전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고, 비효율적이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나머지 가족들은 환자를 직접 돌보지는 못하더라도 유용한 정보를 대신 찾아서 알려드리거나, 정기적으로 전화나 방문을 통해 주부양자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경제적인 지원을 함께해야 합니다. 주부양자 역시 다른 가족들에게 절대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버티는 것보다는 가족 구성원에게 적절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를 걸게 해도 좋고, 필요한 물건을 정기적으로 사다 달라고 해도 좋고, 주말에 반나절만 돌아가며 환자를 봐달라고 해도 좋습니다. 가족이 팀이 되어야 지치지 않고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습니다. 이는 환자나 주부양자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족들의 삶에도 보람과 안정을 주는
방법입니다.

또 주부양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주부양자의 건강은 곧 치매 환자의 건강과 직결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다 보면 시간이 없어서, 지쳐서, 혹은 치매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데 사소한 불편을 호소하기 미안해서 등의 이유로 자신의 건강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조기에 치료할 수 있는 종양이나 심장병을 키워서 자신뿐만 아니라 돌볼 사람이 없어진 환자까지 모두 불행해 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주부양자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을 미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자와 본인, 두 사람의 삶이 모두 걸려있는 건강이니만큼 정기 검진, 조기 검사 등 더욱 적극적으로 관리하여야 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은 맞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고, 그 도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긴 병에 효자, 효녀는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를 돌봐준 사람을 다시 돌보는 것은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