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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강의로 국민훈장 된 김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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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People - 최현태(울산mbc 전 아나운서 2016년 04월 410호
김병조, 그는 불자들에게 아주 익숙한 예능인이다. 불교방송 개국과 함께 시작된 그의 방송은 지난 2013년 <김병조의 이야기 쇼>까지 프로그램 이름을 달리하며 24년간을 계속했다. 이 엄청난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 그의 어머니가 있다.

“제 고향이 전라남도 장성입니다. 백양사가 지척이었죠. 어머님이 부처님께 기도해 낳은 자식이 접니다. 태생적 불자지요. 젊어서 모진 고생하셨던 당신은 노년에 시력을 잃으셨어요. 유일한 낙이 불교방송 듣는 것이었죠. 시골에서 제 방송 끝나면 일과를 마치고 주무셨대요. 방송할 때마다 우리 어머니도 듣고 계시는데 하는 마음으로 세상 어머니를 향해 방송했지요. 다른 방송 다 그만둬도 불교방송은 계속하라는 당부가 있었구요.”

24년이라니!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소환할 필요도 없다. 이뿐이랴. 1998년부터 시작한 명심보감 강의도 19년째다.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한 가지 일을 그토록 오래 한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저는 강의도, 방송도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해요. 아시다시피 7년간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을 진행하다가 한순간에 하차했잖아요. 슬픔이 없
진 않았지만 크게 배웠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불법 가운데 좋아하는
가르침도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죠. 정성을 다해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요.”

4,50대 이상 연령층은 김병조 특유의 톤으로 ‘지구를 떠나거라’하며 일갈하던 유행어를 기억한다. 잘 나가던 인기방송인이던 그는 1987년 우여곡절을 겪은 후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국민훈장으로 나섰다.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과 교육대학원 강의에 600명이 몰린 적도 있다. 지금은 모든 강사들의 꿈이라는 중앙공무원교육원, 기업체, 지방자치단체 등 전국적 인기를 누리는 명강사다. 2014년에는 2권짜리《김병조의 마음공부》를 펴냈다. 《명심보감 》원문을 번역하고 해석을 붙인 책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강의에서 무엇을 배우려 하며 무엇을 기대할까?

“제 강의가 울리고 웃기며 감동을 준다고 하네요. 한번은 나이 지긋한 여자분이 수업 중에 통곡하는 거예요. 놀랐죠. 제 누이 희생으로 공부하던 이야기를 할 때였나 봐요. 본인의 삶에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다음엔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요. 개그맨 출신의 한학자 강의를 이렇게 좋아하니 잘못 살지는 않았나 봅니다. 제 강의를 듣는 사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수업 시작하기 전에는 늘 기도를 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은 이유를 들어가며 강남으로 옮겨갔지만, 그는 38년째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살고 있다. 부모은중경 병풍 아래 낡은 소파가 그의 검소함을 대변한다. 연예인 최초로 저축상을 받았다는 그는 삶의 태도가 분명하다. ‘안분신무욕(安分身無辱) 지기심자한(知機心自閑)’ 《명심보감》 한 대목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 가면서 힘주어 말한다.

“분수를 알고 지키면 일신에 욕됨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면 마음이 절로 한가해진다는 뜻입니다. 분수가 뭡니까. 4를 가지고 3을 쓰는 4분의 3은 진분수요, 4를 가지고 5를 쓰면 가분수 아니겠어요?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가분수는 ‘가짜’죠. 수강생들에게 티코 타야 하는데 벤츠 타고 다니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벤츠를 타도되는데 티코 타고 다니는 멋있는 사람이 되라고 얘기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까? 울퉁불퉁한 인생의 고비를 넘겨온 그와의 대화 주제는 한계를 모르고 널을 뛰었다.
그렇듯이 그가 풀어내는 명심보감 강의도 수강생에 따라 진양조에서 자진모리, 휘모리까지 종횡무진일 것 같다. 마침 저녁때가 다가와 물었다.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하고.

“제가 한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신 그리운 할아버지, 그리고 형제 많은 가난한 집에서 집안 이루고 자식 키워 내신 우리 부모님입니다. 모두 세상을 뜨셨지만, 서당훈장을 지낸 아버지처럼 명심보감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으니 기뻐하시겠지요.”

아내와 아들, 딸 며느리가 모두 도반인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잘된 일로 부모님과 자식들과 아내의 인연을 꼽았다. 손님맞이 인사가 살갑고도 유연한 아내가 그의 지금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란다. 아내에게 위이당(爲而堂, ‘~할 뿐’), 미국에서 NGO 활동을 하는 장녀에게 여원(如圓, ‘원만한 삶을 살자’), 아들에겐 대로(大路, ‘바른길을 가다’), 며느리에게는 이위당(而爲堂,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란 호를 지어주었다. ‘어떤 상황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면 원만하게 바른길을 가면서 살지 않겠는가’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67년 인생 갈피마다 충실한 이야기가 가득한 그의 눈 그늘이 편안하다. 성실하게,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눈빛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함께 ‘보왕삼매론’을 독송했다. 언제나 감사히 활기차게 살아야겠지만 때때로 몸은 무겁고 삶은 버겁다. 그럴 때 보왕삼매론의 이 한구절을 읽어보면 어떨까.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