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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보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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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태녕 1996년 03월 169호
지난 연말 경주 불국사 석굴암, 종묘와 더불어 해인사 장경각 판전과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문화재들을 이제 우리 한국민의 문화 유산일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에게 다같이 귀중한 명실공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재가 우리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귀중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중요한 이유를 살핌으로서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치의 인식이야말로 귀중함에 대한 진정한 자각이며 보전保全에 대한 바른 자세와 열의를 환기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의 가치는 그가 지닌 역사성과 기능, 예술성에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국난을 당하여 두 번씩이나 대장경의 조절을 발원하여 전 국민이 일체가 되어 그 때 역사 이면에 얽힌 국제, 사회 정세 등 지나간 역사의 산물로서 흘러간 역사의 발자취를 호흡하면서 옛날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총체적 생명체로서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가치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어떻게 하면 팔만대장경을 위시한 이들 문화유산을 온전하게 잘 보존하여 오늘날 우리처럼 후손들도 감상할 수 있게끔 우리 후세에 면면히 길이 인계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보존을 위해서 문화재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한 경우일지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최소한도의 범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문화재 보존을 위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는 르네상스(12∼18세기) 시대에 이르러 귀족들의 골동 예술품의 수집 규모와 관심이 커감에 따라 대규모의 수집품 소장가들이 나타났다.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동안까지는 수집품의 온전한 외간을 유지하기 위한 손질과 수리가 행해지게 되었다. 당시 보존 수리는 대개 솜씨 좋은 화가나 조각가 등 미술 전문인에게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 통례였다. 그들의 작업 목표는 문화재를 잘 수리된 상태로 유지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니 자주 손질해서 외관상 보기 좋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고, 그에 따라서 자연히 그 시대의 기호에 맞게끔 변작의 손질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변작에 따르는 비가역적非可逆的 손상을 입히는 불행한 일들이 생기게 됐던 것이다.
오늘날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보존 철학과 원칙을 분명하게 제창한 최초의 인사 중에 윌리엄 모리스Willam Morris(1834∼1898)가 있다. 모리스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예술가인 동시에 장인이기도 하였으며 시인겸 문학평론가, 그리고 정치가이기도 했던 당시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그는 대영 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이 외관상의 미화를 위주로 한 보수 작업에 의한 문화재의 훼손을 크게 우려하였다. 그는 문화재의 보수 공사를 맡았던 건축협회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고 한다.
\"옛 기념탑 위의 시계를 그대로 두십시오. 외관을 다시 보기 좋게 꾸며달라는 교회의 요청이 있을지라도 비바람과 기후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의 어떠한 보수 방법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고 건축물이 단순히 교회의 노리개가 아니라 국민의 번영과 희망의 성스로운 기념물임을 각성케 하십시오.\"
1877년 존 러스킨과 길버트 스코의 협조를 얻어서 모리스는 건축물의 보호 운동을 위한 최초의 사회단체를 설립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문화재 보존을 위한 \'국제 문화재 보전복구 연구센터\'인 ICCROM, UNESCO, \'국제 기념물 및 문화 유적지 연구 협의회\'인 ICOMS, 그리고 기타 각국의 연구 교육기관들이 벌이고 있는 문화재 보호 운동의 효시라 하겠다. 이번 우리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 지정도 ICOMOS가 유네스코의 위촉을 받아서 심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조사 연구 결과, 해인사는 인근 지역에 비해서 연중 습도가 높다는 것이 알려졌고, 해인사 중에서 제일 온도가 낮은 장경각 주변 환경은 해가 법보전 수다라전 후면으로부터, 오후에는 정면에 해가 골고루 드는 서남향의 배치이며 판전 내의 판전 외부의 온습도 변화의 차가 작았으며, 특히 판전 내부의 모든 공간의 온도 습도는 균일하였다. 그리고 경판 표면의 온도와 습도는 이들 환경과는 달리, 여름에는
28℃ 이내에 머물고 일교차가 대략 5℃ 내외에 머물며 습기는 통상 건조한 시점과 다습한 때를 제외하고는 75∼85% 범위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거의 개방되다시피한 건물 구조를 볼 때, 비교적 항온, 항습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은 경이적인 현상이다.
온도나 습도 유지에는 특이한 창 구조와 일광 조사관계, 판가 구조, 판의 배열, 수분과 온도에 관한 목재의 특성에 독특한 경판 배열구조와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현대적인 공기 조습으로 과연 이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과학이란 이름은 없었지만, 축적된 경험을 통한 놀라운 기술을 관찰할 때, 문화재 보존 철학의 준수는 옛 지혜까지도 보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사십여 년 동안 중요한 유적지의 발굴을 많이 하였다. 한편 여러 번의 보수 공사와 유적지의 환경미화 공사도 있었다. 이 기간은 산업, 기술, 사회 구조면에서 격변기였으며, 우리의 의식 구조와 가치관에도 큰 전환을 몰고 온 시기였다. 이 기회에 훌륭한 오래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새로이 하고 선인들의 예지 어린 사상의 표출이면서도 탁월한 예술의 정수인 이들 문화 유산을 오늘날 우리가 감상할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